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득세하는 공산국가
이 나라 공무원님들이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 뒷돈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니 말에 의하면 베트남의 말단 공무원들은 2, 3년에 한 번씩 자리바꿈을 한다는데 이유는 공무원과 관할 지역민과의 유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정부도 그들이 뇌물 받아먹으며 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지. 그런데 가만 보니 이건 부작용이 더 많다. 담당자는 관할 지역 떠나기 전에 해쳐먹기 바쁘고 지역민으로서는 담당자가 새로 올 때마다 인사치레를 해야 한다.
오늘 아침, 관할 경찰서에서 담당이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고 이미 다 제출한 소방 관련 서류들 이외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으니 제출하라고 했단다(여기서는 경찰서가 소방 안전을 담당). 이미 제출한 것만 해도 웃돈을 많이 얹어 주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입맛이 썼다. 서류 제출에는 도장이 필요하고 그 도장은 관공서에서 받아야 하며 그 한 개 한 개가 돈봉투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도장마다 일련의 가격표가 있어서 그대로 내기만 한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줄다리기할 필요도 없고. 여하간 요지는 새로 온 담당이 관할구역을 한 바퀴 도는 모양이었고, 이미 3백만 동(한국돈 15만 원, 공무원 월급은 보통 한국돈 20만 원이라고 한다)에 딜 하자고 연락이 온걸 제니가 더는 돈을 줄 수 없으니 달라는 서류 다 제출한다고 했단다. 공무원들 사이에는 외국인 회사는 뭐든 으레 돈으로 해결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가 보았다(어쨌거나 이런 이유들로 야무진 베트남 직원이 없으면 실로 일하기가 힘들다).
이 정부도 나름대로 정책이 있고 합리가 있을 테지만 공무원들 일하는 행태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될 때가 많다(특히 베트남 교통경찰은 길에서 돈 뜯어가기로 악명이 높다). 공산국가에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 대부분 이런 형태가 되는 것 일가? 공부가 필요하네. 여하간 행태에 비하면 국가는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나로서는 낼 때 내더라도 해 보는 데까지 해 보자라는 오기가 생겨서 두고 보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아이고, 외국인이 남의 나라서 사업하면서 하라는 데로 해야지 별 수 있나'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싸워도 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경험적으로 그렇다. 결국 새로 온 담당님에게 돈봉투를 건넬 내 모습을 이미 그리고 있다. 남들은 더 훌륭하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돈봉투는 전달되었다. 새로 왔다는 담당은 몇 차례 우리를 방문했고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갔더랬다.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결국은 장인정신으로 빚은 두터운 종이책을 들고 나타났다. 반드시 비치하고 있어야 하는 서류들이라면서(지구의 종말까지 아무도 확인할 일이 없는) 버티고 앉아 있는 그를 그 날은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곱게 접은 봉투를 건네자 희색이 만연하여 돌아가는 새 담당의 뒷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쉬운 돈은 없다는 걸 그도 우리도 깨달았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