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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피 Jun 23. 2020

<PD수첩>의 30년, 여전히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인가


1990년,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이길 자처한 <PD수첩>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PD수첩>은 기자가 아닌 PD가 직접 발로 뛰며 취재를 하는 PD저널리즘의 시초일 정도로 역사가 깊다. 만민교회의 MBC 점거 사건과 전국민이 알고 있던 황우석 교수의 연구 조작, 거대한 시위를 몰고 왔던 광우병 관련 방송까지 <PD수첩>은 때때로 진실이 가지는 굵직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그만큼의 잡음도 존재해왔지만 여전히 <PD수첩>은 매주 방송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PD수첩>은 어떨까. 여전히 처음의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을까? 외압과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로서 존재하고 있는지 최근의 방송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1. 시대의 목격자다운 발 빠른 취재와 보도

 <PD수첩>과 같은 탐사보도 형식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은 방송 3사 모두에 존재해왔다. KBS는 MBC보다 앞선 1983년부터 2019년까지 <추적 60분>을 방영했고, SBS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방영하고 있다. 현재는 방영이 종료된 <추적 60분>은 차치하고 MBC의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와 <PD수첩>을 비교해보면 <PD수첩>만의 강점이 두드러진다. 사실 방송 자체를 보았을 때 더 흥미가 동하는 것은 <그알> 쪽이다.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던 각종 사건 사고,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등이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PD수첩>이 다뤄온 것은 사회·문화·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시의성 있는 주제들이다. 최근 방영분만 해도 신천지(1233-1234회), N번방(1236회), 사모펀드(1232회, 1239회, 1240회), 나눔의 집(1242회)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언론의 메인을 장식하는 묵직한 주제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특히 신천지를 다룬 회차가 방송된 시기는 31번 확진자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해 신천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궁금증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이때 <PD수첩>은 그 어떤 방송사보다도 발 빠르게 2부로 구성한 신천지 특집을 내놓았다. 이 회차의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기준 6.4%로 최근의 <PD수첩> 방영분들이 3% 내외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해보면 단연 최고를 기록했다. <PD수첩>이 2007년에도 신천지를 취재해 방송을 내놓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또한 재미를 위해 쓸데없는 서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일례로 <PD수첩>과 마찬가지로 N번방을 다룬 <그알>은 기존의 흥미진진한 아이템들을 다뤄온 관성이 남아있었는지 가해자 조주빈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뤄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PD수첩>은 직접 N번방에 뛰어들어 실태를 파헤치고 시청자들에게 그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해 호평을 받았다. 재미보다는 <PD수첩>의 슬로건 그대로 ‘진실된 목격과 발빠른 보도’가 목적임이 드러난 지점이다.      



2. 앞만 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는 취재

 <PD수첩>은 시의성이 높아 대중의 주목을 받는 주제만 다루지는 않는다. 제작진들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식어버린 소재를 다시 한번 조망한다. <PD수첩>은 1237회에서 ‘스쿨미투’ 그 이후에 대해 다뤘다. 2018년 미투운동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뒤따라 학교에서도 미투를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가해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의 시점에서 이것을 기억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때 <PD수첩>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스쿨미투에 대한 위기감을 심어주었다.      


1237회 '무력감을 호소하는 인권 운동 활동가'


가해자들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있었으며 교육청과 학교는 내용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에 피해 학생들과 그 가족, 인권 활동가 등은 큰 무력감을 호소했다. 방송이 나간 이후 각종 맘카페와 커뮤니티에서는 충격적이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꺼져가는 불에 장작을 넣어주는 것 또한 언론의 의무라고 여긴다. <PD수첩>은 이를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지금 당장 언론의 주목을 받는 소재는 아니더라도 자체 취재를 통해 좋은 결과들을 일구어내고 있다. 작년 9월에 방송되었던 갭투기(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적은 주택을 매입한 후, 단기간에 전세가를 올려 그에 따른 매매가 상승에서 얻는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와 부동산 리베이트(1211화, 1213화)(<PD수첩>은 부동산 관계자들을 통해 건물주에게 임대사업자가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불법 수수료 리베이트를 받아 가는 구조를 폭로했다.), 내 집인가 LH집인가(1209화)처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직접적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대다수가 알고 있지 못했던 내용들도 다뤄왔다. 이면에 깔린 다양한 주제들을 부지런히 둘러보는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한 <PD수첩>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3. 새로운 관점과 논문과도 같은 설득력

 <PD수첩>을 보고 있으면 방송을 보기 전엔 생각이 달랐더라도 점점 설득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한 편의 논문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주제에 대해 주류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크게 겁내지 않는다. 시류와 다른 주장을 자신있게 펼치기 위해서는 반박할 수 없는 탄탄한 근거가 반드시 기반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PD수첩>에는 이를 위해 제작진들이 사건의 주류 인물 또는 관계자에게 끊임없이 취재를 시도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1212회 '동양대 학생이 받은 표창장의 일련번호와 양식이 서로 다름'


장관과 표창장(1212회)은 당시 조국 장관과 정경심 교수를 강하게 비판하던 주류 언론들의 관점과는 달리 검찰 측에서 위조 가능성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음에도 무리하게 구속수사를 한 점에 대해 조망했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한 유명 논객에 의해 정치적 색채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 조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기에 이런 관점의 제시는 과열된 언론과 이에 노출된 시청자들의 관점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조국 장관과 관련된 사건들이 가진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방송 자체만을 보았을 때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방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실제 동양대 학생이 받은 상장을 대조해 일련번호가 다르다는 총장의 주장을 뒤집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PD수첩> 시청자를 더욱 사로잡기 위해서는? 

<PD수첩>에 대중들이 가지는 인식은 대체로 ‘딱딱하고 진지한 프로그램’인 것 같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TV 앞에 앉는 현대인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프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몰아치는 근거자료들과 인터뷰들이 설득력을 쌓아가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다. 현실이 드라마고 드라마가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시청자들이 <PD수첩>으로 채널을 돌려 고정해야 알 수 있는 점이다. <PD수첩>은 우선 어떻게 시청자들의 채널을 <PD수첩>에 고정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예고편의 제목이 다소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장관과 표창장’, ‘검사범죄’식의 명사형 종결은 시청자에게 무슨 내용인지 전달은 하지만 그저 미지근한 느낌이 있다. ‘은행을 믿습니까?’ 같은 식의 의문형 종결 제목으로 시청자들이 직접 ‘나도 그런가?’ 돌아보게 할 수 있다면 TV 앞까지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PD수첩>의 유튜브 채널

또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들의 제목과 썸네일도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조회수도 안정적이지 못하다. 요즘 말로 흔히 ‘어그로(관심이나 주의를 끈다는 뜻의 인터넷 은어)’식의 제목도 고려해봄직하다. 가령 6월 3일에 업로드된 ‘스토킹 관련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 같은 경우에는 ‘1920년도 아니고 2020년인데, 스토킹을 당해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처럼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내 일’처럼 느끼게 하는 식의 제목이 효과가 좋을 것이다. 유튜브 플랫폼이 대세를 넘어 주류가 된 현시점에서 <PD수첩>도 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를 통해 접한 클립영상으로 <PD수첩>에 관심을 더 갖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30년, 위태로운 순간들을 거쳐 왔고 현재도 종종 외부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PD수첩>은 여전히 건재하다. 시청자들이 이를 알아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시간이 더 지나도 웰메이드 프로그램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정치적 기조와 관계없이 사실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방송을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 주목받지 못한 채 방치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이 다가갔으면 한다. 시의성 있는 소재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다루며 정치적 중립성을 잃지 않는, 약자의 목소리에 확성기를 대주는 역할을 하는 프로가 꼭 하나쯤은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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