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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Mar 20. 2022

냉장고에 넣어둔 사랑

백도는 죄가 없다

하루  속 짜증의 유발 경로들은 이러했다. 대통령 선거일에 두 아이의 반회장 선거 멘트를 작성하고 발표 연습을 했다. 발표 목소리 톤, 말하기 속도, 자세 등에 대해 코칭을 해주며 곧잘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심 기대가 었다. 선거 당일 아침에는 실패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도전에 대한 의미에 잔뜩 주안점을 두며 낙선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울지 않기로 신신당부를 했다.  큰 아이는 고심 끝에, 작은 아이는 호기롭게 도전한 결과가 둘 다 낙선이었다. 아이들은 실망도 하고 속상해하다가 곧 괜찮아졌다. 정작 나는 아이들의 노력이 허사가 된 것에 대한 속상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늘 머리와 가슴은 합의를 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새벽 기상과 대선 개표 방송을 보느라 수면 시간이 세네 시간 정도여서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상태였다. 저녁 식사는 있는 반찬에 먹자고 이야기를 끝냈는데, 막상 식사를 하는 남편의 숟가락질이 시원찮았다.  잔뜩 날이 서 있는데 저녁 식사 후 백도를 먹으면서 누구 하나, 나를 챙기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먹은 그릇들을 그대로 둔 채 뒷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를 보다가 가족들의 무심함과 나의 피곤이 융합되어 폭발했다. 그래, 백도는 죄가 없다. 백도를 먹지 못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하루를 종종걸음질 치며 지내느라 지쳤던 것이다.


백도에 담은 유치 찬란한 엄마의 투정을 아이들은(11살, 9살) 짧은 마음 글을 통해 엄마의 서운함을 덜어주고자 했다. 이미 마뜩잖 감정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았고 아이들이 읽어보라는 마음을 외면한 채 잠을 청했다. 알량한 자존심과 미안한 마음으로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확인을 했다.  그 와중에 옮림, 이라고 쓴 맞춤법에 멈칫한 엄마의 지적 본능을 자제해본다.  애꿎은 내 새끼들에게 짜증 내지 않으려면 좀 자야겠다. 애들 일어나면 여느 때 보다 더 찐하게 안아줘야겠다. 나의 피곤함을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투사하지 말자. 내 마음의 이동 경로는 오롯이 나로 인해  움직였으니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내어보자.


냉장고에 넣어둔 아들의 마음                                                                    오빠의 진심을 알리는 딸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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