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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솔 Oct 21. 2021

응급실 단골손님이 되었을 때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나는 술자리를 정말 좋아했다. 한때 내 술버릇 중 정말 안 좋았던 습관 중에 하나가 술을 꼭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 습관이었다. 예전에 음주를 자제했던 자제력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고 필름이 끊겨 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 X 놈이었다. 몸이 정상인 사람도 그렇게 마시면 몸이 망가질 것이다. 그런데 심장이 안 좋다는 아이가 허구한 날 그렇게 마시니 마치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기름을 부은 샘이었다. 그러니 나의 몸은 나도 모르게 하나하나씩 티 안 나게 망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내가 몸소 체감을 했을 때에는 이미 내 몸은 많이 망가지고 난 뒤였다.



어김없이 지인들과 술을 즐기던 어느 날 갑자기 몇 년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부정맥이 다시 일어났다. 순간 너무 당황했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아 지금 빠르게 병원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술자리를 빠져나오고 조용히 119에 전화를 해 나의 질환과 상태에 대해 말했다. 5분 후쯤 엠뷸런스가 도착했고 나는 그대로 예전에 종종 부정맥이 일어났을 때마다 응급실을 갔었던 병원에 실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상태에 대해 물었고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던 나는 꽤나 침착하게 나에 대해 브리핑을 했고 의사도 전에 왔던 기록을 보고 신속하게 응급처치가 진행되었다. 약물 주입만으로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것을 알았기에 바로 전기충격을 실시해 정상 심박수로 되돌아왔다. 부정맥은 몇 년 전에 나를 괴롭혔던 심실빈맥이었다.



이런 심실빈맥이 또 일어나다니..



잠시 잊고 살았다. 몇 년간 아무 이상이 없어서 그저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의 몸에는 많은 신호가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피곤함과 무력감이 동반했고 종종 쿡쿡 쑤시는 듯한 가슴통증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작은 신호를 그냥 무시했고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태도와 무관심이 나를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심실빈맥이 어김없이 또 발생했기에 나는 며칠 후에 서울아산병원에 외래 예약을 잡아 방문해 심전도 기록과 해당 상황에 대해 담당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간혹 부정맥이 일어날 수 있고 만약 이렇게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부정맥을 제거하는 시술을 또 받아야 하지만 부정맥을 제거해도 계속해서 재발을 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보자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때 당시에는 다른 방향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셨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몸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정말 나의 평소 몸상태가 100이라면 90, 80 이렇게 서서히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30, 20으로 한순간에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 것을 나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를 업고 있는 듯한 느낌처럼 몸이 엄청 무거웠고, 간단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굉장히 숨이 차고 힘들었으며, 청색증 증상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인다 라는 소리를 수백 번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급격히 몸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순간적으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갑자기 순식간에 안 좋아진 내 상태에 꽤나 당황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와 중 부정맥의 발생 빈도가 점점 무서울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년에 1번도 잘 발생하지 않았던 부정맥이 그때 음주 도중 발생했던 부정맥 이후로 6개월 이후에 1번 더 발생했고, 그 이후엔 1개월에 1번, 이후에는 1주일에 1번, 나중에는 이틀에 1번 정도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응급실에 가서 전기충격을 받고 정상 심박수로 되돌렸다. 부정맥의 종류는 모두 심실빈맥이었다.



언제 한 번은 일주일 사이에 4번 응급실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119 구급대원분이 내 얼굴을 알았고, 응급실 직원, 의료인들도 다 내 얼굴을 알았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병원 내 출입하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웠던 시기였다. 엠뷸런스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2주 이내 어디 다녀왔는지나 발열체크 등 방역수칙에 근거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이후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별다른 설문조사를 크게 실시하지 않고 타지에 방문했던 이력만 물어본 뒤 바로 응급실에 들어가 조치할 수 있었다. 나의 상황에 대해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됐다. 의사분들이 알아서 내 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한 간호사분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분 매일 오시는 분이야 빨리 배드 옮기면 돼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착잡한 느낌도 들었고 슬프기도 했고 서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아 이러다 내가 진짜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또 같은 패턴으로 응급조치를 받고 나서 안정을 찾은 뒤에 의사가 내게 입원을 권유하였다.

이 상태로 가다간 또 며칠 뒤에 구급차에 실려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차라리 입원을 해 경과를 지켜보자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존에 서울 병원에 외래 진료를 10년 동안 봐왔기 때문에 입원을 하더라도 서울에 가서 입원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고, 당장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출근에 대한 걱정도 있어 정중하게 거절을 하고 당일 새벽에 응급실 퇴원수속을 밟고 병원 밖을 나왔다. 병원을 나와 혼자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물음표로 끝이 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리에 가득 채워지면서 눈물이 났다.


27살 한창 청춘이고 건강할 때 나는 왜 이러고 있지?
왜 나만 이렇게 아픈 거고 힘든 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날 이렇게 괴롭게 하지?


와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고 어린 시절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아왔던 모습과 조용하고 온화한 나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고 부정적이고, 짜증 나고, 화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안 그래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우울증, 강박증 등과 같은 질환에 정신건강에도 그리 건강하지 못했던 내가 몸이 아픈 것까지 동반되니 나의 자존감과 삶에 대한 의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죽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굉장히 지쳐있었고, 또 힘들었던 시기였다. 택시에 내려 집에 들어와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오전 잠을 설쳐서 그런지 유난히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결국 그날 오후 나는 다시 부정맥이 발생해 응급실에서 나온 지 하루가 되기도 전에 다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정확히 15시간 만에 다시 부정맥이 재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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