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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Oct 04. 2021

그때의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정말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10월이면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 <뉴욕의 가을>,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화면 가득 울긋불긋 단풍이 수놓아진 영화들이 떠오르지만 요즘은 왠지 자꾸만 이 영화가 생각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나 홀로 집에>도, <해리포터> 시리즈도, <러브 액츄얼리>도 아닌

<패밀리맨>이다.

영화 <패밀리맨> 포스터 (2000)

흥행면에서는 위에 언급된 대표 성탄절 사골무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 테지만 이만큼이나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에 걸쳐 꼭 맞는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회사의 사장인 잭은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서 소위 ‘성공한 기업가’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가족도 반려동물도 없지만 때때로 외로움을 달래줄 파트너도 있고 그보다 더 아끼는 페라리와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기꺼이 야근을 하게 만드는 일이 함께인지라 허전함을 느낄 틈이 없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가 그의 마음을 들뜨게 한 탓일?

잭은 퇴근길에 들른 식료품점에서 작은 선행을 베풀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눈을 떠보니 곁에는 13년 전 헤어진 여자 친구, 케이트가 누워있다.

놀란 것도 잠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웬 꼬맹이가 젖먹이 아기에 커다란 개까지 데리고 들어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다.


이건 악몽이 분명해!!!

혼비백산한 그는 서둘러 뉴욕의 집으로 돌아가 보지만 아무도 자신을 몰라보는 현실에 좌절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에도 가보지만 미친 사람 취급받으며 쫓겨난 그의 눈앞에 익숙한 페라리와 어제의 수상한 남자, 캐쉬가 나타난다.


캐쉬는 일종의 천사 비슷한 존재인데 어쩌면 또 다른 그가 살았을지도 모를 평범한 삶을 선물로 보여주겠다고 한다.


이딴 게 선물이라고?

역시 주제넘은 짓은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이를 갈며 후회하는 잭.

하는 수 없이 뉴저지의 집으로 돌아간 잭은 왠지 전과 달라진 남편을 이상하게 보는 케이트와 조쉬의 기저귀를 갈며 헛구역질을 하는 자신을 향해 아저씨 외계인이죠? 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딸, 애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13년 전, 글로벌 메이저 은행의 인턴으로 뽑혀 영국으로 떠난 잭이었지만 이 평행세계에서는 다음날 바로 귀국해 케이트에게로 돌아왔다.

이후 그녀와 결혼한 잭은 뉴저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현재까지 장인의 타이어 가게에서 (데스크 서랍에 술병을 감춰놓고) 근무 중이다.


그녀는 로스쿨을 나왔지만 비영리 변호사로 일하며 월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돈을 벌며 지낸다.

덕분에 결코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집이다.

그마저도 의아한 잭이다.


시시한 이웃들과 교제를 하고 이따금 볼링을 치며 시시덕거리는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이 계속되고 고가의 명품 슈트만을 입던 그였지만 이제는 마트에서 짝퉁 양복을 입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평소 잭에게 추파를 던지던 유부녀와 불장난이라도 해볼까 싶지만 친구가 말한다.


왜 보석을 쥐고 모조품에
눈독을 들이는 거지?
케이트는 우리 마을 남자들의
여신이나 다름없다고!


어느 밤, 거실에서 케이트의 생일파티 비디오를 보던 잭은 예전과 다름없이 아름답고 현명하며 재치 있고 다정한 화면 속의 그녀를 보며 친구의 말이 사실임을 절감한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신이 케이트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예전 상사였던 회장이 타이어 펑크로 인해 가게에 들르게 되고 잭은 사업 얘기로 금세 그의 환심을 사게 된다.

결국 잭은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뉴욕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지만 케이트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자기는 지금이 행복하지 않아?

그는 행복하지만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될 거야!
아냐, 이미 모두가 우리를 부러워해.
모르겠어?


실망하는 잭.

그런 잭에게 케이트는 말한다.


이 직장을 꼭 갖고 싶다면 그렇게 해.
어디서 사는지보다 당신이 중요하거든.
난 우리를 택할래.


그 말에 마음을 돌리는 잭.

집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이제는 완전히 친해진 애니와 눈밭에서 신나게 놀아준다.


돌아온 걸 환영해요, 아빠.


어린 딸의 미소에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이 모두 녹아내리는 듯 행복한 잭이다.

그러나 얼마 뒤 소금을 사러 동네 마트에 간 잭은 깜짝 놀라고 만다.

어라? 저 낯익은 얼굴은?

캐쉬가 이번에는 계산대에서 싱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불안해하는 잭에게 이건 잠시 엿보기일 뿐이라며 달래듯 말하는 캐쉬.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이들에게 차례로 입 맞춘 뒤 침실 의자에 앉아 곤히 잠든 케이트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잭,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이 야속하다.


눈을 떠보니 익숙한 고급 침구의 이불깃이 눈에 들어온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펜트하우스 침실이다.

망연자실한 잭.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자 어젯밤을 보냈던 금발의 아름다운 파트너가 함께 연휴를 즐기자며 유혹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는 잭.

허둥지둥 뉴저지의 집으로 가보지만 거기엔 케이트도, 애니도, 조쉬도 온데간데없다.


급한 호출을 받고 회사로 출근한 잭은 문득 전날 케이트에게서 메시지가 왔음을 기억해낸다.

알려준 주소로 가보니 이삿짐 센터의 일꾼들이 휴일도 잊은 채 분주하게 짐을 나르고 있다.

성공한 변호사인 케이트는 잭을 반기며 오늘 밤, 파리의 지사로 떠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당신 물건들을 발견해서 연락했어.
원한다면 가져가.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그녀는 나중에 파리에 오게 되면 커피나 한잔 하자면서 잭을 돌려보낸다.

그날 밤, 망설이던 그는 행선지를 돌려 파리행 출국 게이트로 향한다.

떠나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잭을 보며 당황하는 케이트.

이러지 말라고, 파리에 오면 그때 얘기하자며 돌아서는 그녀에게 잭은 애원하듯 외친다.


우린 뉴저지에 살아.
애가 둘이나 있고!
이름은 애니와 조쉬야!


잠시 동안이었지만 생생하게 남겨진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들려주는 잭.


모두 꿈이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난 우리가 함께인 모습을 봤어.
난 우리를 택할래!
그러니까 케이트, 나랑 커피 한잔만 하자.
제발 오늘은 가지 마.


간절한 그의 부탁에 결국 케이트는 떠나려던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이윽고 모두가 떠난 공항의 유리창 너머로 아름답게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졸린 듯 무심히 청소를 하는 공항 직원과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길게 비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커피를 다 마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케이트는 파리로 떠났을 것이다.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하지만- 잭이 파리로 그녀를 따라가든, 일을 마친 그녀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든, 두 사람이 언젠가는 함께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귀여운 애니와 조쉬를 다시 만나길 기다리며 크리스마스의 짧은 기적을 이제는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살포시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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