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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앤 Aug 22. 2023

강한자만이 살아남았던 90년대 한국인처럼

대만 생활

2023년 8월 초 대만을 스쳐 지나간 후 다시 한국을 관통한 태풍 카눈은 나의 대만 정착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출발했어야만 했던 이삿짐 컨테이너는 대만과 한국 사이에 태풍이 위치하면서 한 차례 출항이 연기되었고, 한국을 관통하면서 항로가 변경되었다. 인천에서 출발한 짐은 부산을 거쳐, 여수를 거쳐, 다시 대만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꼬박 한 달간 호텔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짐은 통관을 거쳐 드디어 내일 도착한다! 이삿짐을 싼 지 4주만이다.

한국처럼, 어쩌면 한국보다 태풍이 자주 오는 나라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나라에 같은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두 나라의 대응은 조금 달랐다. 결과적으로 태풍 카눈은 대만을 '스쳐' 지나갔는데, 태풍 예보가 나오자마자 대만 정부에서는 휴교령출근금지령을 내렸다.

물론 한국에서도 지역별로 어린이집 휴원하고 휴교를 권고했지만, 대만과 같은 전면적인 금지와 같은 조치는 아니었다. 학교며 학원에 대한 휴교/휴원 권고가 최상일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모가 출근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집에 둘 수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2022년 9월, 아직 한국에서 강의를 할 때 태풍 힌남노가 한국을 찾았던 그날...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아침까지 휴강이 아니냐고 메일을 보내고, LMS 메시지를 보냈지만,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런 공지를 받지 못 한 나는 무리해서 학교에 가다가... 올림픽대로에서 4시간 이상 머물게 되었다. 여의하류가 통제된 것도 몰랐고, 길눈이 어두워 다른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몰랐지만, 끝까지 공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강의 생활 처음으로 긴급 휴강을 하게 되었다. (휴강한 강의는 집으로 돌아가서 바로 동영상 강의로 만들어 제공했다. COVID-19 이후 바뀐 강의 환경에 그나마 감사하는 이유이다.) 4시간 동안 차는 도로 위에서 거의 움직이지를 않았다. 내 기억에 KBS 이현우 DJ로 시작된 라디오 방송은... 박명수를 거쳐... 이기광이 되었을 때 겨우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올림픽대로 위 반포대교 아래에서 리포팅하는 각 방송사 기자님들

홍콩이나 대만에는 이러한 상황을 대비한 메뉴얼이 있다고 한다.


대만은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의 휴업 및 휴교에 관한 법령을 마련해놨다. 태풍의 경우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만 부합하더라도 출근 및 등교가 중지된다. 구체적으로 ▲기상예보에 따라 태풍의 반경이 4시간 이내에 이 지역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며 평균 풍속은 초속 13.9~17.1m 이상, 돌풍의 경우 초속 24.5~28.4m 이상인 경우 ▲기상예보 또는 실제 관측에 따라 강우량이 출근 및 등교중지 기준에 도달해 재해를 일으켰거나 재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경우 ▲바람 또는 강수량이 출근 및 등교 중지 기준에 맞지 않는 지역에서는 지형 및 강우량의 영향으로 교통, 수도 및 전기 공급이 중단되거나 공급이 곤란해 교통, 출근 및 등교에 영향을 미쳐 재해 위험이 있는 경우다.


특히 하루 혹은 오전 출근 및 등교 중지 공고는 전날 오후 7시~10시 사이에 공고하고 오후 11시 이전에 방송되도록 언론에 통보해야 한다. 전날 공고가 이뤄지지 않아도 당일 0시 이후 기준을 충족할 경우 오전 4시30분 이전에 공고하고 오전 5시 이전에 방송하도록 하고 있다. 오후나 야간 업무, 수업을 중단하는 경우 당일 오전 10시30분 이전에 이를 공지하고 오전 11시 이전에 보도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아시아경제, 8월 21일 기사)


우리도 권고 이상의 강력한 출근 및 등교 중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면 어떨까? 하루의 업무 공백이 그렇게 엄청난 업무 피해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길은 요원해 보인다. 대만에 막 도착한 한국 회사의 주재원 남편은, 출근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였다. 출근길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고 회사에는 주재원들만 출근해 있었다고 한다. 사실, 태풍의 영향이 크지 않은 것 같아서 숙소 근처 백화점에 방문하였는데, 백화점은 문을 닫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문 사진은 백화점 셔터에 붙어있던 공지이다.) 몇 년 전, KBS 광주에서 편집해서 유명해졌던 90년대 홍수 상황에서 출근 및 등교하는 동영상이 생각났다. 홍수에도 출근하는데... 태풍이 무서울소냐..(아니다. 태풍은 무섭다... ㅜㅜ)


https://www.youtube.com/watch?v=fPoojt3Nk-0

출처: 광주KBS 유튜브


강한자만이 살아남았던 90년대 한국인처럼, 힘차게 대만 라떼 시대를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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