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은 왜 이리 빨리 닥치는가

인지부조화에 의한 자기 합리화

by 까망나비

월급을 받는 입장과 월급을 주는 입장이 다르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법한 일이다.


직장인이었을 때에는 나도 월급 날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고 급여가 며칠이라도 늦으면 한 달의 루틴에 차질이 생기곤 했다(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테니 월급 주는 사장이 되고 나서도 월급은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지급한다). 월급날이 큰 행사인 것은 직장인이었을 때나 사장으로 지내는 요즘이나 매한가지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지금의 나는 월급날을 목을 빼며 기다리진 않는다는 것이다. 월급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월급을 정산하고 제 때 송금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된 까닭이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숫자가 꼴도 보기 싫은 건 여전하다. 게다가 베트남 돈은 0이 눈이 돌아가게 많이 붙어 있다. 100만 원이 20,000,000 동이다. 지금보다 더 초보였던 작년에는 정산할 때 실수해서 월급을 더 보내거나 덜 보내거나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 회계 직원을 따로 둘 수 없는 규모의 구멍가게이다 보니 자금 관련한 것은 A부터 Z까지 모두 내 몫이다. 아이고, 하기 싫어라. 대신해줄 사람 없으니 억지로 하기는 한다. 그것 때문인가.


의심은 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누구 하나 잡을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게 호르몬 때문인지 급여날 스트레스 때문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최근 몇 달을 찬찬히 돌이켜 본 바 급여날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이걸 급여날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증후군은 목소리 톤이 달라지면서 시작된다. 누구하고 이야기하든 따지는 것이 먼저다. 그러다가 하나 걸리기라도 하면 그 애를 꼭 울리고야 만다. 어제는 베트남 직원 쭉미가 걸렸다. 매니저라서 책임도 큰데 마침 월요일부터 연달아 매일 나랑 실랑이를 하게 됐다. 거기다가 사소한 고객 컴플레인이 있어서 그걸 해결하느라고 나는 진이 빠진 상태였다. 드라마가 시작됐다. 회의하다가 내가 다그치자 쭉미가 울고 불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원들을 다 내보내야 했다.


왜 우는 건데?

스트레스가 심해. 요즘 매일 내가 혼나는 거 같아서.

그래서 컴플레인하는 거니?

아니. 그냥 답답해서 우는 거야.

다 있는데서 보란 듯이 우는 건 컴플레인하는 거 아니니?

그런 거 아니야. 그렇지만 월요일부터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고 블라블라.....


그날도 해는 저물었다. 여전히 우울해하고 있는데 퇴근하기 전에 아일랜드인 매니저가 와서 물었다.

오늘 쭉미는 왜 그런 거야?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이 매니저는 말없이 듣기만 하고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내가 또 물었다.

내가 너무 한 거니?

역시 묵묵부답. 그러다가 결국 한다는 소리가,

'You sounded having an impulse today.'

뭐라는 거니. 그러니까 내가 오늘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한 거라 이거지? 마땅한 이유도 없이 직원 하나 잡았다 이거지? 물론 나는 그런 식으로 되묻지 않았다. 그랬니, 라면서 쿨한 척하고 일어섰다. 속으로는 괘씸한 자식이라고 욕하면서 귀가했다.


그러다가 간밤에, 지금은 나의 거울이 된 그러면서 동시에 트라우마로 남은 나의 전사장 치타를 꿈에서 만났다. 치타는 회의를 하고 있다. 전 직원을 한데 모아 놓고 본인은 높은 왕좌에 자기 와이프와 나란히 앉아 있다. 나는 그에게서 좀 멀찍이 서서 그의 하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다. 왕좌에 앉은 치타는 버럭버럭 짜증을 내었고 직원들이 웅성웅성 소리를 냈다.


아침에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결국은 생각해 냈다. 치타는 월급날만 다가오면 매니저들을 잡았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구석구석을 체크하면서 이게 문제네 저게 문제네 트집을 잡았다. 그 트집이 월례 행사라는 걸 본인만 모르는 듯했다. 나랑 내 동료 부엉이는 입을 모아 욕을 해 댔다. '월급 때문에 큰돈 나가니까 깨나 속이 쓰리나? 아니면 돈 줬으니 막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옘병할. 그래, 치타였네. 급여날 증후군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워. 옛날 사장한테서 보고 배운 대로 하는 거니 아니면 성찰 없이 본능대로 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그리 되는 거니? 더 생각을 해보자. 아,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 쭉미 급여가 인상됐구나. 은연중에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누구 욕할 입장이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까지 갈 필요도 없다. 너, 인지부조화에 의한 자기 합리화도 이만하면 중증이다. 급여날 즈음에 숫자를 들여다보느라고 머리 골치 아픈 것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건 매달 하는 업무이니 일은 일로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닌가. 그건 핑계고 사실은 한 달에 한 번 씩 큰돈 뭉텅뭉텅 나가니 이제 일 년 남짓 된 앞 일 모르는 구멍가게 사장이 정신이 아찔 했겠다. 통장에 돈 확 줄어든 걸 보니 갑자기 내 직원들이 월급 값을 해 내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트집 잡아 대는 건 아니냐 이거지.


됐고, 안 이상 고쳐야지 어쩔 수가 없다. 사장의 길은 멀고도 멀구나. 직원들은 나름대로 자기 삶의 고충이 많으니 내가 무슨 연유로 자빠져다 일어났다 하는지 크게 관심 가질 것 같진 않다. 그저 나 혼자 이래 저래 해 보는 수밖에. 그 와중에 울고 불고 해도 어쩌겠나. 너나 나나 다들 초보인걸.


그나저나 치타에게는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야 할 모양이다. 적재적소에 가르침을 복기하게 되니 이 보다 큰 스승이 없네. 내가 이렇듯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틈날 때마다 씹는다는 걸 당신은 모르겠지. 당신은 나의 좌표다. 당신이 갔던 그 반대로만 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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