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장실 불도 못켜고 쓰는 '나'

작은 전구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by 마로

그 일 이후로 나는 화장실 불을 켜지 못했다.

화장실과 아무 연관이 없지만

화장실 불이 켜지면 심장이 뛰었다.

조용한 공간이 오히려 더 크게 나를 덮쳤다.

그래서 늘 간접등에 의지했다.


불이 다 켜지면

누가 날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게 내 일상이었다.


“이젠 다 끝났는데 왜 이러지?”

처음엔 내 자신이 이상한 줄 알았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됐다.

이건 단순히 ‘겁 많은 성격’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생존의 방식’이었다.


화장실에서의 무엇인가가 내 트리거를

눌린다고 했다.


몸은 머리보다 오래 기억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지금은 안전해.”

그 말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은 화장실 불을 켜도 괜찮았다.

다만, 아직도 너무 밝은 불은 힘들다.

그날의 따뜻한 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불을 켜는 날도 있고, 여전히 켜지 못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 자신을 미워하진 않는다.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그게 ‘살아 있는’ 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 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일에 삼켜지지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불빛이 조금 무서워도

그래도 오늘도 나는 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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