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imes, love comes with a side of chicken.”
사랑이 치킨과 함께 배달될 때도 있다.
그는 **처음부터 사주(四柱)**를 들고 나왔다.
“우리 궁합이 참 좋아요. 사주가 딱 맞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생년월일이 그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구나.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결정사에서 500명을 줬는데, 스님이 3명을 뽑았어요. 당신은 그중 두 번째예요.”
나는 잠깐 혼란스러웠다. 선택받은 게 아니라, 철저히 선별된 기분이었다. 500명 중 2등이라는 사실이 기특해야 할까? 아니면, 이 만남이 거대한 연애 DB에서 추출된 결과라는 게 허무해야 할까?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1번은 영어를 못해서… 외국 바이어 앞에서 창피하더라고요.
당신은 영어 잘하니까 그런 걱정은 없겠네요.”
이건 칭찬인가? 나는 사랑을 느낀 게 아니라 언어 능력으로 면접을 통과한 지원자가 된 기분이었다.
“저는 캐나다에서 6개월, 한국에서 6개월 살아서요. 지금은 한국에 있는 시기죠.”
그가 말하는 삶은,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처럼 들렸다.
모든 게 계획되고, 조명 맞은 브로셔 속 장면 같았다.
그리고 다시,
“부모님이랑 스님들 여러 군데 찾아다녔어요. 궁합도 보고, 운도 보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스님 순례부터 한다는 남자.
그에게 연애는 감정이 아니라 예언과 검증으로 통제되는 통계적 프로젝트였다.
그는 결국 말했다.
“우리, 같이 스님 한 번 보러 가요.”
나는 종교에 편견이 없다. 오히려 불교 교리는 깊이 있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들었던 건
‘스님’이 아니라 **‘연애의 심판관’**이었다.
우리 관계를 합격/불합격으로 평가할 누군가. 그와의 관계는 점점 더 ‘감정’이 아니라 ‘운명’과 ‘분류’와 ‘정렬’의 논리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꽤 진지했고,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재미나이 씨, 요즘 야근 많으시죠? 피자 열 판쯤 보내드릴까요?”
뭐야, 이게 사랑의 플렉스인가? 드라마 속 다이아 반지는 없었지만, 그는 묘하게 꾸준하고… 다정했다.
어느 날, 심야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부모님이 제 사주에 밤에 나가는 건 좋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옆에 있는 듯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밤에는… 내 기운과 운을 다 빼앗아 가는 악귀가 있대요.”
… 이제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속을 믿지 않는다. 믿기 시작하면, 그 믿음에 끌려가는 게 사람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위로받겠지만, 이 남자는 좀 지나쳤다. 대중목욕탕 가는 날도,
이사 날짜도, 그의 삶 전반이 사주 기반의 자동 스케줄링이었다.
이쯤 되자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 남자의 ‘영적 라이프스타일’은 내 상식을 넘었다.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수많은 현실을 경험한 나에게
“날 받고 움직이는 인생”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실이었다.
야근할 때마다 동료들이 물었다.
“재미나이 씨, 오늘은 남자 친구가 뭐 보내줘요?”
갑자기 “헤어졌어요”라고 하면, 그날 회식이 끝날 때까지 질문 릴레이가 이어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느 날,
“치킨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그가 보낸 치킨 20마리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때 내 속물근성은 살짝 흔들렸다.
‘헤어질까’에서 “다음에 헤어질까”로.
악귀도, 사주도, 스님도 잊고, 나는 커다란 치킨 상자 앞에 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가 줘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의 삶이 계획된 브로셔 속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조명된, 그러나 영혼 없는 그림. 그런데 내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근과 피로, 그리고 동료들의 질문. '헤어질까'라는 단호한 결심은, '치킨 20마리'라는 거대한 상자 앞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마치 거창한 철학적 고민이 현실의 작은 허기에 무릎 꿇는 순간처럼. 나는 조용히 치킨 상자를 열었다. 그건 단순한 치킨이 아니었다. 내 상식과 유혹 사이의 갈등을 봉인하는 '평화의 치킨'이었다.
Love is unpredictable. But chicken? Always comforting.”
사랑은 예측 불가지만, 치킨은 늘 위로가 된다.
In a world of my own, everything is logical.
(나만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논리적이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