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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여행자 Sep 06. 2021

상처의 고리를 끊으려고 선택한 방법

나는 왜 엄마를 떠났나. 17


 한참 동안 못 본 여동생을 다시 만나기까지 수많은 내면의

고통이 있었다. 나를 아프고 슬프게 하는 과거와 연결된

사람들이 다름 아닌 가족이라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든

사실이었다.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머리 터지게 생각을 거듭한 결과는 연결고

를 모두 끊는 것.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당연히 몇 번만에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내 마음을 고치면 되고 태도를 바꾸면

되고, 갈등이 있으면 싸우더라도 피하지 않는 방법을 고수

했었다. 그러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만 가족이니까 다

그런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가 바뀌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 전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

며 서로 고통주고 괴로워하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보는 집안들은 우리 말고

도 많았고, 그들도 죽을때까지 서로를 저주하고 욕하고

비난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과거가 현재까

 이어져서 나를 괴롭게 하므로 과거의 후유증이 현재의 나를 갉아먹는 셈이었다.

 내게는 가족의 아픔까지 끌어안을 여유나 힘이 없었고 의욕도 고갈된 상태였다.  그내가 '학습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

들을 반복해서 경험한 뒤에 내 의지와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바꿀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기면서 나는 조금씩 무기력

해져갔다. 무기력함은 의욕도, 웃음도 빼앗아갔고 나는 언제나 주저앉아 실패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단순히 게으른 사람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의 과거와 연결된 가족들을 단절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가슴 아프지만 과거를 끊어내거나 잊어야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여동생을 만나보니 좋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실체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불안

감이 늘 따라다녔다. 역시나 과거가 내게 트라우마를 주었고

나는 헤매는 중이었다.


 엄마를 다시 봐야 한다는, 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무감이 나를 짓눌러서 마음이 무거웠다. 내 속을 차

한 크고 무거운 돌덩어리는 소화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엄마를 떠올리면 솟구치는 감정들을 애써 외면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나아지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들만 쌓여가던

우리 모녀 사이. 누가 하나 죽어서 없어져야 끝날 것만 같던

감정싸움. 그것들은 내 의지로 해결되지 않았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여동생과의 새로운 만남을 이

어갔다. 둘 다에게 있는 다른 색깔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전보다 조심하는 자매 사이가 돼가고 있었다.

 가족도 따지고 보면 내가 아니니 타인이라는 장은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과 태도로 가족을

대하는 게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동생과 원만하게 지내다 보니 마음이 아주 조금씩 안정되

가고 있었다. 동생도 엄마 얘기는 가급적 꺼내려하지 않는

눈치였고 나도 그랬다. 동생은 나와 엄마가 언젠가 만날 날

을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크고 깊은 감정의 골과 틀어

진 관계를 되돌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동생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동생이 평소와 다르게 카톡으로

엄마 얘기를 꺼냈다. 내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듯한데

뜸을 들였다. 답답한 내가 본론을 재촉하자 꺼낸 말은 엄

마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언니, 엄마가 언니랑 안 본 이후로 언니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어. 처음에는 언니를 찾아간다고도
하고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외면하고 끊어 내냐면서
언니를 원망하기도 하고 전처럼 막무가내 식의 모습도
보였었거든? 그래서 내가 막 뭐라고 했었지.
 엄마가 언니를 쥐 잡듯 잡고 조금만 실수해도 채근하던
거 잊어버렸냐고.

 언니가 힘들어하고 지긋지긋해하다가 결국은 등돌린 건데 엄마가 또 반복하면 진짜로 무슨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러니까 언니가 마음이 풀어져서 스스 로 엄마에게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고.

 엄마도 내 말에 많은걸 느꼈는지 그 후로 가끔 언니 잘 지내냐고, 형부랑 밝음이도 잘 있냐고만 묻고 별 얘기
안 꺼냈어.

그런데 이번에 통화하는데 엄마가 언니 얘기를 꺼내더
니 그러는 거야. 언니가 너무 보고 싶고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고. 왜 이 나이에 딸한테 외면까지 당하
고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살아야 하느냐며....
 흐느끼면서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다고 하는데 엄마가
그렇게까지 절규하는 게 처음이라 나도 힘들더라.
엄마가 오죽하면 그럴까 싶고,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닌
가 싶어서 두려워....

 언니, 엄마가 한 번만 자기를 용서해주고 다시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고. 정말 잘못했다고. 한 번만 만나면 안되겠냐고 언니한테 전해달라더라....
나도 이 말을 언니한테 전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무래
도 전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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