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라 마디간(1967) Elvira Madigan
일본어에는 '신쥬(心中)'라는 단어가 있다.
에도시대에 유행하던 연인의 동반자살을 뜻하는 말인데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활동하며 꽤 인기 있었던 일본 여배우 '유민(본명:후에키 유코)'이 출연한 일본드라마 <사쿠라신쥬>의 신쥬가 바로 그것.
※ 해당 드라마는 인물관계도가 없으면 시청이 불가할 지경의 초막장드라마다.
아무튼 불륜과 동반자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또한 수차례의 동반자살 시도 끝에 1948년, 향년 38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수많은 마니아들을 배출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은 어떠한가.
살아서 함께하지 못할 바에야 죽어서라도 영원히 네 곁에 남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모래구덩이에 들어간 여인의 마음은-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불륜은 불륜인가.
나에겐 봄이면 떠오르는 어떤 장면이 있다.
1967년, 스웨덴 출신의 보 비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고전영화의 엔딩시퀀스다.
나는 이 영화를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 가사 덕분에 알게 되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주며
아침 햇살 눈부심에 나를 깨워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대체 그 곡이 뭐길래 연인의 귓가에 흥얼거린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 인터넷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난 뒤에 나는 좀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연관 검색어를 뒤지던 중 갑자기 이 영화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서커스단의 아름다운 줄타기 소녀 엘비라와 탈영한 귀족 장교 식스틴.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기에 세상 모두가 그들의 사랑을 손가락질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천진하게 말하는 식스틴.
그러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던 두 사람은 생활고에 못 이겨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나비를 잡으러 꽃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녀의 그림 같은 모습 위로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 이 영화는 실화를 소스로 만들어졌기에 그들의 묘비는 덴마크 토싱에 섬에 나란히 세워져있다고 한다.
사랑은 환상이었고 삶은 현실이었다.
나비를 잡는 순간 깨어버린 꿈처럼 비정하고 잔혹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여서 행복했을까.
마치 르누아르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한 아름다운 미장센과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선율 덕분에 애처로운 사랑이야기로 기억이 왜곡되는 이 희한한 불륜 영화는 유독 봄이 되면 냉이 된장국처럼 혀끝에 맴돌곤 한다.
다름아닌 그놈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