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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Oct 05. 2024

신(神)의 선택ㆍ3~E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몽니를 부려봤자 결국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었다. 석표가 동생을 받아준다면 그의 부모가 저질렀던 악행들이 조금이나마 상쇄될 듯싶었다. 어쩌면 그의 성공 마디마다 박탈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던 현숙의 가족들 또한 응원과 지지 쪽으로 선회할지 모른다. 인간의 마음이란 한낱 떠도는 종잇장보다 가벼울 때가 있으니.

 

 국회의원에 이어 군수가 차례로 축사를 이어가는 동안, 현숙이 앞으로 나아가 연단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오른쪽 뒤편에 몸을 바짝 붙였다. 석표를 만날 생각이었다.


 식순에 따라 두 귀빈의 축사가 끝나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이분! 이 고장의 가장 빛나는 미래! 우리나라 살림 비용은 이분의 도장 없이는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 홍석표 국가○○기획실장입니다.”

 드디어 석표가 연단에 오르고, 긴 시간 이어지는 박수갈채에 사회자가 몇 번이나 제지를 시켰지만 오히려 더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결국 석표가 마이크를 뺏듯 넘겨받았다.

“허허허허, 좋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마 내일까지 가입시더! 제가 부족하나마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고향 덕분으로….”

 군민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축사가 끝나자, 박수와 함성은‘홍석표, 홍석표’란 구호로 이어졌다. 연단 아래서 검정색 양복을 갖춰 입은 무리들이 이름을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축사 끝나자마자 바로 내려올 줄 알고 연단 오른쪽 계단 옆에 바짝 붙어선 현숙을 검정색양복 무리가 다가와 뒤로 가라며 손짓했다.

 자신의 차례에 차질 없이 들어야 할 카드섹션이 저 앞에서부터 엉킨 탓에 타이밍을 놓친 기분이었다. 1초가 1분, 1분이 1시간 같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석표가 연단 아래로 내려왔다. 현숙이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그의 앞에 고꾸라지듯 넘어졌다.

“아이쿠우! 조심하세요…. 괜찮으세요?”

“아, 네에 네에, 안녕하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석표가 거듭 괜찮은지를 묻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현숙이 석표의 옷자락을 잡았다.

“홍 실장님, 저어 이종현 누나 이현숙, 잠시 얘기 좀 나누고 싶습니다.”

“네에? 아아… 네에.”

멈칫 놀라며 현숙을 바라보던 그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불편하다면 잠깐 자리 옮겨서….”

“무슨 얘긴지 모르지만, 여기서 해보세요.”

“종현이가 석표씨 보고 싶다고….”

“아아 또 저는…, 아까 봤습니다.”

“물론 봤겠죠. 외톨이처럼 앉아 있는 동생이 안쓰러워서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리라 여겨집니다. 예전으로 돌아가 달라는 건 아이고. 그건 불가능하겠지만….”

 아무 말 잔치로 횡설수설하는 현숙을 처리(?)하라는 듯 석표가 검정 양복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여러 명이 그녀를 에워싸며 석표로부터 그녀를 떼어 내려 했다. 현숙이 거칠게 발버둥치며 석표를 향해 격분을 토했다.

“홍석표!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 매정하노?”

“제가 뭘 어쨌게요? 종현이를 업어주기라도 하란 말입니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을 텐데?”

“우리가 유치원생입니까? 친구랑 잘 지내라 마라 하게요!”

“우리 가족은 모두 묻고 지내왔다. 동생이 저렇게 된 마당에 옛날 일을 끄집어 내 뭐하겠노? 너의 부모들 일을 네가 속속들이 알란가 모르겠다만….”

“듣자 하니, 저희 부모님이 뭘 잘못했습니까?”

“지금에 와서 과거를 따져 뭐하겠노.”

“한 번 따져보시죠. 저도 알 건 다 알아요.”

“뭘 아는데?”

“그렇게 남자가 필요했으면 재혼을 하든가!”

“뭐어, 뭐라구? 너 말 다했어?”

“할 말 많지만 여기까지만 할게요.”

“이런 개 같은!”

“말조심하세요!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욕을 하세요?”

“너 같은 건 개도 아깝다. 그래, 그 핏줄이 어디 가겠니?”

“뭐 이따위 여자가 다 있어?”

“오호라, 이제야 본성이 나오는구나, 그러면 그렇지….”


 결국 현숙은 검정양복 여러 명에 의해 먼지처럼 가볍게 들려 행사장 밖으로 내쫓겼다. 분을 이기지 못해 다시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 마음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오른 후 핸들에 고개를 박은 채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 그녀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석표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는 동안 국가유공자 혜택을 입었으며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객관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간의 현재 위치는 과거를 바탕으로, 가족을 뿌리로 두고 있다. 가족은 선(善)이든 악(惡)이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회성과 국가관의 싹을 틔우는 요람이기도 하다.


 살아오는 동안 현숙은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들었던 온갖 이야기들이 콩나물시루에 물 새듯 귓등으로 흘러나갔지만, 알게 모르게 흡수된 수분과 미네랄로 내적 성장이 이루어져 왔다고 믿어왔다. 설마 마흔 살이 넘도록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현숙네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칼이나 가위로 싹둑 잘라냈을까?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큰 꿈을 꾸고 있다면 더더욱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권력 실세인지 모를 석표에게 대든 대가는 종현에게 더 비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날의 동문회 이후 명절이나 휴가철 고향에 올 때도 아예 대문 밖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며, 엄마와 형제들이 걱정을 해왔다. 장애를 받아들인 후 산과 들로 바람 쐬러 다니던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말아, 예전보다 더 외로운 꼴이 되어버렸다.


 그런 동생을 의아해하는 엄마와 형제들에게 현숙은 시침 뚝 뗀 채 동문회 비화(悲話)를 털어놓지 않았다. 가족들이 받을 상처는 물론, 특히 둘째 오빠의 불같은 성격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서였다.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장치가 있어, 어떠한 고통이나 괴로움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기 마련이다. 시가와 집안일,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느라 친정 관련 일들이 그녀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평탄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한 그녀의 일상이 흔들린 것은 동문회에서의 그 일 이후, 7~8년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카톡이 울려 전화기를 열어보니 초등학교 동창회장으로부터 '밴드 초대장'이 들어와 있었다. 그렇잖아도 3백 명 가까운 동창들 '단톡방'에 매일같이 올라와 떠다니는 글과 영상들에 피로감이 느껴지던 중이었다.

 방을 나오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가끔 한 동네 살았거나 고향지킴이로 살고 있는 친구들의 고향 관련 소식에 엄마의 안부와 동선까지를 점칠 수 있어 쉽게 발을 빼지 못했다. 밴드라니, 단톡방보다 거리감이 있고 즉흥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기꺼이 수락 버튼을 누른 뒤 방으로 들어섰다.


 훅 치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 왁자한 소음, 눈부신 밝음에 현숙은 잠시 뒷걸음질 쳤다.

“이판식, 홍영돌, 김임만, 이삼순, 홍말자, 류영순….”

 윗담, 아랫담은 물론, 언니 오빠들의 친구거나 현숙 자신의 동기, 그리고 동생 친구들의 이름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친정 형제들까지 빠짐없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인지를 알기 위해 차근차근 올려보니 ‘홍석표 군수 만들기’ 프로젝트 실행조직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맨 위 「공지」란에 석표 얼굴이 번화한 도심의 사거리 광고 전광판처럼 번들거렸다. 올려진 글과 사진, 영상 등은 모두 석표의 근황들이었다. 회원 수가 무려 1만여 명에 이르렀으며 실시간으로 계속 들어오는 중이었다.

 현숙은 그때서야 오래전 동문회에서의 석표의 축사가 정치 선언이었음을 깨달았다.


 미친(?) 단체에 홀린 듯 걸려든 친정 형제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성난 손가락으로 형제들에게 포(!)를 발사했다.

“홍석표 군수 만들기에 언니 오빠들까지 동원되는 이유는 뭐죠?

 잠시 후, 이유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한 동네 사람인데다 후보경선에서 이기면 승률 백 프로 당이기에, 어차피 투표권이 없는 대구 사람, 동기동창의 동생이 출마하는데 모른 척할 수 없어….”


 현숙을 제외한 언니 오빠들 모두 석표의 누나와 같은 동기가 있었다. 그중 큰 언니만 영순 언니와 친했을 뿐나머지는 데면제면했다. 현숙이 더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던 건 동생이 의식되어서였고, 노파심인지 모르지만 석표가 군수로 당선되었을 때 혹시 불이익 받지나 않을까 하는 형제들의 참으로 불편한 눈치가 포착되었던 까닭이다.

 언니 오빠들 하나같이 이름만 올렸을 뿐으로, 밴드를 열지조차 않는다는 말에 일말의 위안을 얻기도 했다.


 원수 같은 인간이 일취월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는 일은 끔찍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쉬이 밴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외진 구석 고장 난 물건처럼 동생이 삐뚜름하게 서 있었던 까닭이다.

'지방선거까지 아직 일 년여가 남았는데, 이런 고문이라니….'

     


 긴 장마가 이어지던 7월 초순이었다. 몇 주째 쉬지 않고 내리는 비였지만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습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맏며느리로 집안 행사 중에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시조부모 제사가 한여름에 있어, 방학을 맞은 시댁의 조카들까지 남편의 직계 존비속이 며칠씩 묵어가는 바람에 현숙의 불쾌지수는 하늘을 찔렀다.


 정신없던 일주일여를 보내고, 손님들이 모두 떠난 아침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로 보낸 뒤 설거지도 미룬 채 소파에 풀썩 누워 기운 빠진 손으로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슬며시 잠이 들었다.

 

 꿈속처럼 아련한 소리에 눈을 뜨니 저만치 식탁 위에서 휴대폰이 울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노곤하게 녹아드는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켜 엉금엉금 기다시피 식탁으로 가는 동안 전화기가 꺼졌다. 전화기를 들고 소파로 오는 동안 발신인을 확인하니 다소 엉뚱한 사람이었다.

 초·중·고를 같이 다닌, 윗담에 살던 여자 동창으로 현숙과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긴 했지만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숙이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 친구들이 조금 어려워한 데다, 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 폭삭 내려앉은 가정에 우울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겹치는 바람에 스스로도 담을 쌓아, 친구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잘못 걸었겠거니 생각하던 중, 아니나다를까 전화가 꺼졌다.

 약 5분 후 다시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의아해하며 받았다.

“여보세요?”

“현숙이지? 너의 어머니도 많이 늙었고… 그렇게 똑똑하던 동생이 어쩌다….”

“무슨 말이고?”

“아직 안 봤구나. 석표 군수 만들기 밴드에 올라온 영상….”

황급히 전화를 끊고 밴드로 들어갔다.


 '긴 장마로 잡초들이 우거진 마당엔 무너진 장작더미와 잔 나뭇가지들... 남새밭의 웃자란 잡초...이끼로 뒤덮인 장독대...부엌에 있어야 할 그릇들이 마루를 주인인양 어지러이...마루 밑 짝 잃은 신발들의 행군...'

 머리를 세차게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진 현숙은 나가려는 의식을 붙들며 보기를 이어갔다.

 '넝마조각 같은 옷들이 빈공간마다 널려있는 속,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흑백 봉두난발의 두 생명체...'

 틀림없는 자신의 친정집이었으며 엄마와 동생이었다.

 카메라는 살뜰히 쌀 20kg 포대와 라면박스, 그리고 고단한 두 육신과 홍석표를 비추며,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친절하게 자막까지 띄운 영상을 소개하는 목소리 주인공은 고향 사람은 아닌 듯, 세련된 서울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오늘은 홍석표 전 국가○○기획실장이며 ○○당 군수 후보께서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죽마고우 이종현님을 찾아왔습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효성으로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친구를 위해 쌀과 라면을 전달하며….”

 우연히 길 가다 보지 말아야 할 무엇을 본 대가로, 푹 파인 지옥 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엄마와 동생의 웃음이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분노를 동반한 채 뇌수(腦髓)로 파고들었다.


 현숙은 밴드 운영자를 찾기까지, 영상을 내리도록 요구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열흘 전에 올라온 걸작(?)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따름이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봤다는 얘기다.

 친정형제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기가 찼다. 언니 오빠 올케들이 순번으로 시골로 드나들었기에, 집이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극적인 장면의 의도된 설정이었음을 생각하자, 제작에 관여한 자들에 대한 살의가 느껴졌다. 며칠 동안 화끈하게 방을 달구었을 걸 생각하니, 미칠 듯한 발작이 일었다.


마침내 홍석표는 군수가 되었다.  

그 후, 단 한 번도 동생을 찾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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