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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셋: 한글

나는 못 본 북한 사람

뭐든지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면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피사체를 볼 수 있게 되는 법.

외국에서 살다 보니 한글에 대해 아주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된다.

사실 특수교사로 12년을 일하면서 대상에게 한글을 깨치게 하는 것이 그저 시간이 지난다고 익혀지는

당연한 일이 아니고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속도나 정확도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쪽에서만 그랬던 거지 막상 일곱 살 반까지 (만 나이 5세 반이긴 하지만) 한글을 못 읽었던 아들을 가르치면서 또 한 번 문자해독에 분야의 무궁함에 놀랐고. 그 옆에서 괜히 혼자 엿듣다가 네 살(만 나이 3살)에 글을 줄줄 읽던 딸을 보며 이건 뭐가 매우 신비한 장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기는 했었다.

그리고 이곳 헝가리에 와서

우연한 기회이긴 하지만 벌써 3년째 이곳에서 헝가리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재미로 부담 없이 시작했는데 역시나 (자랑이 아니라) 그랬던 가닥이 있어서 그런지 열심히 했고 원격으로 취득할 수 있는 한국어교원자격증도 취득했다. -1년 반 정도 소요되었고 200만 원 가까이 학비가 필요했다-

핑계 같지만 그 과정을 하면서 한국어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할 수는... 없었다. ㅜㅜ 그냥 자격증 하나 돈으로 산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정도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학생들 앞에서 조금 더 떳떳한 교사가 되었다는 거 정도로 스스로에게 의미를 두기로 했다.

여하튼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중요한 사실 중 하나!

한국어에서 한글은... 정말 기가 막힌 문자가 확실하다.(속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학생 중 한 명은 디자인 전공이었는데 한글의 모양이 예뻐서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다 큰 외국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일반적인 상황을 전제로 했을 때 한글이라는 문자를  익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만큼 쉽게 익힌다. 읽고 쓰기가 능숙해지는 데는 물론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원리를 배우고 비슷하게 흉내 내게 쓰고. 읽는 것은 어느 경우 일주일이면 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1. 재작년 대학 예비과정 코스 공부에. 육아에. 남편 돕는 일이 지칠 대로 지쳐서 그랬는지 하루에 한 번꼴로 두통에 시달리던 시절.... 그래도 아침에 학교에 가는 길에 있는 스타@스에 들러나에게는 참 비싼 커피를 주문하고 두 손으로 감싸면 그 온기로 스스로가 위로받던 시절이었다.  그 매장에 처음 보는 점원에게 아침 인사를 헝가리어(요 레 겔트 끼바녹)로 건넸고. 그는 친절히 영어(굿모닝)로 대답했다. 음... 아마 내 발음이 마땅치 않았던 건가. 여하튼 나는 또 뚝심 있게 헝가리어로 블랙커피(세레트닉 키르니 에지 아메리카 노트)를 주문했고 , 그 역시 뚝심 있게 영어로 가격을 안내하고 결제를 마쳤다. 그다음. 미소를 날리며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커피 컵에 써줄) 나는 헝가리식 발음(홍그)으로 내 성 '홍'을 말했고. 그는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3분 후쯤 음료 받아가는 곳에 놓여있는 나의 컵을 보고 나는 화들짝!! 그 컵에는 스마일 표시와 함께 '훙'이라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이럴 수가.....

고맙다고 인사조차 할 수 없는 바쁜 아침.

며칠간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는 커녕. 내 말을 오해해서 듣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아주 머리가 쥐 나는 마당에 그 직원의 친절과 관심에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날 학원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터키 친구에게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그 친구가 궁금했는지 그다음 날 그 매장에 가서 그를 찾아내어 어떻게 한글을 썼냐고 물었단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는  인터넷을 보고 혼자 공부했다고 했단다. 내가 한국사람인 걸 눈치채고 성의 있게 썼는데 맞았냐고 물었다고 ^^했다.

2. 도로가에 주차해둔 내 차 앞에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할아버지가 계신다.  차 문을 열려고 다가가는 나에게 예의 있게 인사를 하시며 뭐 좀 물어볼 수 있겠냐 하시길래 몸을 돌려 할아버지를 마주 섰더니 할아버지가 내 차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았다며 본인이 그 한글을 읽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요?

내 차에는 남편 회사 이름 '조@요 렌터카'라는 스티커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사연인즉슨, 1952년에 초등학교를 다니셨는데 같은 반에 북한 친구가 있으셨단다. 그 친구가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셨었다고.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 정도는 읽을 수 있다시면 생기 넘치는 얼굴로 나의 팔을 붙잡고 차 뒤로 데려가 읽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러시며 이런 거 왜 붙이고 다니냐고 그러시더니 1초 만에 " 한국 사람인가요??"라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네.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  이 모든 말을 헝가리어로 속사포처럼 나에게 털어놓으신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 연도로 유추해볼 때 일흔일곱 살 정도의 연세가 되신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 그 뜻을 물으시고 답변을 들으신 다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시고 총총 집으로 들어가셨다.


세종대왕 만세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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