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릴 수밖에 없던 세월을 견뎌낸 나를.
성인이 되어 했던 첫 아르바이트. 카페를 겸하는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일한 지 채 몇 주가 되어갈 즈음, 나를 고용했던 사장은 한날 퇴근길에 나를 데려다주며 나중에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도 식사를 종종 하는 듯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나는 친절하고 좋은 분을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일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말해달라는 이야기도 종종 평소에 했었으니.
식사를 약속했던 날이 다가왔다. 일이 끝나고, 이제와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사장은 나와 밥을 먹고 오겠다는 이야기를 굳이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나갔다. 함께 차를 타고 서울 북악스카이웨이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엔 학교 생활은 어떠한지, 근무는 괜찮은지, 혹시 어려운 일은 없는지. 공과 사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인 몸을 노곤하게 풀어주는 말들이 차 안을 오갔다. 도착하자 한눈에 서울이 들어오는, 마음이 트이는 광경을 마주했다. 당시에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간혹 청년부 목사님은 아이들과 함께 드라이브로 마음이 트일만한 좋은 곳들을 데려가 주시곤 했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며, 첫 사회생활에서 좋은 어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제법 화창하지만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이었다. 꽃샘추위가 다가오던 여느 3월의 겨울. 그해 좋아했던 새빨간 색의 털 점퍼를 입고, 해맑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날이 삶에 붉은 낙인처럼 남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주말 오전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명동으로 이동했다. 낙지볶음 집이었다. 사장님은 반주를 하고 싶으셨던지 소주 한 병을 시키셨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술을 즐기거나 잘하질 못한다. 그날도 한잔만 예의상 받아 두고 입만 댔다. 그 사람은 대략 두어 잔정도 마셨던 듯하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채 반 병 정도가 남아 있었나. 딱 반주 정도로 적당히 입만 축인 듯했다.
이후 나는 저녁 약속이 있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카페를 가거나 일찍 헤어지겠구나 생각했다. 식당에서 나와 몇 걸음을 걷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내게 DVD방을 가봤냐는 질문을 한다. 걸어가는 길목에 DVD방이 하나 보였다. 가보지 않았다고 답하니, 궁금하다며 한 번 같이 들어가 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곤란해하며 거절했다. 한 30분 뒤면 이동해야 하니 카페에 가자고. 그 인간은 그럼에도 끈질기게 마치 떼쓰는 아이처럼 순수한 눈망울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 공간이 너무 궁금하다며 계속 저 안에서 영화를 봐보고 싶다고 한다. 수없는 실랑이를 하다 "어차피 들어간다고 해도 영화도 다 못 보고 나와야 하는걸요."라는 내 말에, 중간에 나오는 건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냐며 "혹시 지금 나랑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하고 되묻는다.
지금의 나라면, 애초에 여기까지의 상황으로도 가지 않았을 테고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쓰레기를 내뱉는 짐승보다 못한 생명과 일찌감치 인사하고 헤어졌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달랐다. 어떤 그 무엇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분위기의 흐름에 압도될만한 연약함. 사회에서 처음 만나는 어른. 앞으로 계속 볼 텐데 돈을 받는 입장인 을의 나는 고용주에게 예쁨 받고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등의 복잡한 실타래가 머릿속에 혼란하게 뒤엉킨 상태에서 저 말을 듣자,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가 만들어낸 기묘한 분위기의 흐름에 순간 압도되어 휩쓸리고 말았다. 더 거절했다간 왜인지 앞으로의 관계가 불편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 중에 생각의 방향을 그의 언어에 맞추기로 한다. '에이, 진짜 궁금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가보고 싶으신 걸지도 모르지. 좋은 사람을 내가 괜히 혼자 이상한 생각하고 오해한 걸지도 몰라. 잠깐인데 뭐 별일 있겠어. 평소에 잘 챙겨주시던 친절한 어른이셨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요구가 통할만한 온순한 사냥감을 그 시절 아주 탁월하게 잘 고른 거였겠지.
2층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나오는 매장. 카운터에서 그 사람이 결제를 했고, 나는 영화를 골랐다. 어차피 금방 나가야 했지만 내심 그 짧은 시간 동안 혹시라도 영화에 그 어떤 스킨십의 장면도 나오지 않았으면 했기에 '의형제'를 골랐다. 예상대로 초반부엔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들이 나왔고, 처음엔 아무 일이 없었다. 거리를 두고 앉아 화면만 바라볼 뿐.
약 20분 즈음 지났을까. 나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사장님, 저 이제 슬슬 가봐야 해서요. 일어나야겠어요." 하니 알겠다고 답한다. 그러다 슬며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손을 잡는다. 문은 닫혀있고, 둘만 있는 공간. 내게 이야기한다. "앞으로 일하다 힘든 일 있으면 이야기하고. 매장 잘 부탁할게." 여기까지도 내겐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본능적 직감과 함께 머리가 뒤죽박죽 뒤엉키기 시작하는 혼란의 틈을 타고 애써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평소 교회 다닐 때 어른들이 흔히 손 잡고 따뜻하게 말씀 많이 해 주시던데. 이 분도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두 팔로 나를 껴안더니 볼에 입술을 댄다.
너무 놀라면 현실 감각이 사라지고 몸의 감각이 해리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어 그 사람은 나를 뒤로 눕혔고 키스를 하려 했다. 얼어붙어 저항할 수 없던 몸으로, 최대한 이 사람을 티끌만큼이라도 더 자극시키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는 본능적인 생존 욕구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팔 아래 갇혀 누운 채 그의 입을 피하려 이리저리 힘 없이 고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순간 그의 입술이 닿았고,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 사장님.... 왜 이러세요."라고.
차마 몸부림을 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성인 여성 치고도 체구가 아주 작고 마른 편이다. 그런 몸으로 30대 건장한 남자의 힘을 이겨낼 도리는 없었다. 내 최대 목적은 '더는 상대를 자극시키지 않는 것, 그 단 하나'였다. 이 사람이 갑자기 눈이 돌아 힘으로 나를 제압하고 강간이라도 한다면,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이 밀실에서 나는 그저 당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찰나의, 그러나 억겁이었던 단 몇 분의 시간은 내게 남성 앞에서의 무력감과 공포감을 생생히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불행 중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그나마 그 순간의 내가 현명했던 걸지, 다행히 그 사람이 그 정도의 악인은 아니었던 건지. 내 말을 듣자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아, 미안. 술에 취해서 그만 내가 실수한 것 같네. 네가 너무 귀여워서......."라는 말을 했다. 슬프게도, 후에 오랜 시간 나는 '어쩌면 내가 다르게 생겼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라며 나의 외모를 극히 혐오하는 시기를 겪게 된다. 자책이란 그런 거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일지라도 어떻게든 일이 벌어진 이유를 내게서 찾고야 말려는 것.
밖을 나오자 그 사람이 거듭 이야기한다. "네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그러면서 미안하니 이대론 안 되겠다며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이제야 겨우 그 공간에서 살아 나왔는데, 혹시나 조금이라도 이 사람의 심기를 거슬리면 순식간에 다시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프게도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지하철 타고 가는 게 동선 상 편해서요. 혼자 갈게요."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결코 그의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거절 끝에 다행히 그는 내 의견을 수긍했고, 마침내 헤어지려던 순간 그 사람은 알겠다며 다른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다음 주 아르바이트는 나오는 거지?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한날엔 그날 내가 겪은 일을 인터넷에 올렸었다. 그리고 마주했던 첫 반응은, 그 사람이 나쁜 건 맞지만 도대체 거길 왜 들어갔냐며 정신 차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라는 말. 애초에 일은 이미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앞의 말이 나를 칼처럼 찔렀다. 아마 그건 스스로에게 향해 있던 자책의 화살을 텍스트를 통해 마주했기 때문이었겠지. 결국엔 그 사람의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채 DVD방에 들어간 것. 이유를 불문하고 그건 결국 내 선택이었다는 것. 그게 주변의 누군가에게 피해를 당당히 알리기에 너무 큰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는 것. 그리하여 수년의 무너져버린 일상들을 홀로 견뎌야만 했던 것.
시간이 흐른 뒤 그 매장이 있던 동네를 지나가다 우연히 뒤에서 그가 나를 반갑게 툭툭 치며 인사한 적이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오랜만이다!” 라며 아주 해맑게. 뒤돌며 재활용 처리도 안될 쓰레기를 보는 표정으로 그를 위아래로 훑으니,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어... 혹시 아직도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라는 말을 던지던 사람. 이후론 태연하게 마치 원래 가끔 연락했던 사람인 양 메시지를 하나 툭, 보내더니 어떻게 지내냐며 매장을 옮겼으니 놀러 오란다. 세상엔 이런 유형의 군상도 있구나. 범죄자의 선상에 놓인 자들이란 애초에 상식 선에서 이해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준 사람. 그런 그가 내 세상에 등장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남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이미 무너져 내려있던 나의 일상. 그 모든 삶의 형태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는 굴레로 밀어 넣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이 의미 없는 전제는 긴 시간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놓질 않은 건가. 나에게 벌어진 일의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내야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라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생각, 그러려면 그 이유가 부디 내게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 혹여 언제 불시에 또 다가올지 모를 생존의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던 방어기제는 점점 목줄이 되어 내 생명을 꼴깍이게 했다.
긴 시간 나를 옭아매던 이 족쇄가 느슨해지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느 날 상담에서 '요즘 "용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다 문득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이런 말을 했었다. "선생님, 그때 그 선택을 한 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도대체 왜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걸까. 그랬어야 했는데. 그게 나를 긴 시간 힘들게 만들었고, 그러니 결국 다 내 탓이라는 생각에서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이렇게 오래 상담을 받아 왔으면서도 여전히 그날의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역으로 미워져서 현재의 나도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지금은 그때의 나에게, 이후의 모든 시절의 내게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어요. "그날 그 선택을 했었어도 괜찮다"고요.
물론 제게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날의 저는 그 공간에 있길 택했고, 이후로 세상의 절반인 남자를 두려움과 공포로 여기며 불안에 눈이 가려진 세월을 살아간대도, 남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몸을 살랑이는 바람이 제겐 살을 에는 칼날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지나간대도. 몸에 박힌 가시를 견디다 못해 남들을 울컥 찌르다 결국 나를 죽이고 싶어 지더라도, 원래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싶은 날들이 흘러간대도. 그 모든 날의 나를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해 마음이 저며오는 날들이 나를 관통한대도. 그럼에도 그 아픔도 내 삶의 모습이니, 괜찮다고요."
한때는 고통에서의 자유를 꿈꿨다. 나를 함부로 대한 그에게 분노했고, 채 도와주지 못했던 세상에 좌절했다. 그러다 더는 찢겨가는 생을 바라보기 싫어 어느순간 그들을 용서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내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짓이기는 아픔이 결국 나로부터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된 후부터는 스스로를 힘들게 해 온 자신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면 상처가 나아질 것 같았기에. 그러나 온 힘을 다해 나로부터의 해방을 원할수록 그 모든 길의 끝에선 '그렇게 될 수 없는 나'를 마주했다.
어쩌면 진정한 용서란 생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아픔은 다 낫질 않았지만, 이따금 물씬 올라와 퍼런 멍의 상흔이 존재함을 다시 마주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에 있겠어.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에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