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도 먹었고 숙제도 했고 슬슬 잘 준비를 하던 때였다. 갑자기 ‘악’하고 여자의 새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와 달리 엄마는 급히 옷을 갖춰 입고 집을 나섰다. 잠시 후 돌아오신 엄마는 “앞집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엄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상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필자와 동생이 인사를 드리면 ‘호이’라고 답해주셔서 우리끼리는 둘리 할아버지라 불렀었다.
다음날 아침 등교를 할 때만 하더라도 평소와 다른 건 없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자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집 앞 15m 정도 되는 짧은 골목에는 흰색 그늘막이 쳐 있었고,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고 갔다. 항상 닫혀있던 앞집 대문도 활짝 열려있었다. 드문드문 흰 삼베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고 한밤에도 천막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필자는 등·하교를 할 때마다 쭈뼛거리며 천막을 지나다녔다. 며칠 뒤 집에 오니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텅 빈 골목은 썰렁했고 앞집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호이’하고 말씀하시던 둘리 할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점만 빼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30여 년 전 국민학생이었던 필자가 처음으로 본 장례식이자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집에서 치르는 장례식은 이렇게 단편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어른이 된 필자가 조문객으로 간 장례식은 대동소이했다. 장례식장의 모습도, 상주의 옷차림도, 상에 놓인 음식도, 봉투를 든 조문객도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비슷했다. 장례식장의 모습처럼 죽음은 모두 엇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지나 이런저런 죽음을 접하고서 알았다. 어느 죽음도 같지 않음을. 한 사람이 겪는 죽음도 대상(자기 자신, 배우자, 지인, 자식)과 원인(병, 사고)과 환경(비용, 시간, 역사)에 따라 고통의 강도가 다르고, 슬픔의 깊이도 천차만별임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닿을 수 없는 타인의 슬픔은 언제나 아득해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강 건너 불구경 같았던 죽음은 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가까워졌다. 어린 자식을 두고 눈을 감은 부모의 사연을 들을 때면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늙은 얼굴을 마주할 때면 죽음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죽음이 얼마나 다양하고 내밀하고 개별적인지 알 것 같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할 것이다. 암 진단을 받은 스나다 도모아키는 엔딩노트를 쓰기 시작한다. 엔딩노트란 유서와 비슷하지만 사적이고, 법적인 효력이 없으며 가족에게 보내는 당부 같은 문서이다. 그는 엔딩노트에 사후 연락처, 장례 관련 사항, 유산 분배 등에 대해 꼼꼼히 적는다. 엔딩노트 속 ‘의견을 모으되 결정은 내가 한다’는 문구처럼 그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일본 영화 <엔딩노트(2012)>는 스나다 도모아키의 막내딸 스나다 마미가 아버지의 죽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쿄올림픽이 열렸던 1964년, 도쿄에 본사를 둔 화학회사에 입사한 스나다 도모아키는 67세까지 근 40여 년을 샐러리맨으로 일하고 퇴직했다. 은퇴 후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평생교육원도 다녔다. 결혼 후 처음으로 주말부부로 지내다 보니 싸움이 잦았던 부부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69세가 된 해 5월 그는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항암치료를 받으며 스나다 도모아키는 자신의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먼저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독실하지는 않아도 불교도로서 살아온 그는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불교식 장례가 번잡한 게 싫다며 천주교식 장례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신부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 받아온 기도문을 읊조려 보고 세례명도 고민해 본다. 장례식장을 사전 답사하고, 장례식 초청 명단도 세세하게 작성한다.
장례식 준비만큼 중요한 것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미국으로 전근 간 아들 가족이 여름방학을 맞아 일본으로 오자 그는 두 손녀의 머슴을 자청해 열심히 놀아준다. 11월에는 나고야에 홀로 사는 94세 노모를 모시고 온 가족이 이세시마로 마지막 여행을 간다.
12월, 병이 더 진행되어 올해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자 미국에서 아들네가 급히 귀국한다. 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 다음날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한 그는 닷새째 되는 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다.
스나다 도모아키가 작성한 엔딩노트에는 사무적인 내용만 담겨있었다고 한다. 딸이면서 촬영자이고 감독인 스나다 마미는 엔딩노트가 보여주는 아버지의 꼼꼼하고 성실한 모습 외에 밝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실제로 암 진단 후 돌아가실 때까지 가족 앞에서 이성을 잃거나 심각하게 우울해하신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스나다 도모아키는 농담으로 가족들의 긴장과 슬픔을 풀어준다. 스나다 마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본래의 자신의 캐릭터를 잃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것처럼 죽어가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편집을 할 때도 아버지의 이런 캐릭터가 보는 분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개인마다 다르기에 어떤 이는 죽음을 부정하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엔딩노트> 주인공처럼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테고, 어떤 이는 영화 <버킷리스트(2017)>속 주인공처럼 평생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남은 생을 살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불자로서 드는 생각, 부처님은 어떻게 입멸入滅(죽음)을 준비하셨을까.
부처님의 입멸은 <열반경>에 자세히 나와 있다. <열반경>은 크게 두 종류로 초기불교의 열반경과 대승불교의 열반경이 있는데 경전의 이름은 같으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다. 초기불교의 열반경이라 하면 《디가 니까야》의 제16경인 《마하빠리닙바나 숫따》를 말한다. 이 경전에는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과 입멸이 가장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부처님께서는 특별한 입멸 준비를 하지 않으셨다.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해 오신 생활과 다름없이 지내셨다. 아침에는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러 마을로 가셨고, 하루의 대부분을 수행승들과 재가자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사람이라면 입멸이라는 커다란 일이 일어나기 전 뭔가 감동적이거나 놀라운 에피소드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겠지만 정작 경전을 읽어보면 새로운 만남이나 사건·사고 보다 설법이 더 많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 개월 뒤 입멸에 들겠다는 선언도 경전 중간 부분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다소 건조한 <열반경>에서 눈길을 끄는 건 부처님의 자비심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부처님께서는 쭌다(춘다)가 공양 올린 쑤까라맛다바를 드시고 병에 걸려 큰 고통을 겪었다. 혹여 쭌다가 이로 인해 상심하거나 회한을 느낄까 봐 아난다를 시켜 열반에 이르게 하는 공양은 최상의 공덕을 지닌다는 말로 그를 위로하게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사뭇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도 끝까지 경청하고 답을 해주셨다. 말라족의 아들 뿍꾸싸가 알라라 깔라마(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 후 만난 두 명의 스승 중 한 사람)는 이렇게 대단하다며 한참을 떠들어도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후 깨달은 사람의 위대함은 그와 비교되지 않음을 말씀하셔서 뿍꾸싸를 제도하셨다. 아난다는 냐띠까 마을에서 죽은 12명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를 길게 여쭙는데 부처님은 그들의 운명을 하나하나 다 말씀해 주셨다(덧붙여 사람이 죽을 때마다 묻는 건 여래를 괴롭히는 일이라고도 말씀하셨다).
45년은 16,425일이다. 부처님의 16,425일은 매일매일이 거의 같았을 것이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일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가르침을 설하는 일이다. 수행승과 재가신자들은 물론이고 천신이나 악마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제도했다고 한다. 16,425일은 16,425번의 반복이다. 이 엄정함을 인지하면 <열반경>은 더 이상 밋밋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람은 죽기 마련이고,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면 죽음이 오는 시간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온 것처럼 죽어간다는 말은 냉혹한 말이다. 평소 게으르고 거칠게 살아온 사람은 남은 시간도 게으르고 거칠게 보낼 것이고, 평소 부지런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모습대로 죽음을 향해 갈 것이다. 죽음은 삶을 투영한다. 올해 백중 등을 보니 문득 둘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께 들었던 둘리 할아버지 죽음에 관한 뒷이야기는 무척 씁쓸했다. 망자는 죽음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평가까지 짊어진 채 삼도천을 건넌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사진출처
1. 홍진호, '봉은사, 백중 ‘영가등’ 아래 ‘연꽃’ 만발..."모두의 행복 위해 기도"', BBS, 2020년 7월 16일
https://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6186
2. SBS 연예뉴스팀, '일본 엔딩노트 보급, 내 마음 전하는 노트...'어떤 내용?', SBS, 2014년 11월 6일
https://ent.sbs.co.kr/news/article.do?article_id=E10005909294
3.박인식, '['방랑의 작가' 박인식 부처의 길 따라 100일 동안 걷다]"모든 것은 덧없다… 다만 힘써 끝없이 정진하라"', 조선일보, 2010년 5월 17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0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