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회피의 상관관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대내외적으로 삶에 많은 변화가 있어서라는 얕은 상황 설명 속엔 사실 글을 쓰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와 마음의 부담을 감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숨어 있었다.
집을 계약했다. 생애 처음 겪는 일들이 나를 뒤흔들었다. 누군들 이 큰일이 가볍겠느냐만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완벽을 추구하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매수를 결정하는 시점부터 계약금, 중도금, 잔금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전세자를 구하면서 집을 샀다. 어쩌다 보니 부동산 중개인만 세 명이 됐다. 각자의 입장들이 얽히고설키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서로 간에 최대한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공통된 마음들. 그 안에 나도 있었다. 계약 과정에서 혹시나 생길 미래의 달갑지 않은 일들을 방지할만한 사항은 특약에 적절히 넣었는지, 중개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전세금을 최대한 원만히 맞출 수 있을지, 세무적인 문제는 놓친 게 없는지, 법무사는 적절한 가격에 잘 구했는지 등. 임차인과 계약이 진행되기 전날엔 계약서 초안도 요청해서 받았다. 여기저기 금액을 비교해 보고 법무사를 구한 뒤 그에게 사전 견적서를 받았을 땐 항목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정정을 요구하는 내 모습도 보였다. 잔금일 전엔 중개인 및 법무사와 최종 예상 비용을 미리 확인하고, 필요 서류들은 이미 몇 주 전에 챙겨놨으면서도 몇 번이나 더 체크를 했다. 계약 사항에 들어있던 보수공사가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는지도 확인했다. 이 모든 게 처음인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지만, 와중에 더 힘들었던 건 조금의 손해라도 보지 않기 위한 나의 사소하고도 큰 요구들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불편하고 번거롭게 만든다는 게 너무 잘 느껴져서였다. 그러면서도 모든 과정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내 입장을 무조건 내세우기도 어려웠다. 결국 난 어느 정도 선에서 사람들과 타협하고 조율해 가며 세세한 것들은 포기하기를 택하기도 했다. 생애 처음 하는 큰 계약. 혼란 속에서 때론 감으로 이것저것 결정해 가며 때로는 발로 뛰며 여러 가지를 알아보느라 정신이 어디로 가 있는지 모르겠는 날들과 함께, 실은 이따금 자주 외롭기도 했다.
주변의 매매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봐도 나처럼 꼼꼼하게 모든 과정을 검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개는 큰 틀 내에서 매도/매수 과정이 큰 탈 없이 흘러간다면 물 흐르듯 계약을 진행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그런데 나는 성격 상 그게 도무지 되지를 않았다. 회사에서도 유독 손에 꼽게 실수가 거의 없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던 나는 직장 생활하며 모아둔 돈의 거의 전부를 쏟아 넣게 되자 평일이며 주말 할 것 없이 계약의 모든 프로세스를 할 수 있는 최대한 낱낱이 하나하나 검토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를 다행히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감사함과는 별개로 어떨 땐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힘들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각자의 입장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관계를 조율해 나가는 일이 중개인, 전세자, 매도자와의 이해관계보다 때로 몇 배는 에너지가 들어가고 지쳤다. 어떤 경우엔 나는 아직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은 게 남아 있는데 '피곤하게 너무 하나하나 다 챙긴다.'는 눈치를 주시는 것도 자주 느껴졌다. 결국 잔금날이 다가오던 주에는 한 번 마음이 팡, 터져버려선 남자친구에게 서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같이 알아봐 주는 내 편이 없어 영 혼자인 기분이라며.
어쩌면 내가 정말 대다수의 사람에 비해 유독 꼼꼼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상관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 정도는 그냥 넘겨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집을 계약한다는 게 애초에 힘들고 버거운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째서 나는 아무래도 영 남들보다 더 사서 고생하는 기분이 드는 건지. 생각해 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이런 성향이었다. 10년 넘게 일해온 회사에서도 나의 특장점은 언제나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타인의 업무적 실수나 빈틈이 내 눈엔 너무 잘 보였다. 회계 일을 하는 데에는 직업적으로 너무나 좋은 장점이었고 그로 인해 나름의 인정도 받게 됐다지만 언제나 삶은 동전의 양면. 얻는 게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어느 날 삶에 찾아왔던 번아웃도 이 성격 탓이었다.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던 그 어느 날들이 축적되어 가면서부터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싶었다. 하여 긴 시간 동안 내 성향을 역으로 부정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라 정의 내리며 살아오기도 했다. 비밀스럽게 감추며. 자신조차 속이며.
하지만 수십 년 켜켜이 쌓여 형성된 성격이 마음처럼 쉬이 바뀔 리는 없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속이는 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앞으로의 긴 인생이 달려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큰일이 닥치자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이 한껏 잔뜩 들통나 버렸다. 계약을 진행하면서도 회사 일엔 소홀할 수 없어서 와중에도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아 내는 나를 보며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스스로가 몹시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종종 쓰던 글도 여러 상황들에 치이기 시작하자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선 글을 써 봤자 어차피 제대로 완성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미뤘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땐 분명 자주 쓰고 싶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엔 그냥 인정하고 살면 또 어떻겠나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토록 거슬리게 싫어하던 나의 완벽주의 성질머리를. 스스로를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내 모든 순간들을. 그랬더니 희한하게 오히려 어떻게 해야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을지 방향이 생겨 나가기 시작했다. 내 글엔 늘 무게가 담기는 편이라 글을 써 내려가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어떤 날은 무거운 글을 쓰다가도 가끔은 이렇게 이번주 브런치에서 온 알람처럼 마음이 흐르는 방향대로 가볍게 '브런치 타임'같은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엉망인 삶의 온전함에 대하여.'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 매거진의 주제다.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아마 거기엔 글의 주제와 일견 상반되어 보이게 여전히 완벽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불온전한 내 모습도 포함되어 있을 테지. 이 내밀함을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한동안 글쓰기를 거부해 왔던 것도 같다. 앞으론 마음에 드는 글보단 시도와 완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도 이따금 써 내려가볼까. 어쩌면 가벼운 글들을 내뱉기 위한 새로운 매거진이 생길 수도, 아니면 이곳에 계속 연재를 해낼 수도. 한 치 앞의 또는 먼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전혀 예상되지 않지만, 그리고 분명 이렇게 글을 발행한 후에도 삶의 꽤 많은 순간에 나는 여전히 완벽하고 싶으며 회피하고 숨어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 모습조차 사랑할 순 없어도 이젠 인정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냥, 난 그런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때론 스스로를 옥죄며 힘들게 하는. 이 관성을 부정하거나 바꾸려고 애쓴다고 해서 마음이 의지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이 진실이야말로 10여 년간의 오랜 상담과 나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깨닫게 된 사실이다. 그래. 때로 제법 내가 엉망이고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조차도 어쩔 수 없이 이게 나인걸. 완벽주의가 허상인 걸 알면서도 그걸 바라고 있는 내가 여전히 존재하는 걸,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