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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Jul 27. 2021

감히 부모에게 이혼 운운해?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12


& 약 5-6년전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화를 받자 여동생의 울음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웠다. 울먹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바람

에 몇 번이고 ' 뭐라고? 동생아, 조금만 진정하고 말해봐'

하며 다독거려야 했다.


 "언니, 나  정말... 못 참겠어.. 이.. 집에서.. 못 살겠어..."

 " 왜, 또 무슨 일인데."

 "아빠랑... 엄마가 또 한바탕.. 하는 거야.... 그래서...... "


 여동생에게 들은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새아빠와 엄마가 여느 때처럼 부부싸움을 시작했다. 늘
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긴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강도가 높아진다 싶어질 때 엄마가 돌발적
인 행동을 벌였다. 흥분해서 '죽어버릴 거야'하고 괴성
을 지르더니 거실 창가로 뛰어들었다고. 그 광경을 보던
새아빠가 같이 뛰어들어 뒹굴었다.
 창가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있었는데 그곳
으로 달려든 엄마와 새아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쓰러지고 깨져서 난장판이 되었다.
 거실은 온통 화분에서 쏟아져 나온 흙과 식물들로 엉망
진창이 되었고 울부짖으며 소리 지르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모습에 분노한 새아빠....
 여동생은 그만하시라고 소리치다가 경찰을 부르겠다며 두 분을 제지했다. 그리고 결국 '계속 이러실 거면 이혼하시는 게 낫겠다' 고 내뱉듯 말했다.
 여동생의 '이혼하시는 게 낫겠다'는 그 한마디가 엄마
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엄마는 화나 있던 여동생에게
'자식이 감히 부모에게 이혼하라는 말을 꺼냈다'며
오히려 더 역정을 냈다.


 여기까지가 동생이 울며불며 전해준 내용이었다. 나는 임

중이었기 때문인지 여동생과 통화를 하며 가끔씩 아파오는 듯한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가정 불화는 내게 가

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원흉이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칼을 꺼내 들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폭력에 무력화되고 익숙해진다는 게

그런 걸까? 그러면서도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

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해치고 싶은 증오를 키우고 있었

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통화를 끊고 한숨을 쉬자 남편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었다. 남편은 모든 걸 이해해 줄 만큼 아량 넓은 사

람이었지만 언제까지 유효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부부사

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기도 했지만 역으

로 그래서 더 부모님이 미웠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만이 우

이고 다 발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가 싫었다.

 일밖에 모르고 남의 감정이나 아픔 따위는 모르쇠 하는 

고집 불통의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내게 전화를 한 여동생도 미웠다. 그때는 전부 다 없어져

으면 좋겠다는 심정도 일었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꼴 저 꼴 다 안 봤을 텐데.

 너희 때문에 참고 살았다는 엄마의 넋두리도 지겨웠다. 엄

마의 신세한탄은 내 가슴속에 깊게 내려앉은 무거운 돌덩이였다.



 

 엄마는 몇 번은 크게 화가 나서 연락을 받지 않는 우리에게

카톡으로 새벽까지 카톡과 문자로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다. 몇 시간을 읽어야 할 긴 내용들을 보내왔고 그 내용의 대 분은 엄마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 새아빠의 행동에

대한 당화였다.


재혼해서 지금까지 엄마는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뛰쳐나가고 싶어도 너희 때문에 참고 살았어. 오로지 재
혼 가정 잘 일구어 너희를 잘 키워내겠다는 의지로 참고
살았다. (중략)네 아빠가 성질이 무뚝뚝하고 다혈질이 라 그렇지 착한 분이다. 하루 종일 소처럼 일해서 일곱 식구 건사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너희들이 알기나 하겠니...... (중략)

 미친년 널뛰듯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여태껏 뼈 빠지게
키웠더니 부모를 원망해? 이 괘씸하고 불효 막심한 것
들....

 언제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똑같이 되풀이되는 내용....

우리를 낳고 재혼까지 해서 뼈 빠지게 키워줬으니 당신들의 행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이상한 결론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매번 설득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들을 톡로, 문자로 마구 쏟아냈 고 그걸 읽는 우리는 신이 피폐해지는 걸 느꼈다.   

 

 변함없이 자기중심적인 부모가 우리를 불효자들로 만든 다는걸 왜 모를까. 아서 키우기만 하면 끝인 건가, 데리고

있으면서 매일같이 집을 전쟁터로 만들고 자식을 감정쓰레

기통으로 만들어도 되는 건가, 화난다고 때리고 소리지르

는 행태가 부모니까 당연한 건가? 참을 수 없으면 욕하고 죽으라고 폭언하는 게 정당한가, 자식들은 인격이 없나? 우리에게는 얼굴도 모르는 웃사람들 만큼의 인권도 없는 것일까....


 나쁜 자녀는 없다. 나쁜 부모만 있을 뿐. 나쁜 부모가 자녀

 괴물로 키워낸다. 걸 모르는 부모가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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