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은 눈 멀고 귀먹은 척 어느 누구에게도 그 일을 발설하지 않았다. 특별히 엄마의 입단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읍내에 있는 여상에 재학 중이었던 터라 성(性)에 대해 전혀 모르지도 않았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지탱해 온 원천이며 범죄와 부도덕, 타락의 온상이기도 한…. 형이상학적 다면성의 불가사의라는 것을, 그간 읽은 문학 서적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인류를 위한 순기능이든 역기능이든, 반드시 음지에서 행해져야 하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석표네가 점유한 땅을 돌려받기 위해 법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지루한 법적 공방 끝에 조건 없이 돌려주라는 법원의 판결이 떨어졌다. 판사 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네네…!’ 하며 읊조리던 부부가 돌아와선 딴청이었다. 또다시 뽕나무 값으로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법원에선 이미 경작한 햇수로 나무 값을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그들은 엉뚱한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으며 배짱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의 뽕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하는 엄마를 석표 아버지가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바람에 갈비뼈 여러 대가 부러졌다.
법도 당장의 주먹 앞에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살면서 견뎌온 모든 불행을 통틀어도 근접하지 못할 비극적인 일이 현숙네를 덮쳤다. 대구로 나간 동생이 방으로 새어 들어온 연탄가스에 의해 장애의 몸이 된 것이었다.
감당하지 못할 충격을 받은 엄마는 이성을 잃고 허우적댔다.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동생과 함께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했다. 현숙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은 엄마와 동생이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혹시 동생이 나아서 오려나 하는 희망이 있었고 잠시나마 두 사람의 절망에서 비켜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죽음 앞에 모든 것이 용서되듯, 죽음보다 못한 장애를 가진 불구자에게 동네 사람들의 인심도 좋아진 듯했다. 똑똑한 아들딸을 둔 현숙네를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들까지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엄마와 동생을 위로한답시고 죽과 미음을 끓여오기도 했다. 엄마는 사람들의 방문을 극도로 꺼렸으나, 집안 어른들이 찾아오면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곤 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다시 자리보전하고 있던 엄마가 현숙을 불러 호박죽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무엇을 먹고자 하는 엄마가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호박과 팥을 삶고, 찹쌀을 불려 절구통에 찧어 가마솥에다 안치고 나무 주걱으로 천천히 돌려가며 저었다. 그리고 뜨끈한 사발에 양껏 담아 상에 올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엄마와 동생, 현숙 세 사람은 포만감을 느끼는 식사를 했다.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에 현숙이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머리가 부엌으로 쑥 들어왔다.
“허억! 깜짝이야!”
석표 어머니 뒤에 장대같이 서 있는 괴물, 석표 아버지도 있었다. 동생 병문안 겸, 산을 돌려주기 위해 왔노라 했다.
“돌아가이소. 병문안 필요없꼬예, 우리 산은 당장 발 들이지 마이소. 산에 발이 달린 기 아닌께네, 오데 가지는 않을낍니더!”
흥분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현숙의 목소리가 방 안까지 들렸던지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누고?… 이런 개XX… 짐승만도 못한… 빌어먹을 인간들….”
온갖 욕으로 악귀 쫓듯 그들을 물리친 뒤 엄마는 현숙에게 분풀이를 했다. 옆에 있는 빗자루 몽둥이로 콩 타작하듯 딸을 두들겨 패며 숨비소리를 토했다.
“니가 지금 제정신이가? 인두껍 쓴 짐승을 어디 감히 집에 들여. 저거 아들보다 잘났던 내 아들 얼마나 못쓰게 되었는지, 그거 확인할라꼬. 가서나들이 저리됐으면 내가 이렇지는 않았을 낀데….”
그들이 다녀간 다음 날, 석표 아버지가 원호대상자(국가유공자)로 선정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 소식에 엄마는 다시 두문불출했다.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고통이 어쩌면 가장 고약한 질병인지 모른다.
강산이 몇 바퀴 더 돌았다. 망각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시간 덕에 모두는 널브러진 잔해들 속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주워 올리고 있었다. 캄캄한 동굴 속에 갇혀 질식할 것만 같은 가족들에게 미약한 빛과 산소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동생이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드디어 바깥세상으로 한 발씩 떼어, 장애인 특별 고용하는 회사에 취직을 했던 것이다.
형제들도 하나둘 가정을 꾸리고, 현숙도 결혼을 했다.
결혼하자마자 해외 지사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십여 년 가까이 한국을 떠나 살다 마흔 살이 되던 해 귀국했다. 너른 이국 땅에서 자신의 가족만 달랑 살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 놀라며,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시댁에 대한 의무와 과열된 자녀교육 분위기 등이 그녀를 낯선 우주로 데려다 놓은 듯했다. 하루하루 빠른 서울의 시계를 살아내느라 세월의 시계는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을, 문자 한 통을 받고서야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Y초등학교 35회 회장 홍○○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고향에서 초등학교 총동문회를 개최하고자….”
지금껏 초·중·고 동창회에 갈 기회도 없었거니와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귀국하여 대구에 사는 큰오빠네 집에서 엄마와 형제들을 만났을 뿐 시골에는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였기에, 동창회장이라는 친구의 문자에 지금껏 해외에서 거주하다 온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 사실에만 고개가 갸웃했을 따름이었다.
문자를 받은 다음 날 큰오빠가 친정 가족 단톡방에 초등학교 총동문회 소식을 공유하며, 엄마도 뵐 겸, 겸사겸사 모이자고 했다.
두 오빠와 언니가 다녀오겠다고 하는 가운데, 현숙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런 대화가 오간 저녁,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뜸을 들이던 동생이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누나! 시골 동문회 올 거야?
"아니."
"..."
동생이 묘한 여운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종현은 여느 형제보다 세 살 터울인 현숙을 가장 많이 의지하고 따랐다.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과 사고를 당한 후에도 엄마와 현숙이 있는 시골로 돌아왔으므로, 둘은 직접적인 아픔과 슬픔을 가장 많이 경험한 당사자들이었다. 이런 연유로 다른 형제들에게 터놓지 못하는 내면의 이야기까지 누나인 현숙에게 서슴없이 펼쳐 보이곤 했다. 게다가 해외에서 살다 온 현숙의 아이들인 조카를 특별히 귀여워했다.
깐깐한 매형과 사돈들에 대한 눈치 때문에 저러나 싶어 전화를 되걸었다.
“조카들 보고 싶으면 서울에 다녀가렴.”
“누나! 그게 아니라..., 석표가 보고 싶어….”
순간, 현숙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지금까지 현숙 자신은 물론 누구도 동생의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궁금하게 여긴 형제가 없었다. 모두 가정을 가지고 배우자와 자식들과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었다.
동생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사고가 났으니 중학교 졸업장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 잎새처럼 아스라이 매달려 있는 초등학교 졸업장! 자신의 몸이 성성했던 아름다운 과거가 오롯이 담겨 있는, 간절히 원하지만 닿지 않는 거리….
본인들이 취사선택해서 가거나 말거나 했을 다른 이들의 동창회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친정 형제들과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곤 했다. 무심코 형제들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에 그녀 가슴이 무너져 내린 일이 있었다. 석표가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패스했다는 소식이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엄마와 동생이 느꼈을 박탈감 등이 피부로 전해져 너무나 괴로웠었다. 동네 입구에 버젓이 현수막으로 걸려있는 사진까지를 보내온 언니에게 ‘다시는 이 따위 소식 전하지 말라’며 매몰찬 화살을 쏘기도 했었다.
읍내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총동문회 행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당시 강 건너 초등학교라곤 유일한 데다 역사까지 깊다 보니 동문 수도 어마했다. 오십 대 초반의 현숙이 35회였으니 1회 졸업생은 80~90세 언저리일 것이다.
배움의 문턱이 높았던 당시는 취학 연령에 맞춰 입학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던 까닭이다. 현숙의 동기들조차 나이가 고르지 않았던 걸 보면 그 이전은 더하고도 남았으리.
사망하지 않은 1회 졸업생부터 참석 가능했으니 고향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물론 타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까지 총 결집시킨 대규모 집회며 잔치였다.
특정한 장소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밀집한 것을 본 것은 어린 시절 읍내장터에서 본 이후 처음이었다. 물결처럼 휩쓸려 다니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겨우 35기수 팻말이 적힌 자리에 몸을 앉혔다.
행사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음이 느껴졌다. 운동장과 벤치가 면한 자리마다 기수별 천막이 설치돼 있었고, 내부엔 테이블과 의자가 여유 있게 들어차 있었다.
동창·동문회라곤 생전 처음이라 그런지 친구들이 긴가민가하며 그녀를 힐금힐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가족과 친지, 아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요란한 상봉의식을 치르느라 시선들을 거두어갔다.
“이게 누고? 석판 동생 판식이 아이가? 야아아, 일마, 이것도 벌써 어른 다 됐뿐네. 뺄가 벗고 고추 내놓고 댕기더이, 너거 형ㆍ누나 온다카더나?”
“예, 온다 카데에, 행님 동생들은 모두 왔십니꺼?”
“온다켔응께 여어 오데 안 있겠나.”
“종윤, 임훈, 홍렬… 너거들 니 와이리 늙어뿐노?”
“야아, 이 자슥들 봐라. 지 늙은 건 모르고, 니 뒷모습 보고 은사님인 줄 알았다, 머리가 허여이 다 세서….”
“음마야! 명숙이, 순자, 영순… 이기 몇 년 만이고?”
“너거 신랑 뭐하노? 아아는 몇이고?”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현숙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며 군중 속의 고독에 시달렸다. 고독의 바탕은 순전히 석표가 종현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추스를 수 없이 복잡한 감정에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았다. 좋은 쪽이든 아니든 그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운동장 건너편에 위치한 동생의 기수자리를 찾아, 멀찍이서 동생을 관찰했다.
‘!!’
번잡한 도시의 도로 한복판에 폭삭 내려앉은 싱크홀, 그 한가운데 하나의 점처럼 동생이 앉아있었다.
동생 주변이 휑한 공(空)으로, 누구도 근접치 못하게 가림막을 쳐 놓은 듯했다. 웃고 떠들며 술잔을 위로 치켜올리는 동생의 친구들과 동생의 대비는 극과 극으로, 싱크홀과 가림막 위를 칭칭 감아놓은 점멸등처럼 환시되기도 했다.
친구들에 둘러싸인 군계일학, 자기 아버지를 빼닮은 체격과 눈매의 석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와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풍경이 벌통을 빠져나온 여왕벌 주변으로 무수한 일벌들이 둘러싼 모습과 흡사했다.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현숙은 쿵쾅대는 심장을 잠재우느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녀도 처음엔 언니 오빠들부터 만날 생각이었으나, 동생과 석표를 본 충격에 몸이 굳어버렸다.
다들 잘 왔는지 묻는 친정 형제 단톡방 문자에 ‘집에서 보자’는 짤막한 답신만을 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롤러코스터 같은 환경에서 자란 터라 현숙은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담을 쌓았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한 명조차 없다 보니 동창들이 모두 데면데면했다.
마땅히 시선 둘 데가 없어 애꿎은 손톱가시를 뜯고 있던 그녀에게 테이블 위 책자가 눈에 띄었다. 민망한 시선을 고정시킬 좋은 구실이어서 덥석 집었다. 행사 안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