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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Mar 01. 2022

수호천사

"다녀오겠습니다!"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왼손에 들고 마루를 내려서면서 외쳤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밥을 먹는 중이다.  더경이도 제 입에 숟가락 밀어 넣기 바쁘다. 인사는 자연스러웠다. 목소리가 떨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문을 나서면서 오른쪽 손가락의 힘을 풀었다. 주먹을 쥐고 있을 경우 의심을 살 수 있다. 대문을 나서자 걸음이 빨라졌다. 심장 박동도 덩달아 빨라졌다. 오른손 주먹을 꼭 쥐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밥을 더 먹어야 하고 엄마는 더경이가 다 먹을 때까지 상을 치우지 않을 것이다. 골목 끝에 모퉁이가 보였다. 그 모퉁이를 돌면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는 안전하다. 달려도 나를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저 학교에 빨리 가고 싶은 아이인가 보다 생각할 것이다. 문방구의 알록달록한 샤프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 옆에 나란히 진열된 지우개들도 떠올랐다. 나는 단숨에 달려갈 수 있다. 내가 찍어둔 샤프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게 300원이었으니까 남은 돈으로 방과 후에  하드를 사 먹을 수도 있다. 물론 지선이와 경희한테도 50원짜리 서주 아이스바를 한 개씩 들려줄 수 있다. 그 애들은 방과 후에 매일 문방구에 들른다. 어느 날은 머리방울을 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쭈쭈바를 하나씩 사기도 한다. 지켜보는 내게 한 입 주기도 한다. 이틀 전에는 둘 다 샤프를 샀다. 들장미 소녀 캔디가 그려진 노란색 샤프였다. 나는 테리우스가 있는 샤프를 사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고 지선이와 경희는 그걸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애들은 '너는 안 사?'라고 묻는다. '응. 안 사. 담에 살래.' 


누군가 내 목덜미를 잡았다. 골목 모퉁이를 막 돌려는 찰나였다. 나는 내 목덜미를 잡은 게 누군지 잡히기 전에 알았다. 

"손 내밀어봐."

엄마는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오른손 주먹을 더 꽉 쥐었다. 

"오른손 줘봐."

내가 움직이지 않자 엄마가 억지로 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내 꼭 쥔 손가락을 엄마는 하나씩 펴 나갔다. 

"이놈의 가시나.."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천 원짜리 지폐를 내 코앞에 흔들면서 소리쳤다.

"도둑년 될래? 도둑년? 쪼그만 게 왜 이렇게 겁이 없어? 천 원씩이나? 지난번에 그렇게 혼나 놓고도 못 고쳐?"

"...."

"엄마 아빠가 몇 번을 얘기해? 그렇게 자꾸 훔쳐 버릇하면 평생 도둑질하다 감옥 간다고 했어 안 했어?"

"...."

"이게 다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가방 뒤져서 더 나오면 오늘 학교 못가!"

"그게 다야!"

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엄마가 들장미 소녀 캔디가 웃고 있는 신발 가방을 낚아채 앞주머니를 뒤졌다. 캔디의 이마에 '3-2 두라미'라고 쓰여 있다. 엄마는 내 뒤로 와서는 가방을 열고 안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내 앞에 와서 섰다. 

"가."

"....?"

"학교는 일단 가. 갔다 와서 얘기해."



문방구에는 들르지 않았다. 지선이와 경희와는 문방구 앞에서 헤어졌다. 같이 들어가자고 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집에 가면 엄마가 도끼눈으로 날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아빠는 회초리를 때릴지도 모른다. 지난번에는 더경이를 놀이터에 놓고 혼자 돌아왔다고 발바닥을 맞았다. 발로 지은 잘못이라 발을 때린다고 했다. 그럼 이번에는 손바닥을 맞을지도 모른다. 손으로 지은 잘못이니까. 항상 집에 가는 길은 한참이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다 와간다. 가는 길에 교회를 지나면 반은 온 셈인데 저만치에 교회가 보였다.


엄마 지갑은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기 전에 얼른 천 원을 꺼내서 엉덩이 밑에 깔았다. 아무도 안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지난번에는 아빠 주머니에서 오백 원을 빼갔었다. 더경이와 폴라포를 사 먹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난데없이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발뺌을 해 보았지만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입술이 보라색이 되는 하드는 피했어야 했다. 그때도 엄마는 커서 도둑년이 될 거냐고 물었다. 도둑년이 될 생각은 없다. 그냥 폴라포가 먹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먹을 때 나도 돈을 내고 사 먹고 싶었을 뿐이다. 더경이와 나는 주로 구경하는 쪽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하드를 사 먹거나 병아리를 사거나 뽑기를 할 때 우리는 구경을 했다. 더경이는 '한 입만!' 이라며 졸라서 얻어먹기도 했다. 나도 가끔 그러긴 했지만 '안돼'라고 하면 그냥 물러났다.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나와 더경이에게도 용돈을 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돈이 없다고 했다. 아빠 공부 뒷바라지해야 하고 돈도 갚아야 한다고 했다. 샤프를 사달라고 했을 때는 연필 많은데 무슨 샤프냐고 했다. 샤프 써 버릇하면 글씨 못쓰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회 대문에 다다랐을 때 걸음을 늦추었다. 항상 이 앞에선 천천히 걷는다. 대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근사한 철대문 안으로 널찍한 마당이 보였다. 첨탑이 높아서 고개를 한참 뒤로 꺾고 올려다보아야 한다. 왠지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이 아름다운 교회이다. 영국이나 스페인 같은 이름만 들어본 나라에 가면 있을 법한 모양이다. 이곳을 지나가면서 한 번도 안에 사람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언제나 조용하다. 대문 안의 정원 어딘가에서 하얀 옷을 입고 날개를 단 천사가 날아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천사가 날아오르면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려야 한다. 눈이 멀 수도 있다. 천사의 후광 때문에 교회 건물과 유리가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 천사는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라미야'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고 천사를 본다. 

'라미야, 나는 너의 수호천사야.'

'수호천사.. 가 뭐하는 천사인데요?'

'너를 지켜주는 천사란다.'

'... 엄마한테서도 지켜줘요?'

'그럼. 지켜주고 말고.'

'집에 가면 맞을 텐데 막아 줄 수 있어요?'

'당연하지. 엄마는 너를 때리지 않을 거야.'

'아빠는요? 아빠도 안 때릴까요?'

'아빠도 때리지 않을 거야.'

'.... 그럼 제가 샤프도 가질 수 있어요?'

'많이 가질 수 있어.'

'진짜요? 그럼 친구들한테 나눠줄 만큼 가질 수 있어요?'

'당연하지. 네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

'제가 친구들을 데려와서 천사님을 소개해도 돼요? 제 수호.. 천사라고?'

'언제든 데리고 오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어서 말해 봐.'

'수호천사가 용돈도 줄 수 있어요?'

'용돈도 줄 수 있어. 네가 필요한 건 다 해 줄 수 있어.'

'이럴 수가... 내일 올게요.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야 돼요. 꼭이요!'

'그래. 내일 여기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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