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의 위기를 번영의 기회로
11월 24일, 모기장을 걷는다. 요 며칠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한동안 안 보이던 모기가 2마리나 나타났다. 모기장에 앉아 피 빨아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는 놈들을 보니 어이가 없다. 세상에, 11월 중순도 지났는데 모기라니!!(한 마리는 잡았는데 한 마리는 도망갔다). 모기장을 걷어도 되나 걱정이 되었지만 내일 다시 영하로 떨어지면 깡그리 얼어 죽겠지라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모기장아, 12월을 코앞에 두고서야 이별하는구나(이 글을 마지막으로 수정하고 있는 12월 10일, 모기들이 떼로 나타났다).
5~6월에 모기장을 쳐서 11월 말에 걷으니 일 년의 반을 모기장을 치고 지낸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모기는 여름에만 나타나는 곤충이었는데 이제 모기는 가을도 모자라 겨울까지 침범하고 있다. 방충망이 있어도 무용지물. 도대체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에 무단 침입한 모기는 원래부터 자기 집인 양 활개를 치고 다닌다. 약을 뿌리고, 훈증약을 켜고, 모기를 쫓는다는 기계를 사봐도 소용이 없다. 모기는 늘 한 수 위다.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모기를 막는 데는 모기장과 파리채 만한 무기가 없다. 징글징글한 이놈의 모기들, 인간은 결국 모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더냐.
모기를 알아보자. 모기는 파리목-모기과에 속한다. 곤충 하면 머리, 배, 가슴으로 나뉘어있고, 더듬이는 한쌍(2개), 날개는 두 쌍(4개), 다리는 세 쌍(6개)이라는 걸 공식처럼 외우지만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파리목의 곤충들은 날개가 한쌍, 그러니까 2장밖에 없다. 파리목에 속한 모기 역시 날개는 2장뿐이다. 그럼 나머지 2장은 어디 갔냐고? 2장은 퇴화해서 비행 시 몸의 균형과 방향을 잡는 평균곤halter이 되었다. 아래 사진은 파리목에 속하는 각다귀이다(각다귀는 모기를 몇만 배 확대한 것처럼 생겨서 '왕모기'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피를 빨지 않는다). 날개 아래를 보면 끝이 뭉특하고 곤봉처럼 생긴 게 달려있다. 그게 평균곤이다.
모기에 대해 또 잘 모르는 사실 하나 더. 모기는 완전탈바꿈을 하기 때문에 번데기 단계를 거친다. 모기는 알을 물에 낳는다. 알에서 나온 모기 애벌레를 흔히 '장구벌레'라고 부른다. 여름에 고여 있는 물을 들여다보면 열심히 헤엄치는 장구벌레를 볼 수 있다. 대다수 모기 유충은 플랑크톤을 먹는다. 알에서 부화해 일주일이 지난 애벌레는 번데기가 된다. 모기 번데기는 콤마 모양인데 움직일 수 있어서 위협이 닥치면 도망가기도 한다(사진 3 참고).
모기는 알에서 성충이 되는데 겨우 10~15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수명은 1개월~수개월이지만 천적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한다. 암컷은 일생동안 대략 600개의 알을 낳는 걸로 알려져 있다(각주 1). 우리나라처럼 혹독한 겨울이 있는 곳에서는 온도가 떨어지면 성충은 다 죽고, 알만 남아서 일종의 휴지기休止期가 생기는데 따뜻한 기후대에서는 일 년 내내 모기가 발생한다. 그러니 그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전 세계에 모기가 약 110조 마리가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중의 10%만 암컷으로 잡고 암컷 한 마리당 알을 500개 낳는다고 해도 이건 뭐... 계산이 안 나온다.
모기는 전 세계적으로 3,6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각주 2), 모기 전문가인 고신대학교 이동규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56종이 있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15종이라고 한다(각주 3). 이 15종 중에서도 또 흔하고 위험한 녀석들로는 빨간집모기, 작은빨간집모기, 흰줄숲모기, 얼룩날개모기 등이 있다.
모기는 비행기, 배 등을 타고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기후변화는 이 놈들의 영역 확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점차 아열대기후로 변해가는 한반도에서도 이제 모기는 일 년 내내 출몰한다. 한국도 모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말씀.
모기는 위험한 곤충이다. 물려서 가려운 걸로 끝난다면 모기에게 감사인사를 건네겠지만 이놈의 모기들은 병을 옮긴다. 모기 자체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는 모기가 피를 빨 때마다 모기 몸속에 있던 원생동물, 바이러스, 선충 등이 숙주(물리는 사람)에게 옮겨가기 때문에 물린 사람이 병에 걸린다. 가볍게 앓고 끝날 병이면 좋으련만 병도 참 고약한 병만 골라서 옮긴다.
사진 4에 언급된 병 중에는 백신이 없는 병도 있다. 어릴 때는 뉴스에서 일본뇌염이 유행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좀 뜸한 듯하다. 그렇다고 없어진 건 아니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15년에는 40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이 발생), 2021년에는 23명, 2022년에는 11명이 발생했다(걱주 4).
말라리아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2023년 7월 29일 기준 417명의 환자가 나왔다(각주 5) 우리나라에서 주로 발생하는 말리리아는 삼일열 말라리아로 어린이, 고령자를 제외하고는 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고 한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아열대 지역에서 발생하는 열대열 말라리아는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하고,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각주 6).
인간이 모기에 대항하는 방법은 소극적인 방어 밖에 없었다. 모기 유충이 증식할 물구덩이를 없애거나 늪을 매립하거나, 모기와 접촉하지 않게 모기장을 치는 등의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기에 속속 무책당하던 인간들은 살충제라는 신무기를 손에 쥐게 되었다. 그 이름하여 DDT.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의 약일지도 모르겠다.
1873년 오스트리아의 대학원생인 오트마르 차이들러는 최초로 DDT를 합성했지만 DDT의 생리학적 작용을 알지 못했고, 이후 DDT는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시간이 흘러 1939년, 스위스 과학자 파울 뮐러는 살충제 연구를 하다가 DDT의 살충 효과를 알게 되었다. 상품화된 DDT는 곧 시장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을 때 DDT는 수많은 군인의 생명을 구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말리리아, 발진티푸스(이가 병을 옮긴다) 등이 박멸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해충을 정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DDT의 흰 가루를 타고 멀리 확산되었다. 뮐러는 DDT를 개발한 공적으로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이 수상은 지금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다).
DDT는 기적의 약이었다. 모기뿐만 아니라 온갖 곤충들이 DDT에 닿으면 죽었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이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곤충들이 DDT에 내성을 갖게 되어 더 많은 약을 뿌려야 했고, 인간에게는 안전할 거라 생각했던 DDT는 먹이사슬을 거쳐 인간의 몸에 축적되어 내분비계 이상을 일으켰다. 기적의 약이 기적의 독이 된 것이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출간하여 화학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하자 DDT의 영광은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대부분의 국가에서 DDT의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1979년 DDT 사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몇십 년간 뿌려진 DDT는 분해되지도 않고 그대로 땅에 잔류해 있음은 물론이고 농작물이나 축산물에서 검출되기도 한다. 2017년에는 계란에서 DDT를 비롯한 살충제가 검출되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그때 오른 계란값이 아직도 그대로라는 사실이 주부에게는 더 공포스럽다...).
과학계에서는 살충제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먼저 알을 낳지 못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수컷 모기에 방사선을 쪼아 불임을 만들거나, 수컷 모기에 볼바키아 균을 감염시켰다. 볼바키아 균은 모기 몸속의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자라지 못하도록 하고, 수컷 모기를 불임으로 만들거나 암컷화하거나, 암컷 모기의 생식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또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수컷 모기에 특정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법도 개발되었다. 특정 유전자를 지닌 수컷이 야생의 암컷과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으면 암컷일 경우 유충 단계에서 죽어버리고, 수컷이면 유전자 조작 모기가 된다고 한다(각주 7). 이렇게 개발된 터미네이터 모기들을 야생에 풀었을 때 해당지역에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그리고 생태계에 다른 영향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모기 박멸 시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모기와 모기 애벌레는 다른 생물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늘 성가시기만 했던 모기지만 카카오의 수분을 돕는 유일한 곤충이기 때문에 모기가 사라지면 초콜릿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모기를 대체할 생물들이 많아 생태계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어떤 것이 맞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음을 뒤늦게 알게 될지도 모른다.
무서운 건 인간의 이런 박멸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기가 또 방법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조작도 넘어서는 슈퍼모기가 등장하면 그땐 어찌해야 하나.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모기를 진화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기가 생겨난 이래로 인간은 늘 지기만 했으니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모기가 DDT의 공격으로 멸종의 위기를 맞았던 것처럼 불교 역시 극심한 박해로 사라질뻔했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초, 중기에 심했고, 근래에 들어서는 1980년 10월 27일 일어난 탄압을 들 수 있겠다. 중국은 문화대혁명때 수많은 절과 성보聖寶(불상이나 불교의식에 쓰는 물건 등)가 불타고 스님들이 쫓겨나거나 자살로 내몰렸다. 불교계에서는 불교 탄압을 가리켜 훼불毁法, 폐불廢佛, 법난法難 등으로 부른다. 이번 글에서는 중국에서 벌어진 여러 법난 중 가장 대표적인 법난으로 꼽히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을 살펴보려 한다.
북위의 태무제, 북주의 무제, 당나라의 무종, 후주의 세종 때에 극심한 불교 탄압이 있었다. 네 황제의 이름을 살펴보면 세 명의 이름에 무가 들어가고, 한 명은 종이 들어가기 때문에 3무1종의 법난이라 부른다.
한나라가 망하고 수나라가 들어서기 전까지 약 370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나라가 난립했는데 이 시기를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른다. 삼무일종 법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배경이 되는 북위와 북주는 이 시기에 있었던 나라이다.
태무제(재위 423~452년)는 탁발선비족이 세운 북위(386~534년)의 제3대 황제였다. 선대 왕들은 모두 불교를 숭상하였지만 태무제는 한족이었던 최호와 도사 구겸지의 영향으로 도교를 믿게 되었다. 도교에 더 깊이 빠져든 태무제는 불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438년 50세 이상에게만 승려 자격을 허용한다는 조서로 인해 50세 이하 스님들은 강제로 환속(성직자가 일반인이 되는 것)되었고 444년 승려에게 공양을 금지시키는 조칙을 내렸다. 본격적인 폐불은 446년부터 452년까지 이뤄졌다. 446년 사찰의 부패와 승려의 비리를 빌미로 절과 경전을 불태우고 스님들을 죽였다. 태무제의 죽음으로 폐불은 막을 내렸고, 태무제의 뒤를 이은 문성제는 다시 불교 부흥정책을 펼쳐서 불교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었다.
무제(재위 560~578년)는 북주(557~581년)의 제3대 황제이다. 당시 불교의 사원은 3만 개가 넘을 정도였고, 스님은 전인구의 1/16에 달할 정도여서 국가 재정에 해를 끼치고 있었다. 태무제와 마찬가지로 중국 통일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품고 있고, 유가를 중시하던 무제에게 위원숭(그는 승려였다가 환속했다)은 폐불을 진언하였고 도사 장빈이 이를 거들었다. 무제는 574년 도교, 불교를 모두 폐한다는 칙서를 내렸다. 그런데 도교의 피해는 적은데 비해 불교는 큰 피해를 입었다. 애초부터 불교를 타깃으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무제는 경전과 불상을 없애라 하였고, 스님과 도사는 강제 환속시켜 일반 백성이나 군인으로 만들었으며, 사원과 도관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이때 많은 사찰이 파괴되었으며, 환속을 거부한 스님들은 남쪽으로 도망을 갔다.
무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없는 인물이 정영사 혜원 스님(523-592)이다. 폐불을 앞둔 무제가 500여 명의 이름난 스님을 궁으로 모이게 해 불교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들면서 너희 승려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황제의 답정너 질문에 감히 맞설 간 큰 스님은 없었다. 이 살벌한 분위기를 뚫고 혜원스님 홀로 당당히 무제에게 답했다. 혜원스님은 먼저 무제가 말한 불교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반박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폐하는 지금 힘만 믿고 삼보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으므로 폐하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불교사를 통틀어 패기로는 1위인 혜원스님이지만 무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불교를 폐지하여 만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지옥의 고통도 달게 받겠다"
혜원스님의 예언이 맞았는지 무제는 폐불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죽었고, 그의 죽음으로 폐불 역시 중단되었다.
당나라 시기 발전을 더해가던 불교에 또다시 폐불이 자행되었다. 당나라 무종(재위 840~846년) 때의 폐불은 회창 연간에 발생했다 하여 회창법난이라고도 한다. 무종은 태무제와 비슷하게 도교를 신봉하였고 도사 조귀진을 신임하였다. 조귀진의 간언으로 외래종교인 불교, 경교(네스토리우스교), 요교(조로아스터교), 회교(이슬람교), 마니교등은 박해하기 시작였다. 842년 스님 가운데 행실이 좋지 않은 이는 재산을 몰수하고 환속시키라는 조칙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4600여 개의 사찰을 폐쇄하였으며 26만여 명의 스님을 환속시켰다. 불상과 절의 금속은 녹여서 돈이나 농기구로 만들었다. 장안, 낙양에서는 겨우 4개의 절만 남겼고 각 사찰에는 스님 30명만 거주할 수 있었다. 6년의 재위기간 동안(도교에 심취한 무종은 도사들의 말을 듣고 단약을 먹다가 중독되어 죽었다) 폐불이 4년을 차지할 정도로 회창법난은 무종의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회창법난은 삼무일종의 법난 중 규모가 가장 컸으며 그 피해도 막심했다. 교종(경전을 중시하고 교리를 체계화하는 종파)은 아예 쑥대밭이 되었고 산속에서 소규모로 수행하던 선종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적게 받아 그 뒤로 세력이 더 왕성해져서 중국 불교의 주류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 건국되기 전까지 약 70여 년간의 혼란기를 오대십국이라고 한다.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한 5개 왕조인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를 오대, 화북 이하에서 일어난 열개의 지방정권을 십국이라 한다. 삼무일종의 마지막인 세종(재위 954~959년)은 후주(951~960)의 제2대 황제이다. 세종의 폐불은 4개의 법난 중 가장 약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3천 개가 넘는 절이 폐사되었고, 사사로운 출가 및 삭발이 금지되었으며, 불상과 종은 압수하여 주원통보라는 동전을 만들었다. 세종의 폐불 목적은 앞의 세 경우와 조금 달랐다. 하나의 왕조(국가)가 십 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명멸하는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세종은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야망이 있었고, 오직 나라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폐불을 단행했다. 955년 시작된 폐불은 앞의 세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흔히 수, 당나라 시기를 중국 불교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당 무종과 후주 세종의 폐불로 중국불교는 슬슬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미 인도에서도 불교는 쇠퇴하고 있었기에 외부에서 유입되는 자극도 없었고, 내부적으로도 연이은 폐불로 인적, 물적자원의 피해가 크다 보니 중국 불교의 활기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교의 신앙적, 문화적 위상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사상적으로는 신유학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삼무일종의 법난이 일어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불교계의 타락이다. 번성을 구가하며 규모가 비대해진 불교계는 여러 문제를 내보이고 있었다. 면세 특권을 받은 사찰은 수많은 땅을 차지해 부를 늘리다 보니 점차 호화로워졌고, 병역을 피해 몰려든 이들 때문에 스님의 수는 무한정 늘어났으며, 가짜 스님들은 절을 내세워 범법행위를 하거나 남녀가 어울리고 술을 마시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절을 짓거나 불상을 세우는 일에 인력과 재력이 집중되는 것도 문제였다. 종교라는 권위와 부를 등에 엎은 사찰과 승려의 횡포는 백성들에게도 피해가 되었지만 국가 경제 및 국방에도 큰 부담이 되었다. 불교계가 번영할수록 나라의 곳간은 비고, 다른 산업은 발전하지 않으며, 군인은 줄어들었으니 황제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두 번째는 도교의 공격이다. 태무제에게는 구겸지, 북주 무제에게는 장빈, 당 무종에게는 조귀진이라는 도사(도교를 믿고 도교의 의례를 집전하는 성직자)가 곁에 있었다. 그들은 도교 세력을 키우기 위해 라이벌인 불교를 제거하기로 했다. 황제는 불교의 부패와 위험을 주장하는 도사들의 말에 동조했다. 네 명의 황제 중 도교에 심취했던 태무제와 당 무종의 법난은 다른 두 법난보다 훨씬 정도가 심했다. 이 말인즉슨 불교 탄압에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갔다는 말이다.
법난을 일으킨 황제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죽었다. 태무제는 환관에게 독살당했으며, 무제는 전쟁을 준비하다가 병사했으며, 당 무종은 단약 중독으로 죽었고, 후주의 세종 역시 재위에 오른 지 5년 만에 병사하였다. 이들의 죽음을 두고 일부에서는 불교 탄압의 업보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찌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중국 황제 중 수명이 짧은 사람들은 이들 외에도 수두룩빽빽하며, 혼란기에는 황제는커녕 일반 백성들조차도 제명대로 살기가 더 어렵다. 삼무일종의 네 황제가 어리석거나 포악한 것도 아니었다. 당 무종을 제외한 세명의 황제는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력을 탄탄히 하여 명군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폐불의 업보만 있을까.
삼종일무의 법난으로 법난이 끝난 건 아니다. 그 뒤로도 북송 휘종 때 폐불이 있었고,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불교계는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사회주의'를 표방한 현대 중국에 들어와서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무참히 파괴되었다. 중국이 자본주의에 맛을 들이자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문화, 특히 관관용 문화재로 주목받아 다시금 살아나고 있지만(양과 크기에 집중하는 대륙식 스타일로 재건되고 있다) 옛날의 영광을 살릴 수는 없어 보인다. 현재의 중국 불교는 교학적으로도 수행적으로도 뒤처져있는 게 사실이다(대만불교는 별개다).
삼종일무의 법난을 보면 불교계는 부패와 타락으로 탄압의 빌미를 제공한다. 몇 번의 폐불을 거쳤는데도 불교계는 스스로 자정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권력의 일방적인 탄압이 정당한 건 절대 아니다.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이니 이미 폐불을 마음먹었다면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밀어붙였을 것이다. 삼무일종의 법난뿐만 아니라 다른 법난들도 결국은 정치적인 파괴이자 박해에 지나지 않는다. 정권의 입장에서 불교 탄압은 가장 쉽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고, 가장 쉽게 돈을 뺏을 수 있는 편하고 빠른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과 재물의 피해도 무섭지만 정권의 입맛대로 얼마든지 파괴해도 된다는, 그리고 자신들은 정당하다는 그 무소불위의 생각이 가장 공포스럽다. 또한 사회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를 일삼고도, 이를 제지하면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일부의 가증스러운 궤변과 테러에 버금가는 반발 역시 두렵기는 매한가지다.
중국에서 불교가 관광 산업으로 다시 일어나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불교는 템플스테이,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21세기형 불교로서 부흥을 모색하고 있고, 호감 가는 종교이자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종교가 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법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법난은 단지 종교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기 멸종이 한 종의 멸종만으로 끝나지 않듯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법난이 가능한 사회는 다른 것도 얼마든지 탄압할 수 있는 사회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로 나아가고 있을까.
1. 백창은, "인류VS모기, 최후의 승자는," 동아사이언스, 2023년 6월 10일,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60150
2. 위키피디아, "Mosquito," 2024년 1월 15일 접속, https://en.wikipedia.org/wiki/Mosquito
3. 취재대행소 왱, "우리나라에는 어떤 모기들이 있을까?," 2020년 6월 24일 수정, https://v.daum.net/v/5ef1bc75963dec2fee645901
4. 질병관리청, "질병관리청, 전국에 일본뇌염 경보 발령(7.27.목)," 2023년 7월 28일 수정, https://www.kdca.go.kr/board/board.es?mid=a20501000000&bid=0015&list_no=723121&cg_code=&act=view&nPage=1
5. 질병관리청, "모기에서 말라리아 원충 확인, 말라리아 조심하세요!(8.3. 목)," 2023년 8월 3일 수정, https://www.kdca.go.kr/board/board.es?mid=a20501000000&bid=0015&list_no=723169&cg_code=&act=view&nPage=1
6. 오상훈, "수도권까지 퍼진 말라리아, 모기 물리고 '이런 증상' 있으면 의심," 헬스조선, 2023년 7월 9일,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7/07/2023070702393.html
7. 최소라,"[사이언스 취재파일] 모기 죽이는 다양한 기술…완전 박멸 가능할까?," YTN 사이언스, 2023년 4월 24일, https://m.science.ytn.co.kr/program/view_today.php?s_mcd=0082&key=202304241701277056
1. 이운자, "전북서도 일본뇌염 매개 '빨간집모기' 첫확인," 헤럴드경제, 2019년 7월 12일, https://mbiz.heraldcorp.com/view.php?ud=20190712000248
2. 위키피디아, "평균곤" 2024년 1월 15일 접속, https://ko.wikipedia.org/wiki/%ED%8F%89%EA%B7%A0%EA%B3%A4
3. (왼쪽) 임동근, "[오늘은] '앵∼' 모기 사라지면 초콜릿 못먹는다?," 연합뉴스, 2022년 8월 20일, https://www.yna.co.kr/view/AKR20220816074300797
(오른쪽) Jan hamrsky, "mosquitoes," LIFE IN FRESHWATER.NET, 2024년 1월 15일 접속, https://lifeinfreshwater.net/ngg_tag/mosquitoes/
4. 김정아, "이 모기를 조심하세요! 주요 감염병 매개 모기," 디지틀조선일조, 2018년 7월 19일, https://digitalchosun.dizzo.com/site/data/html_dir/2018/07/19/2018071911938.html?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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