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기서 사냐고 물으면

by 까망나비

2016년이니까 벌써 4년 전이다. 당시 일하던 회사 대표가 '누가 베트남 갈래?'라고 물었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보내주십시오!'라고 벌써 여러 차례 의지를 피력했었다. 회의 때마다 아무리 물어도 선뜻 가겠다는 사람 없고, 번번이 나만 손을 들어대니 대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 가라 자포자기하는 표정이 되었다. '너는 여자고 결혼도 했고 여기서 할 일도 많은데 꼭 그렇게 가야겠니?'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듯했다. 여하간 그렇게 호찌민에 오게 돼서 자포자기한 대표와는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별했다. 그러고는 혼자 회사 차려 4년 넘게 호찌민에 살고 있는 중이다.


보내 달라고, 내가 가겠다고 대표를 목졸랐던 이유는 아무래도 하나밖에 없었다. 서울에 살기가, 한국에 살기가 점차 버거워지던 중이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쏟아지는 정치 뉴스들에 진절머리가 났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싶은 이야기들. 스위치를 끌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생각하는 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결국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은 내가 호찌민에 온 그 해 겨울 탄핵되고 말았다. 정치뿐이 아니었다. 송파구는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몇 안 되는 동네 중 하나였다. 누구네 아파트 값이 4억이 올랐다는 얘기보다 그 해 오징어가 안 잡혀 오징어 통찜을 먹을 수 없게 됐다는 등의 뉴스에 더 관심을 갖곤 했는데 돌이켜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송파구의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의 5층에서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60만 원을 내고 살았다.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외식하고 짐에서 피티하고 문화생활하고 철 따라 옷 사 입고 자가용 끌고 여행 가고 어쩌고 저쩌고 분주하게 살다 보면 남편 월급 내 월급 다 털어 넣어도 간신히 한 달을 살았다. 그런데 남들은 샤넬을 입고 벤츠를 타고 풍광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까지 키우는 듯했다. 그게 부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게 다 내가 만든 허상이야.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나랑 비슷하게 빠듯해. 인스타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사람들이나 번들번들하게 살지, ' 라면서 먼지를 털어내듯 생각을 털어내곤 했다. 여전히 한 가지 질문은 남았다. 계속 이렇게 살면 다음엔 뭐가 오는 거지?


아마 여기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줄기차게 손을 들어 베트남에 보내 달라고 졸랐던 이유 말이다. 그곳이 어디든 여기가 아닌 곳이기만 하면 되었던 거였다. 그곳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몰랐지만 일단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생활에 골몰하느라 지금의 피로감을 잊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열이면 아홉은 묻는다. 베트남 사는 거 어때요? 나는 서슴없이 좋아요,라고 답한다. 만 4년이 지난 호찌민 살이에 제법 길이 들어서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어찌나 잘 지내고 있는지 한국에 잠시라도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가끔 엄마가 해 주던 음식들이 생각나긴 한다. 그걸 빼면 한국에 하나도 그리운 게 없다니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요즘엔 심지어 직접 김치, 게장도 담아볼까 생각이 든다. 곧 그리운 엄마 음식도 해결하게 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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