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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솔 Oct 21. 2021

재발의 반복

지독한 부정맥의 반복



3개의 부정맥 중 2개의 부정맥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 가장 위험한 놈이었던 심실빈맥의 부정맥 또한 제거되었다니 어딘가 약간 막혀있던 마음이 한결 풀린 듯 한 기분이었다. 물론 내가 17년 인생에 부정맥으로 실제로 고생했던 기간은 거의 없었지만 몸속에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것은 꽤 큰 행복감을 가져다줬다. 몸 상태도 굉장히 좋았고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매주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러 다녔다. 평상시에 체력이 약간 부족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고 내가 스스로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기 전까진 아무도 나의 질환에 대해 알지 못했다.



시술을 받고 나서 약 1년 뒤 배드민턴을 치고 난 후 다시 부정맥이 찾아왔다. 이 전에 일어났던 부정맥 느낌과 정확히 일치했다. 미친 듯이 빠르게 날뛰는 심박수와 식은땀, 속 울렁거림과 약간의 어지러움이 동반했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들어오는데 갑자기 한순간에 일어났다. 또다시 바로 병원에 갔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난 참 철이 없었던 게 그때도 내가 당장 몸이 아픈 것보다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고 조용히 병원을 가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때는 왜 이렇게 몸이 아픈 게 창피한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라며 1시간 4교시 수업시간을 버텨냈지만 그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4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교무실을 찾아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씀드렸고 나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던 담임선생님께선 주저 없이 나를 태우고 응급실에 데려가 주셨다.



그렇다. 1년 전에 왔던 그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날짜와 시간 계절, 나를 응급실로 데리고 온 선생님만 다를 뿐 1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그려졌다. 부정맥도 확인해보니 심실빈맥이었다. 심실빈맥은 제거했는데 왜 또 발생했을까 의문이었다. 제거하면 안 생겨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1차원 적인 생각만 들었고 이미 한번 경험했기에 다시 이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에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저번과 동일하게 약물을 주입했으나 역시나 효과는 없었고 동일하게 제세동기로 전기충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안 돌아오면 또 서울 가야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바로 정상 심박수로 돌아왔다.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제 컨디션은 아니었기에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유했으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며칠 내로 바로 서울 가서 외래를 보겠다고 하고 응급실에서 퇴원 후 병원 밖을 나왔다. 며칠 뒤 기존 외래를 당겨서 서울아산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고 교수님께 응급실에서 찍은 심전도 자료를 보여주며 부정맥이 다시 일어났음을 말씀드렸다.

 


부정맥을 제거했는데 다시 생긴 것이다. 원래 부정맥이라는 것이 제거 후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난 왜 안 좋은 건 다 이렇게 걸리고 일어나는 것일까.. 오랜 의문이다. 다시 생겼다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다시 치료를 받는 것 밖에 답이 없었다. 그 이후로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나는 아주 주기적으로 심실빈맥이 1년에 1번 정도는 꾸준히 발생했던 것 같다. 심지어 전극도자절제술도 2번 정도 더 받고 제거에도 동일하게 성공했지만. 부정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어느덧 나는 성인이 되었고 그동안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몸상태가 아주 나쁘거나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았다. 부정맥으로 고생을 조금 했을 뿐 그 외에 다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성인이 된 나는 조심해야 할 것이 아주 많아졌다. 가장 먼저는 술이다. 음주의 유혹을 견뎌내야 했다.

그렇지만 대학생이 된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그 술자리가 너무 재미있었고 20살 갓 어른이 되었던 나는 술을 마시는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었다. 그래도 내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아주 적정량의 음주만 허용했다.

이게 사실 적정량의 음주량은 아니다. 그냥 내 기준에서 적정량의 음주였고 소주 1병까지는 괜찮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소주 1병이 넘어가는 순간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셔도 딱히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러한 술자리의 빈도가 잦아지고, 음주량도 점점 내가 기준을 세웠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음주를 어느 정도 해도 역시나 크게 몸에 이상이 있지 않았기에 더더욱  방심을 하기 시작했고 '아 마셔도 별 다른 문제가 없네' 라며 내 양심에 대고 내가 스스로 변명을 해댔으며 또 실제로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3~4년 동안 부정맥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몸상태가 아주 절정에 다다를 정도로 좋았고 실제 6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보는 외래 검진상에서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심기능도 처음 외래를 방문했을 때와 차이 없이 그대로였기 때문에 관리만 잘한다면 수술을 받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의 질환인 엡스타인 기형은 수술이 이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수술은 몸상태가 나빠지는 예후가 보이면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에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몸상태에 큰 이상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에는 수술을 권유하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현대의학이 많이 발달되긴 했어도 판막수술 자체가 큰 수술이고 수술 후에 합병증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방심이 나를 더 어리석게 만들었다. 당시 난 신체적으로는 아주 건강하고 좋은 컨디션을 보였지만 사실 정신적으로는 언젠가부터 찾아왔던 강박증과, 우울증에 의해 굉장히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혼자 있는 게 미친 듯이 싫었고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침투하는 강박사고가 끔찍했다. 난 그것을 핑계 삼아 계속 술을 찾게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 술이 잔뜩 취할 때까지 음주를 즐겼으며 일주일에 2~3번은 꼭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이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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