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휴가가 주어지면

by 까망나비

9월 첫 주, 아예 한 주를 빼어 전직원에게 휴가를 준다. 여름 몇 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쁜 관계로 바쁜 시즌 끝내고 즐기는 황금휴가가 될 터인데, 사실 그 누구를 위한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쉬고 싶어서 만든 휴가다.


나의 30대를 갈아 넣은 전 직장에선 아파서 하루 병가 내는 것도 여기 저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여행을 위한 별도의 휴가는 언감생심이었고 해외 여행을 이유로 휴가를 받는 다른 직원들을 보며 참으로 당당하도다 생각을 했었다. 나는 왜 그렇게 못했나를 생각해 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업무에 대한 애착이나 사명감 따위 보다는 상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충성도 높은 직원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잘 보이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컸던 탓에 심지어 여행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베트남에 와서 이런 저런 이유로 긴 휴가를 지내 보니(일단 구정이 열흘이다. 온 나라가 쉰다.) 쉬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 어디를 잘 안간다(고양이들을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다....). 딱히 해야 할 일 없으니 피곤할 때까지 수영을 한다. 피곤하면 낮잠 좀 자다가 책을 본다. 책도 바쁜 일 없으니 쉬엄쉬엄 읽는다. 될 수 있으면 소설을 고른다. 읽다가 지치면 평소에는 사치라고 여기는 영화도 본다. 영화도 보다가 재미 없으면 중간에 끊고 다른 타이틀을 시도한다. 의무감으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과 상관없이 배가 고파지면 먹을 궁리를 한다. 나가서 먹을까, 집에서 먹을까. 술은 맥주로 할까, 와인으로 할까 그런 얘기를 하며 빈둥거린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 보면 슬슬 몸이 근질거리면서 다른 직원들은 뭐하는지 궁금해 진다. 연락을 해 본다. 술 먹으러 나올래? 살짝 던져보면 사장이 하는 얘기라 그런지 거절하지 않는다(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내가 말하는 휴가란 이런 휴가다. 새로운 것을 찾아 다니는 관광 개념의 휴가는 안한지 오래 되었다. 나는 유럽에는 가 보질 않았는데 생각만 해도 벌써 피곤하다. 자주 못 올 곳이니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는가 말이다. 몇 해 전에 잠깐 뉴욕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여행 후에 발톱이 빠질 지경이 되었다. 안 보고 말면 그만일텐데 또 거기까지 가서 센트럴 파크도 안 가봤냐고 할까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안 보고 왔냐고 할까봐, MOMA는 어떻고, 부르클린 다리는 또 어떠냐고 할까봐 꽁무니에 로켓 단 것 처럼 돌아 다녔다. 그나마 몇 살이라도 어려서 가능한 일이었다. 가서 산다면 모를까 여행이라면 글쎄다 싶다(지금 같으면 뉴욕에서 살 엄두를 내기가 어렵긴 하겠다).


우리 직원들을 보니 하루 이틀이라도 쉬는 날이 생기면 반드시 어딘가를 간다. 심지어 주말을 이용해서도 먼 도시 여행을 한다. 나의 20대를 돌아 보니 나 역시 틈만 나면 잠 안자고 춘천, 강릉, 전주, 목포 등지를 돌아다녔다. 여름에는 물가를 다녔고 겨울에는 보드를 타러 다녔다. 그 때는 또 그렇게 해야 사는 것처럼 느껴졌던가 보았다. 지금 생각으로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20대를 그렇게 휘젓고 다닌게 아닌가 싶게 낯설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단정지을 일이 아니다. 나는 과거의 나를 잘 모르고 미래의 나는 더 모른다. 그러니 남을 어떻게 아나.


그래서 이번 9월 초에 있을 일주일간의 휴가에는 무엇을 할꼬하니(어차피 코로나로 해외는 못간다.) 베트남의 허리 부근에 있는 후에라는 도시에 갈 예정이다(고양이들을 어떻게 할는지는 차차 생각하자). 베트남의 휴양지는 몇 군데 가 본바 있지만(다낭, 나트랑, 무이네 등.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리조트가 즐비한 곳들이다), 후에는 처음인데, 내가 그 도시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한국의 경주 같은 고풍스러운 도시라는 사실 하나다. 그 고풍스런 고궁이나 보자고 비행기를 타지는 않는다.

거기에 친구가 산다. 전 직장에서 오래 전에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베트남 남자와 결혼했고 지금은 코로나를 피해 후에에 가 있다. 남편 고향이 후에이고, 8월이 산달인 까닭이다. 철딱서니 없던 시절부터 봐 왔는데 국제결혼에 아이엄마가 된다고 하니 역시 사람 일은 장담하는 게 아니다. 그 애가 낳은 아기는 어떻게 생겼을는지 궁금하다. 8월에 태어난 아기를 9월에 방문해서 보게 될테니 나는 누워서 잠만 자는 아기를 보게 될 예정이다. 아기랑 대화 할 수 없으니 대화는 애 엄마랑 할테다. 외국인 며느리 혼자서 몇 달을 한국말 못하고 지내느라고 고달팠으니 그녀와 나는 폭풍 수다도 떨게 될 거다. 필시 고통스러운 출산의 과정을 서술하려고 할 텐데 그건 사양이다. 미리 얘기해 두어야지. 나는 출산할 계획이 없으니 그 얘기는 다른 친구에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리고 거기에 가면 나의 최애 베트남 국수인 ‘분보후에’를 먹을 수 있다. 분보후에의 고향은 후에이다. 국수 이름인 ‘분보후에’의 ‘후에’가 이 도시를 칭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포’보다 내 입맛에 훨씬 맞다. 질리지 않는 맛이다. 제일 좋은 건 국물이 빨갛고 칼칼하다는 점이다. 베트남 고추를 넣어 더 맵게 먹을 수 있으며 큼지막한 돼지 족이 그릇 한 가운데 담겨 나온다. 온갖 생야채를 담가 먹는 것도 ‘분보후에’가 맛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결국은, 친구 얼굴 보러 그리고 국수 먹으러 후에에 가겠다는 얘기였다. 현재까지의 계획은 그러한데 모를 일이다. 요즘 같아서는 당장의 내일을 장담하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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