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남: 운명을 믿는 남자의 이야기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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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남은 나를 부모님 댁으로 초대했다. 그 집은 넓고 근사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개인 주택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 위에는 조각상 대신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정원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세련된 옷차림의 사모님이 우아한 걸음으로 나왔다.

“아, 아가씨가…?”

나를 훑어보는 그녀의 시선은 날카로웠지만, 미소는 부드러웠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몇 시라고?”

“네?”

“태어난 시간…”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네?!!!!”

나는 순간, 결혼 인사를 하러 온 건지, 아니면 ‘입주자 심층 사주 풀이’ 현장에 온 건지 헷갈렸다. 머릿속에서는 '여기가 그 유명한 도사님 댁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스쳐 지나갔다. 그때, 사주남이 안절부절못하며 현관문을 나섰다.

“어머니,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그리고 그건 저번에 제가 다 말씀드렸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약간 떨렸다. 사모님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스님이 다시, 정확하게 알고 싶으시대.”

사모님은 다시 한번 나를 꼼꼼히 살폈다. 마치 내가 혹시나 잘못된 정보를 말할까 봐 감시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아가씨… 재미나이 씨가 이해해요. 우리 집은 대대로 사업하는 집안이라,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사주 보고 와야 일을 할 수 있어요. 너무 자주 그만둬서 문제지…”

그녀는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 말투에는 특유의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내가 이 집에 온 게 내 인생 최대 실수일 수도 있겠구나.

그의 집안 이야기는 이미 매니저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부모님 재산 100억’이라는 단어가 결코 평범하지는 않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재산이 100억이면 뭐하나, 그들의 삶은 오로지 미신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사주남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미나이 씨가 이해해요. 저희 부모님이…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자, 이만 나갈까요?”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네?”

“오늘은 집에 손님이 오면 안 되는 날이래요. 어머니가 깜빡하셨대요. 다음에 좋은 날 받아서 같이 와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와. 알면 알수록 이상한 집안. 그의 부모님은 내게 "우리 집 손님은 사주에 맞춰서 와야 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 순간,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도 믿을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내게서 한 걸음 떨어져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실… 매니저한테 들었겠지만, 저는 한 번… 아픈 상처가 있어요. 결혼을 한 번 했어요. 이주일 살고 헤어졌지만… 혼인신고도 안 했고요. 그때 사주 봐준 스님이… 잘못 보셔서…”

그는 말끝을 흐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서 실패한 인생의 모든 원인을 ‘사주’ 탓으로 돌리는 절박한 신념이 느껴졌다. 그의 아픈 상처는 결혼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이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재미나이 씨, 오늘은 밤에 누구 만나면 안 되는 날이에요. 스님이 그러셨어요.”

나는 웃어야 할지, 놀라야 할지 몰랐다. 그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택시를 부르기 시작했다.

“택시 불러드릴게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만나는 게 좋대요.”

그는 정말로 택시를 불렀다. 나는 그 택시에 타면서 이 남자의 세계에서는 감정보다 운명이 우선이고, 관계보다 규칙이 먼저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의 세계는 오로지 ‘사주’라는 거대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연극 같았다.

택시 창밖으로 그 집의 정원이 보였다. 너무 예쁘고, 너무 조용했다.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고요한 무대 같았다. 나는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니, 그런 ‘각본 없는 관계’는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좋은 날 받았어요. 다시 뵙고 싶어요.”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아니 네 번 읽었다. 좋은 날을 받았다고? 마치 미슐랭 별점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그는 나를 만날 날짜를 달력에서 ‘고르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감정은 실시간으로 흐르는데, 그의 마음은 음력처럼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그의 세계는 내가 아는 시간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그 후, 그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연락도 없었고, 답장도 없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가 말한 ‘좋은 날’은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날이 아니라, 나를 완벽히 잊기 위한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사주보다 더 정확한 건, 그의 잠수였다.



나는 그의 아픈 상처가 사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주 만에 끝난 결혼, 그리고 그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그는 '사주'라는 쉬운 답을 택했을 뿐이다. 그는 사랑을 운명의 문제로 돌리고, 관계를 규칙의 문제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진짜 '악귀'는 밤에 돌아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타인을 통제하려는 불안감이라는 것을. 그가 말한 '좋은 날'은 우리 관계의 미래를 위한 날이 아니라, 그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주문이었던 것이다.

He didn’t wait for fate. He vanished before it arrived.
그는 운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운명이 오기 전에 사라졌다.



월, 수,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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