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은 두 종류. 가족 및 친척들이 모두 나를 미워하여 죽이려 드는 꿈과, 친오빠가 나를 강간 및 내 앞에서 사정하는 끔찍한 꿈.
때로 두 꿈은 혼합되어 엄마는 친족성폭력 가해자인 오빠를 옹호하고, 오빠는 나를 무자비하게 때리려 든다. 그리곤 억울하다 한다. (뭐가?)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내가 이런 꿈을 꾸는가. 2차 성징이 막 시작되던 시절, 내가 월경(정혈)을 시작한 것을 오빠가 알아버렸다. 엄마가 밖에 다 들리게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척하고 싶어서 월경 축하 파티를 열어주겠답시고 그랬다. 나는 극구 반대했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몸을 잘 부딪치고 놀던 두 살 터울 남매는 여자와 남자가 되었다. 여자는 어려서 별 생각이 없었으나, 성착취물(일명 포르노)을 일찍 접한 남자는 달랐던 모양이다. 놀 때 가슴이나 엉덩이를 터치하곤 하더니, 어느 날엔 자기 침대에 똑바로 누워보라 했다. 그 옆에 자기가 눕고는, 내 성기를 자신이 만질 테니 나도 자신의 성기를 만져보라 했다. 실제로 만지는 행위가 이뤄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중간에 엄마가 오빠를 불러 오빠가 후다닥 방을 나가던 장면이 기억난다. 꽤 오랫동안 나는 이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상담선생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분명 실제 있었던 일이 맞을 거라고 하셨다. 너무 끔찍한 기억이라 어린 내가 해당 장면을 머릿속에서 강제로 도려냈을 거라고.
고등학생 시절, 지금과 같이 친오빠가 나를 성폭력하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엄마께 위 일을 털어놓았다. 한숨 쉬며 던지던 엄마의 첫마디.
그걸 지금 얘기해서 어쩌라고.
나는 벌벌 떨며 울면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원래 어릴 땐 의사놀이 같은 걸 하면서 다 그렇게 논다고 했다. 내 경험 속에서 의사 따윈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성인이 되고 나서 오빠는 분개한 적 있었다. 네가 나를 사춘기 때 변태로 몰아가서, 내가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는지 아느냐고. 그럼 사춘기 때 내 몸을 더듬은 그 자는 누구일까? 거실에서 대놓고 성착취물을 보다가 시시때때로 걸려서 혼이 나던 그 어린 남자애는 누구였을까?
최근에 엄마에게 악몽을 꾼다며 가족 및 친척이 나를 죽이고 때리려 드는 꿈을 이야기 한 적 있다. 그때 엄마는 잘 다독여주셨다. 오늘은 친오빠의 성폭력에 대한 꿈을 꿨기 때문에, 분노에 사로잡혀서, 그러나 겨우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십여 년 전 그때처럼 한숨을 쉬었다. 의사놀이 이야기가 또 나왔다. 근데, 라고 시작하던 엄마의 말은 나에게 상처를 더 줄 것 같단 이유로 끊겼다. 고등학생 때와 같은 엄마의 태도로 인해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어졌음에도. 내 꿈에는 영원히 친오빠가 등장해 내 얼굴에 사정을 하고, 엄마는 그런 오빠를 옹호하는 내용이 나올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최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나를 매우 좋아해 준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잘 모르지만, 둘 사이에 끌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서워진다. 나는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활발한 만큼 뒤에 시꺼먼 아가리를 쩍 벌린 어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데, 너와 내가 그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전 연인이 떠오른다. 나의 아픔을 최선을 다해 보듬으려 했지만, 끝내는 나를 제 눈앞에서 치워달라며 내 엄마에게 전화했던 그를.
나아지는 것 같았던 우울은 그와의 이별을 기점으로 다시 심해졌다. 운동도 안 했는데 3개월 동안 10kg이 빠졌다. 지금은 식사량을 꽤 회복했지만, 여전히 내 멘탈과 일상은 어딘가 많이 삐걱거린다.
새로 만난 사람은 자기 몫의 아픔만으로도 힘겨워 보인다. 밝게, 씩씩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나 생활고의 현실은 그를 어쩔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내 몫의 아픔까지 얹을 수 있을까? 그 사람과 내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겁이 난다. 밤의 바다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사람을 죽고 싶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밤바다에 빠졌던 나는 누군가에 의해 구조될 수 있을까, 혼자 죽을 힘을 다해 기어 나올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별이 비치는 물에 꼬르륵 잠겨 흩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