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저렇게 포장해도 결국은 꼰대 짓 한 게 아닐까?

by 까망나비

어제는 파트타임 직원 한 명을 해고했다. 이름이 줄리아라는 베트남 직원이었는데, 집에 와서도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무엇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물론 해고, 라는 건 그 자체로 편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의 경우,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남아 있었다.


줄리아는 아직 대학생이다. 그녀는 상당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고 똘똘하기도 했다. 내가 그녀를 채용할 때 그녀의 이력서를 들여 다 본 직원이 ‘수재인가 보네요’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이력서에 적힌 Young 어쩌고 talented group 어쩌고 하는 곳이 웬만큼 빼어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학교도 최고예요. 직원이 덧붙였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같은 곳인가 보았다. 막상 면접을 보았을 때는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말이 많았다.) 일을 해 보니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줄리아의 사수인 조도 그녀와 일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침, 줄리아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업무가 시작되고도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를 않고 연락을 받지 않아서 뭐야, 이런 식으로 그만두는 거야? 월급은 안 받을 생각인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두어 시간 더 지나자 떡하니 나타났다. 미안하다고 머리를 여러 번 숙이고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왜 늦었는지 물었더니 늦잠을 잤단다. 그래, 솔직하구나. 다음부터는 일찍 일어나자,라고만 하고 말았다. 이제 20대 초반인데 아침잠이 오죽 많겠나 싶어서 나름 이해도 되고 귀엽기까지 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두 어 번 더 일어났다. 그 두 어 번은 연락이 두절되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업무 시작 30분 전에 오늘 출근을 못하겠다는 내용으로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이유는 주로 학교 시험과 관련된 것이었다. 시험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못 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없다고 업무에 엄청난 지장이 생기거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있으면 공간에 안정감이 생겼다. 그녀는 출근 해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제 몫을 다 해냈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말하길 어린 데도 사려가 깊고 책임감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얼마 안 가,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또 생겼다. 그게 바로 지난 주말이었는데, 그녀는 월요일 오전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직원들 말로는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했다. 다들 걱정을 했다. 다친 건 아닌가. 나쁜 일을 당한 건 아닌가. 지금 한창 호찌민시의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피라미드 회사에 감금된 건 아닌가 별별 걱정들을 하는 걸 약간 짜증 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런 건 아닐 걸, 얘들아. 보통 이런 건 술병 아니면, 남자 문제야.


줄리아는 오후 3시가 돼자 연락을 해 왔다. 이제 휴대폰을 켰고 지금 올 수 있다고 했다. 오라고 했다. 얘기를 들어 보고 어지간 하면 그냥 넘어가야지 생각하던 중이었다. 줄리아의 사수인 조도 들어오라고 해서 같이 얘기를 들었다. 줄리아가 한 얘기는 이러했다.

그녀가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나 있어서 자기를 깨우지 않은 식구들 때문에 엄청나게 화가 났단다. 그래서 그녀의 부모와 크게 다투고서는 집을 나갔다지. 회사에 연락은 왜 안했냐고 했더니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서 할 수가 없었단다. 그 길로 외박을 했대서 누구네서 잤냐고 했더니 남자 친구네서 잤다고. 남자 친구가 자기보다 8살 많은 직장인이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엔 왜 못 왔냐고 했더니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진 데다 전 날 밤에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취해서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단다. 자기 입은 옷이 주말에 집 나올 때 입었던 그 옷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에 오토바이 사고, 친지 장례식, 친지 병간호 등이 가장 유력한 이유인데 부모와 싸우고 남자 친구와 자고 술병이라니. 이건 뭐 내가 예상한 그대로여서 너무 신선한데?


다음은 그녀와 나 사이의 대화이다.


뭘 어떻게 해 줄까

미안하다. 계속 일하고 싶다.

네가 이러는 게 처음이 아닌데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쩌지?

그때는 나를 해고해도 좋다.

그럼 이런 일은 다시는 안 생기는 거니?

사실은 나도 이런 나의 문제를 고치고 싶다. 그런데 컨트롤이 잘 안된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아예 잠수를 타고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내가 연락을 하고 다시 나온 건 그나마 나아져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감사라도 하라는 거야?)

그럼 다시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네?

최소한 나는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경우에 다들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말은 내가 해야지!)

나는 어느 정도의 페널티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페널티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이미 충분히 미안해하고 있다.(어랏?)


이 아이의 당당한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그녀처럼 영민하고 수완 있게 일하는 사람을 다시 찾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그녀를 보내면 대타를 찾기까지 얼마간 다들 고생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너 여기서 일할 필요 없겠다. 더 좋은 데 알아봐. 통장 계좌는 메일로 보내. 잘 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면서도 일말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내가 내 뇌를 통제하기 전에 입이 이미 나불거리고 있었다. 직감에 따라 말했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인 이유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내게도 자기변명 같은 게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모두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짐작컨대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잘린 적은 없었던 건 아닐까. 이를테면 어쩌다 연락이 안 돼도 오기만 하면 일을 잘하니 굳이 그런 사소한 일은 탓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당당한 태도로 계속 일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 주마! 그렇게 하면 바로 해고각이라고!


집에 와서 찜찜했던 부분은 바로 그거였다. 이렇게 저렇게 포장해도 결국은 꼰대 짓 한 게 아닐까? 내 20대 초반을 돌이켜 보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 저녁 술 마시고 다음 날은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병아리 직장인 시절에는 전화기 너머로 꾀병을 꾸며내기 위해 각혈하는 목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었고. 누군가와 불화가 있으면 나라 잃은 것처럼 자책했다. 물론 잠수도 심심치 않게 탔다. 나는 그랬는데 왜 줄리아는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아니, 나는 줄리아가 술병 났다고 자른 건 아니다. 그녀의 범상치 않은 태도가 불편했다. 아무도 나를 자를 수 없다는 그 태도. 그런데 그건 또 뭐가 그리 잘못이야? 능력이 출중하여 다들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데 사생활 관리 못해서 한 번씩 두문불출한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까지 큰 잘못이야? 내가 너무 꼰대라서 젊은 친구의 기백을 담을 수 없게 된 건가?

이런 일이 생기면 잠들기 전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시 내 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인간의 결정이라는 건 종국에는 이성이 하는 게 아니고 감정이 한다더라. 나는 또 어찌나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인지. 너무 분석하려고 하지 마. 나랑 배짱 안 맞으면 대통령 할아비가 와도 일 못하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출근을 했더니 직원들이 대책도 없이 일 잘하는 손 하나 잘랐다고 원망하는 눈초리를 보낸다. 젠장. 이번에는 조금 덜 똑똑해도 좋으니까 제시간에 꼬박꼬박 나타나는 직원이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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