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내게 그곳은 호구 인증서 발급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스펙’이 상품처럼 진열되는 밝고도 냉혹한 장터.
우리 모두—나 포함—바코드 하나씩 달고 계산대 앞에 줄 서는 풍경.
그래도 나는 일단 앉았다. 두 번째 방문이라 배짱이 좀 붙었고, 매니저의 싹싹한 미소는 어지간한 조명보다 밝았다. 어딘가에서 영수증 프린터가 윙—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영혼 결제 탭은 오른쪽입니다.)
“만혼 시장은 저희가 최고예요!”
그 말 뒤에 곧바로 이어진 질문. “부모님 노후는…?”
내가 번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왜 갑자기 부모님 노후가 같이 장바구니에 담기는지. 이 시장은 내 돈까지 공동자산 취급을 한다. 참 희한한 곳이다.
그래, 누가 그러더라.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거라고.
그 말이 그날따라 용기를 줬다. 위험 좀 감수하자. 내 돈을 내가 쓰겠다고 말하는 위험. (근데 내 상품 이미지… 깨질까 봐 일단 삼켰다. 영혼은 자유, 겉껍데기는 판매중.)
“연락드릴게요!”
매니저의 마침표. 어디서 많이 듣던 장르였다. 손에 남은 건 영수증 한 장. 오늘자 호구 인증서가 방금 발급되었습니다—딸칵.
우스운 건, 나만 받는 인증서는 아니라는 사실.
사람은 다 어리석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는 작정하고 선전포고를 했다.
“결혼 안 할 거면 나가서 살아. 아니면 생활비 두 배.”
선택지는 단순했다. 자유 vs 따뜻한 밥.
나는 엄마의 밥을 사랑한다. 미슐랭은 아니지만, 늦게 퇴근해 “엄마, 나 왔어” 하면 돌아오는 “밥은?”—그 한마디 뒤의 한 끼가 내 하루의 방어막을 내려놓게 한다. 가정은, 뭐랄까, 피난처 같은 것. 적어도 밥이 있는 동안엔.
그런데 그 마법에도 유효기간이 있단다.
“나도 늙었다. 이젠 밥 못 해준다!”
봄과 함께 시작된 결혼 잔소리 시즌의 개막. 블랙프라이데이보다 무섭다. 세일은 끝나도 잔소리는 늘 연장판매 중이니까.
이메일이 세 통 왔다.
“재미나이님, A회사에서 실망하셨죠? 저희는 달라요!”
전화 너머로 번쩍이는 영업용 미소. 부동산 중개인의 이번엔 반드시 팔겠다 눈빛이 겹쳐 보인다. 나는 커피 쿠폰을 보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랑보다 빠르게 마음을 사는 요령을 장착한 내 자신이 좀 웃겼다. 근데 유용하긴 하더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떤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고개는 끄덕여지는데, 현실은 영 다르다. 이 시장은 사랑보다 포장 기술이 중요해 보인다.
주말 미팅 일정이 캘린더에 찍히는 순간, 나는 내 프로필을 들여다봤다.
화사한 메이크업, 가장 비싼 정장, 환한 미소.
그건 내가 아니었다. 야근 일주일 차,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는 진짜 나는, 사진 밖 어딘가에 묶여 있었다. 이메일을 열자 훤칠한 세 남자가 나를 뚫어지게 본다. 아래엔 깨알 같은 스펙들. 그리고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의 받은편지함에서 똑같이 진열되어 있겠지.
내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아니, 벌써 경고등이 깜빡이는 중일까.
피식, 웃음이 새었다. 살다 보면 계획 바깥에서 삶이 벌어진다던데—맞는 말이다. 오늘도 삶은 별도의 운영방침으로 굴러간다.
결혼정보회사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결혼 시장은 씁쓸하고도 기묘한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재미나이'라는 이름 대신, '스펙'과 '부모님 노후' 같은 바코드를 달고 있는 상품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한 '노력'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안의 순수한 욕망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틀에 나를 욱여넣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이 시장에서, 나는 사랑의 본질보다 '포장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쇼핑하듯 서로의 스펙을 계산하고, 유통기한을 가늠하며 관계를 시작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나'는 진짜 모습 대신, 포장된 프로필 뒤에 숨어버린다.이 글은 그런 나의, 그리고 우리의 초상화다. 사랑이 아니라 '영수증'을 손에 쥐게 되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는 우리 모두가 밥 한 끼의 따뜻함, 안전한 보금자리, 그리고 진정한 관계를 바라는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결국 이 이야기는, '호구 인증서'를 발급받으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웃픈 투쟁기다. 그리고 어쩌면, 이 투쟁의 끝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바코드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True abundance isn't based on our net worth, it's based on our self-worth."진정한 풍요는 순자산(net worth)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self-worth)에서 온다- Gabrielle Ber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