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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03. 2023

처음으로 새벽 독서모임에 나가보았다.

이런 게 미라클 모닝일까?

할 엘로드가 쓴 미라클 모닝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이를 도전했었던 때가 있었다. 미라클 모닝이란 평소 일어나던 시간보다 2~3시간 일찍 일어나 자신을 위한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나는 야행성 인간으로 아무리 미라클이 일어난다고 해도 새벽에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도 시류에 휩쓸려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새벽 4시나 5시는 내게 무리라 생각해 6시나 6시 반쯤에 일어나 30분 정도 영어 듣기를 하거나 요가를 했었는데 사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피곤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빨리 잡는다더니, 일찍 일어난 야행성 인간은 하루종일 피곤에 쩔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는 무려 6일이었다. 나는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같은 지역에 살고 계시고 차로 30분 내외에 계시기에 귀경의 피로가 거의 없는 케이스다. 또 시댁은 제사도 없어 전을 부치는 등의 노동 열차도 탑승할 일이 없다. 그런데다 이번 명절은 큰애가 시험을 앞두고 있어 그나마도 제대로 참여가 힘들었기에 불참을 배려(?) 받기까지 했다. 그래서 가족들과의 시간은 줄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져 다른 명절과는 달리 책도 많이 읽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명절을 휴일처럼 보내고 있었다.


집에서 공부하는 큰 애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막내와 남편을 데리고 서점 나들이를 갔다가, 새벽 독서 모임 소식을 들었다. 긴 연휴의 마지막 날. 계속된 늦잠으로 일상의 피로도 회복되었으니 하루쯤은 일찍 일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덜컥 신청했다. 사실 새벽 기상은 못내 자신 없었지만 글쓰기 모임을 하는 두 선생님도 오신다기에 용기를 내보았다. 새벽은 커녕 아침에도 잘 일어나지 못하는 나이기에 남편은 갸우뚱한 표정이었으나, 나는 오랜만에 폰의 알람을 켜고 새벽 독서 모임을 준비했다.


전날 밤 공부하는 큰 애만 두고 잠들 수 없어 (실은 몇 번은 그냥 잤다;;) 함께 곁에서 기다려주다가, 늦은 시간에 침대에 눕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배수관에 문제가 생긴 건지 천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작게 들렸었는데, 밤이 되고 침대에 누우니 갑자기 그 소리가 너무 거슬리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물 흐르는 소리에 깊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쉬이 깼다. 이러다 내일 알람을 듣지 못할까 염려가 되니 숙면은 커녕 새벽 한가운데 멀뚱멀뚱 누워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약속했던 알람이 울리자 경쾌하게 눈을 뜨고 가볍게 옷만 갈아입은 뒤 동네 책방으로 향했다. 6시 30분! 늦지 않는 사람에게는 2천 원의 바우처도 준다는 재미있는 독서모임이었는데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독서모임은 처음이었기에 기대와 설렘에 피곤도 느끼지 못했다.


커피 향이 새어 나오는 책방에 들어서자 먼저 온 세네 명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해 준다. 그중에는 나와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가벼이 앉아 연휴의 안부를 물으며 모임원이 모두 오기를 기다렸다. 보통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주로 하던 나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니 낯가림이 많은 내가 이런 자리에 선뜻 나온 것이 새삼 신기하다. 책방지기가 커피를 모두 내려 테이블에 앉자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서로의 책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연령도 다양하고 직업도 사는 곳도 다양했지만 모두 책으로 대동단결! 하여 현재 자신이 읽고 있는 책과 생각을 나눈다. 모임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책방지기는 어울리는 그림책도 읽어주어 우리는 무려 3시간 가까이 모임을 진행했다. 책방 지기가 읽어준 ‘첫인사’라는 프랑스 그림책을 보며, 어린 시절 아이가 잠에서 깨며 나를 찾았을 때, 사실 아침의 평화가 깨지는 듯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했는데 아이는 나에게 첫인사를 보내고 싶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뭉클해지기도 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계를 보니 9시 30분.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연휴의 마지막을 붙잡고 아마도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이다. 독서 모임을 했다고 해서 내가 훨씬 나아지거나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작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상하게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되면 나는 우리 가족들이 더 보고 싶어 진다. 책방 지기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고 들으며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렸다. 첫인사를 하고 싶어 하는 그림책 속의 주인공을 보며 내가 놓쳐버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브루키가 작은 양에게 맞는 노래책을 주는 장면에서는 남편의 언어로 쓰인 노래 책은 무엇일까 떠올려보는 시간도 다른 이들이 소개한 책을 메모장에 적어오던 마음도 모두 새벽 독서 모임의 선물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나를 위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미라클 모닝이라고 한다면, 오늘이 나에게는 미라클 모닝이다. 그런데 어쩌면 미라클은 그냥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이었을지도. 다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미라클을 발견하는 생의 안목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지혜를 지닌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조금 더 읽어본다.

독서모임의 마지막은 모두가 추천해준 책을 쌓아 책탑 만들기. 나는 하지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라는 사나운 제목의 책을 골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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