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사랑?
웃기지 마, 난 살아남았다

by 재미나이


20250828_2115_사무실의 긴장된 대치_remix_01k3r9gxh7f9xr4qx3957j0yv3.png


서울로 돌아오는 택시 안. 영수증에 **‘80,000원’**이 찍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성남의 번호를 삭제했다. 쿨링 오프. 카드 알림보다 빠른 손놀림이었다.


감성? 그건, 네 혼자 즐겨.

나를 오지 한복판에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진 그 사람. 떠나기 전 건넨 쪽지 한 장. “이기적인 사랑.”

웃기지 마. 내 짐 가방이나 챙기고 말했어야지.

포터 트럭 뒷좌석에 실려 돌아오던 나는, 말 그대로 버려진 짐 취급이었다.

스티커도 붙어 있었지. ‘재판매 불가.’

그날, 확실히 다짐했다. 다시는, 진짜로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월요일.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보고서 더미가 마치 나를 관찰하듯 날 노려본다.

잠깐, 여긴 다큐멘터리 현장이 아닌데. 그리고 언제나처럼, 등판. 사이코 팀장.

“재미나이 씨, 보고서 왜 아직이야?”

“주말에 좀… 바빴어요.”

“바빠? 주말에 뭐 했는데 이렇게 엉망이야?”

서류가 책상 위로 쿵. 회의실 스피커 대신 울리는 팀장 목소리. 그 소리에 동료들까지 화면 보호기처럼 멍해진다.

문득 이상한 상상이 들었다. 혹시 감성남이랑 팀장이 짠 거 아냐? 시즌2: 내 인생 망치기.

…아니지. 그런 드라마는 벌써 폐지됐어야 한다.

오지에서 버려진 기억, 조식 3만 원, 택시비 8만 원. 인내심 잔고는 이미 마이너스였다. 그래서—그냥 질러봤다.

“팀장님. 네, 주말에 못 끝낸 건 맞아요. 근데요. 매주 야근에 주말 반납하면… 저도 사람인지라, 좀 버겁습니다.”

회의실 안이 얼음처럼 조용해진다. 동료들의 눈이 커졌다. (재미나이, 오늘 뭐야…?) 팀장의 얼굴도 변한다. 정색. 사이코 모드.

“사람? 그럼 난 뭐냐? 밤새 회사 지키는 거, 내가 놀러 다닌 줄 알아?”

‘놀러 다닌 건 감성남이지, 이 양반아.’

속으로 삼키고, 나는 한 발짝 더 나갔다.

“요청, 미리 주세요. 왜 우리만 금요일 밤에 ‘월요일까지!’인가요. 좀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구요.”

그 순간, 옆자리 동료가 손을 들었다.

“저도요. 주말 자료 준비 때문에 애 학원도 못 보냈어요.”

다른 동료도 바로 덧붙였다.

“형식이 자꾸 바뀌니까 준비 시간이 배로 들어요.”

회의실은 순식간에 불만 토크쇼로 돌변. 팀장은 당황한 얼굴로 물러섰다.

“…다들, 나한테 불만 있었어?”

그랬다. 이건 소규모 쿠데타였고, 약간의 용기와 너무 많은 피로가 만든 결과였다.

(봉기엔 장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산과 텀블러로 무장했다.)

기세는 좋았지만, 팀장은 곧 협상 카드 꺼냈다.

“좋아. 재미나이 씨. 그럼 이번 주말에 마무리 가능하지? 아니면 성과평가에 반영할 거야!”

…이 협박은 또 뭐야? 순간 감성남의 쪽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차가움과 이기적인 마음.’ 아니, 내가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실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 이 시스템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고, 나는 이제 내 편을 들어야 할 때야.

그래서 보고서를 꽉 쥔 채 말했다.

“네. 이번 주말은 제가 마무리할게요. 대신 다음부터는 일정과 요청, 미리 주세요. 우리도요, 사람답게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 마디 더.

“아니면… 전 인사팀 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순간 터진 박수 소리.

“맞아요!”

“저도요!”

동료들이 그제야 나처럼 숨을 쉬었다. 팀장은 얼굴은 빨개졌고, 목소리는 한 톤 낮아졌다.

“…알았어. 이번 주까지만 이렇게 하고, 다음부턴 조정해볼게.”

퇴근길. 조용히 걷던 동료 하나가 툭 던졌다.

“재미나이, 오늘 좀 멋졌다. 근데… 주말 또 야근이지?”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조금 이긴 날 아닌가?”

이 승리가 뭐 거창하진 않다.

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나를 지켜줬다는 것.

그 정도면—월요일값으로는 꽤 비싼 축에 속하지.

감성남의 배신을 딛고, 사이코 팀장과 맞섰다. 그 싸움은 화려한 감성도, 낭만적인 사랑도 아니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얻은 작은 승리는, 내 삶의 이용 약관에 조용히 ‘수정사항’을 추가했다.

진짜 행복이란, 파주에 있는 이층집도, 수입 와인도 아닌, 바로 오늘 같은 날.

내 편이 되어 나를 지키는 순간. 그게 진짜 값진 거 아닐까?


"사람은 다 비슷해. 다만 어떤 사람은 그 아픔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감추지"


…그렇지만, 주말 야근은 여전히 좀 아프긴 하다.




감성남의 오지 배신을 딛고, 나는 사이코 팀장과 맞섰다.
그 싸움은 화려한 감성도, 낭만적인 사랑도 아니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얻은 작은 승리는, 내 삶의 이용 약관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했다.
진정한 행복은 비싼 와인이나 파주 집 두 채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순간에 있지 않을까?
그래도 주말 야근은… 좀 아프네.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be true to yourself."- Ellen DeGeneres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다.)





20250829_1606_우산과 텀블러_remix_01k3ta85mnfqy95ghb2gfpndc7.png
저작권고지1.jpg


월, 수, 금, 토 연재
이전 17화최악의 여행, 최고의 가성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