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기운이 있다면

by 재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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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사흘 동안 연락이 없었다.


아침이면 “잘 잤어요?”로 시작해, 점심엔 “밥 챙겨 먹었어요?”, 저녁이면 “하루 어땠어요?”로 마무리되던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아픈 걸까?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비서가 말했다. “지금 회의 중이세요.”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망설이다가 말했다.


“재미나이 씨에게 전화 좀 부탁드린다고 메모만 남겨주세요.”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더 황당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는 정직하고 예의 바르며, 무엇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우리 사주는 찰떡이에요”라며 자신 있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 말에 설레기까지 했다. 1/500 확률로 만난 운명의 여자라며 들떠있던 사람이, 연락 한 통 없이 사라진다고?

설마… **600만 원짜리 ‘사랑의 계약금’**도 소용없는 인연이었나.


아니면 드디어 무속에서 깨어나신 걸까?


…그런데 깨어나서 날 다시 보니 별로였다면, 그게 더 기분 나쁜 거 아닌가?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들이 어이없게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사흘을 보냈다.

“재미나이 씨, 요즘엔 남자친구가 간식 안 보내?”

회사 동료가 웃으며 물었다.

“네? 아, 네…”

나의 어색한 대답에 옆에 친한 동료가 나를 툭쳤다.

“야, 무슨 일 있어?”

관심 많은 또 다른 동료도 다가왔다.

“3일째 잠수야.”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

“3일? 뭐야, 헤어진 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없이 잠수 타는 거 너무 답답해. 게다가 입이 싼 이대리가 또 이상한 소문 퍼트리면 어쩌냐고…”

나는 건너편에서 신나게 뭔가 떠들고 있는 우리 회사 가쉽 제조기 이대리를 바라보았다.

신경질이 났다.

나는 결국,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사주남 씨. 이건 예의가 아니죠? 이렇게 말도 없이 피하는 건 너무하잖아요. 제가 찾아가야 해결되겠습니까?”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정말이지, ‘질척거리는 여자의 전형’ 같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말 때문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주남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재미나이 씨, 미안합니다. 스님이… 사주를 착각하셨대요. 우리 관계에 아주 안 좋은 기운이 흐른다고 합니다. 빨리 끊지 않으면 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죄송하지만,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나쁜 기운이 느껴져서요. 그럼 이만.”



나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멍해졌다. 스님의 오판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건 평생 처음이었다.


‘드디어 사주마저 나를 버렸구나’ 싶은 마음에, 회사 사람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야식을 들고 다니며 핑계를 만들었다. 치킨과 피자, 라면 박스가 사무실 한구석에 쌓여 갔고, 그 사이에서 나는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그를 만난 게 아니라, 그의 운명을 만난 거였다.


운명 vs 속물 근성의 최후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가 웃을 때, 나는 그 웃음이 진심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결국, 사주의 찬란한 약속은 스님의 착각 앞에 무너졌고, 나는 우스꽝스럽게도, 치킨 박스 사이에서 그 사랑의 잔해를 정리하고 있었다.



운명이냐 아니냐를 따지며 소모적인 시간을 보낸 건 비단 그 남자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그 끝없는 핑계와 미신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귀한 감정을 낭비했다. 결국 나는 치킨 박스 더미 속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운명은 거창한 사주팔자에 적혀 있는 게 아니라, 소통과 배려라는 아주 평범한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같은 혼란을 겪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나쁜 기운'은 타인의 말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에게 씌운 미신의 굴레일지도 모른다고.

In the end, love is just a fortune-teller's miscalculation, buried under a pile of chicken boxes. (결국 사랑은 점쟁이의 오산일 뿐, 치킨 박스 더미 아래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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