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생일을 맞아 장모님 댁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장모님을 찾아뵌다. 명절이면 당연히 가고, 가족 행사나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처가댁을 찾는다. 바쁜 시기에는 한 달에 한 번, 여유가 생기면 두 번, 그렇게 우리의 발걸음은 늘 장모님 댁으로 향한다.
그럴 때마다 장모님은 항상 정성스러운 식사를 준비해 주신다. 그냥 밥상이 아니라, 정말 ‘한 상’이라고 부를 만한 푸짐한 밥상이다. 김치만 해도 여러 종류, 고기는 다양하게, 거기에 신선한 채소와 과일까지 곁들여 내어 주신다. 내가 술을 끊기 전에는 식탁 위에 술을 준비해 주시기도 했는데, 술을 끊은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술 대신 다른 음식으로 그 자리가 채워졌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그 상 위에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올라온다는 것이다.
내가 치킨윙을 좋아하던 시기에는 치킨윙이, 닭발에 빠져 있을 때는 장모님이 직접 사다주시는 닭발이, 내가 순댓국을 좋아하던 때에는 근처 유명한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을 포장해 준비해 주셨다. 단 한 번도 부탁드린 적이 없는데도 마치 내 마음을 읽으시는 듯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들이 항상 상 위에 차려져 있다.
이번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내가 건강식으로 식단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아셔서일까. 싱싱한 채소와 비계 없는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 있었다. 처남은 지방이 있는 고기를 좋아하는데도,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비계 없는 고기로 준비해 주신 거 같았다. 미역국도 간이 세지 않게 끓여주시고, 밥은 언제나 그렇듯 따뜻한 새 밥으로 준비해 주셨다.
늘 이런 식탁을 받아왔으니, 그날도 별다른 생각 없이 맛있게 먹고 감사 인사를 드린 뒤 생일잔치를 마쳤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지난 7년 동안 장모님께서 해주신 밥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장모님은 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식탁을 채워주셨구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직접 말씀드린 적은 없었다. 아마 아내가 전해드린 걸 수도 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매번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시는 장모님의 마음을 떠올리니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모님은 내 생일이면 생일상과 함께 매년 꼭 편지를 써 주신다. 이번에도 예쁜 봉투에 담긴 편지를 건네주셨다. 집에 돌아와 아까 주신 편지를 꺼내 읽어 내려가는데, 또 한 번 울컥했다. 내용은 늘 해주시던 말씀들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멋진’, ‘환하게 웃는 모습’, ‘유한 성품’.
내가 평소 듣고 싶어 하고, 되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담은 단어들이었다. 그런 단어들 속에서 어머니가 내 마음을 알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장모님은 음식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준비해 주시고, 편지에는 내가 듣기 좋아하는 단어들로만 채워 주셨구나. 그게 우연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라 생일 선물도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 현금이었다.
솔직히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장모님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 잘 아시는구나!'
그런데 웃음 뒤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매번 이렇게 받기만 했구나. 장모님 댁에 빈손으로 다니면서 제대로 해드린 게 없었네.’
철없는 사위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그날 밤,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내가 더 많이 해드리자고.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것들로 채워드리고, 더 자주 찾아뵙고, 그 따뜻한 마음에 정성으로 답하겠다고.
장모님, 사랑합니다.
부족한 사위지만, 조금씩 철이 들고 있습니다.
언제나 베풀어 주시는 그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우리 같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요!
p.s 일하느라, 육아하느라, 집안일로 바쁜 와중에도 남편 생일상을 차려준 아내와 손수 과일 케이크를 만들어 준 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