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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un 22. 2020

한스 기벤라트와 푸른 사과를 파는 여인

실패한 그, 두려웠던 그녀에 관한 트라우마 고백기

매일의 일상에 충실할 것.

젊음과 시간을 충분히 누릴 것.

노후를 대비하며 지금을 인내할 것.

상충하는 두 행위를 동전의 양면처럼 품고 주머니 속에서 한참을 이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곳에도 속하지 못했다.

중학생 때 접한 헤르만 헤세로 인해 나는 일종의 PTSD를 입었다.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생을 마감한, 내성적이순했 아이 한스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나 또한 그처럼 학업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모범생도 문제아도 우등생도 열등생도 이도 저도 아닌 아이로 차곡차곡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다 무기력의 정점을 찍었던 고3 봄 무렵, TV에서 배수아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를 보고 말았고  열일곱에 불과했던 소녀는 먼 훗날 국도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초라한 모습으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떫은 사과를 팔고 있을 스스로의 노년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

대학을 가게 되면 가고 아니면 말고.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승부욕은 차고 넘쳐서 은근히 남들을 앞지르고 싶었고 그 향상심은 부모님이 어렵게 준비해 주신 등록금을 동네 소꿉친구와 함께 합격한 2년제 대학(+같은 전공)이 아닌 추가합격한 4년제 대학 입학처에 납부하도록 만들었다.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국민학교/중학교 동창이었던 그 친구와는 끝내 소식이 끊겼다.

목표를 갖고 진학한 것이 아니니 대학생활은 역시나 그저 그랬다.

나는 상대적으로 오래 알고 지낸 종교 서클의 친구들과 아르바이트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학교는 그저 낙제하지 않을 정도로만 성의를 보였다.

복학 후 전공수업을 본격적으로 듣게 되면서 제법 흥미를 붙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원래 치열하게 뭔가를 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악착같은 성격도 되지 못했다.

적당히 요령껏, 너무 힘들이지 않고 편히 가자는 게 내 모토였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내 멘털은 헛된 노력이라든가 열심히 이룬 것을 모조리 빼앗기는 상실감 따위를 견딜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다.

문과 전공 스펙이라곤 운전면허 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고 뒤늦게 취업 걱정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자 풍족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친구가 그럼  유학이라도 가라며 진지하게 말했고 나는 발끈해서 화를 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러저러해서 러저러하면 그까짓 거 못 갈 것도 없었다.

근데 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여차저차 운 좋게 유학길에 오른다한들 그냥 그곳에 머물며 알바나 하겠지 싶었다.

그럼 여기와 다를 게 뭘까.

생각만으로도 지독한 피로가 밀려왔다.

20대의 나는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만큼 지쳐있었다.

의욕을 갖고 무언가를 하면 곧바로 꺾였다.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면 누군가에게 빼앗겼다.

내가 아무것도 갖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뭔가를 빼앗기고 강요당했다.

이런 일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결국 그것도 포커스가 빗나간 것 같지만 그래도 하면 하는 대로 재미있었다.

빼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을 들이면 성과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다.

결국 되지 못했지만.

현재 스코어.


내 글은 언제나 구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랐고 갈등이 싫었다.

그 대 대사는 좋다고, 쉽게 읽히고, 이야기는 재미있다는 위로를 꾸준히 들었다.

그래, 나는 어쩌면 웹소설을 썼어야 하는지도 몰라.

이제 와 초점이 맞는 안경을 찾아 눈에 걸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시작하려고 보면 어느새 일요일 해질 무렵이다.

이제 곧 내일의 압박으로 마음이 무겁고 화가 나겠지.

이렇게 자꾸만 화가 나는 걸까?

남들 보기에 실패한 삶이어서?

카산드라도 아니면서 내내 두려워했던 자신의 초라한 미래가 사실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은,

지금의 적당히 나이를 먹은 내가, 생각한 만큼 충분히 늙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멀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언제까지고 두려워할 수 있다.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마치 제논의 역설처럼.

그리스 영웅 아킬레스조차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던 그 거북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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