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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Nov 29. 2024

주홍글씨-3


 이른 아침 어머니 재봉틀 소리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바느질의 달인이었다. 아버지 살아계셨을 때 어머니는 읍에서 한복이나 포목점을 하고 싶어 했으나, 선산과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완고함에 순종하느라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출퇴근길 오토바이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주검 앞에 어머니는 피눈물의 원망을 쏟았다.

‘읍으로 가게 했으면, 읍으로 가게 놔두지, 촌구석에 갖다 놓고, 저 자슥들을 우째 키우라꼬.’


 행복은 지나온 행적의 마일리지로 피어나는 꽃, 불행은 한순간 지는 꽃이며 예측 불가, 미지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 마치 재봉틀이 천추의 한(恨)이라도 되는 듯.

- 이거 입어봐라. 니는 작아도 몸이 예뻐 옷 잘 입으면 키도 짜다라 작아보이지 않는데이….

 

 어머니는 여느 시골 사람보다 옷 입는 센스가 뛰어났다. 혜수가 어머니를 세련되고 예쁘다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근거했는지 모른다.

초록색 바탕에 하얗고 자잘한 들국화가 문양의 포플린 천으로 무릎이 덮일락 말락 한 플레어 치마를 만들어 놓았다. 마른 몸이 신경 쓰였던지 감을 넉넉히 잡아 풍성하게 했다. 옷은 잘 맞았다. 그 치마에 선볼 때 입었던 티셔츠를 걸치니 어머니가 질색했다.

- 벗어라.  뼈가 다 튀어나온다.

- 입을 게 마땅히….

- 요새 아가씨들 을매나 옷도 예쁘게 입고 다니더만, 우째 지 몸뚱아리 하나 뽄도 몬내고…. 일찍 읍에 나가 하나 사 입어라.

 혜수는 장롱을 뒤져 옛날에 입다 둔, 흰색이 바래 베이지색에 가까운 티셔츠를 입었다. 그건 더 달라붙었다.

- 더 에비 보인다. 차라리 아까 꺼 입어라!

- 사 입을게요.

혜수는 벗지 않았다.

 그런 혜수를 계속 닦달했다.

- 어째 너는 옷입는 맵시가 그러냐?

 아무래도 윗옷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동네 앞 버스 정류장에 동네 사람 여럿이 버스를 기다리며 앉거나 서 있었다. 혜수는 사람들에게 목례를 한 뒤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차를 기다렸다. 동네 사람들 눈이 부담스러워서였다. 당시 여성들의 결혼 연령은 대략 이십대 초중반이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다소 혼기가 늦기도 했지만.

 특히 혜수 고향 주변에서는 서른 살 노처녀를 재취 자리로나 거래(?)하던 시절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더러 ‘남편 잡아먹고 자식마저 병신 만들고 딸마저 제때 혼사를 시키지 못하는 세상 팔자 센 여자’라고 한다는 것을 어머니 입으로 들은 바 있었다.     


 진회색 승용차 한 대가 정류장을 저만치 지나 서 있는 혜수 앞에 섰다. 차에서 훤칠한 키의 남자가 내려 환한 웃음으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는 혜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 박종훈입니다.

 얼떨떨한 상태로 그에게 이끌려 조수석에 올랐다.


 차는 넓고 깨끗했으며 향수 냄새가 살짝 풍기는 듯했다. 콘솔 박스엔 선글라스와 책이, 뒷좌석에 자그마한 손가방이, 위에 곽 티슈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것이 방금 세차한 듯했다.

합천댐이 건설되며 ○○면에서 혜수네 동네로 통하는 직선로가 연결되었다. 혜수네 동네가 댐 바로 아래여서 모든 길은 그녀 동네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왜 이렇게 일찍, 그리고 어떻게 저를 알아보시고?

- 한눈에 들어왔어요. 미인이시잖아요!

- ‘구미호’라는 말은 들었어도.

- 설마요?

- 같이 근무하던 부장 과장이 늘 부르던…. 근데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 오늘 토요일이라, 오전에 농협 들르려구요. 그나저나 혜수 씨는 왜 이렇게 일찍?

- 어머니가 제 옷이 영 마음에 안 든다고, 남자가 홀릴 만한 것으로 사 입으라 하셔서요.

- 이미 홀렸어요.

- 그러면 안 사도 되겠군요!

 어제저녁 그의 학벌이 대변하는 수준을 생각지 않으려고 갖은 상상을 했다. 비록 후기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지적인 사람이기를 소원했다. 진한 베이지색 정장바지에 짙은 남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그의 팔뚝이 굵고 실하게 느껴졌다.     


 읍에 도착하여 농협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혜수를 기다리게 하고, 한참 만에 나왔다.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자그마한 가방을 다시 뒷좌석으로 던졌다.

- 옷 사 드려요? 제가 보기엔 오드리 헵번 같습니다만.

- 환상을 깨느니 이대로 있는 게 좋을 듯합니다.

- 연호사 잠깐 들러도 되겠죠? 어머니 심부름이 있어서요.

- 네에!

 

 군청 고개를 넘자 확 트인 황강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 합천에 명승지가 많아요, 그죠? 혹시 종교가?

- 딱히 없어요.

- 저도 무교입니다만, 부모님이 연호사에 다니시거든요, 주지스님을 뵈어야 하는데 같이 들어가시겠어요?

- 아니요, 다녀오세요.

-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 저는 여기 종일 있어라 해도 지루한 줄 모른답니다. 혼자 산책하고 있을게요.

 그가 사찰 안으로 들어가고, 혜수는 절 아래 강으로 내려와 바위에 걸터앉았다.


 은빛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이 눈부시다. 바위 아래 수심 깊은 물을 보니 의암바위에 왜장을 안고 뛰어든 논개가 떠오른다. 남자에게 배신당한 뒤 몇 번 죽음을 생각했다. 수면제 몇 알을 삼켜봤는데 죽기는커녕 머리가 조금 아픈 것뿐이었다. 목을 매는 것은 더 무서웠다.

발아래 깊은 물을 보자 금방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초면 생이 끝날 것 같다, 할까, 말까?… 열 번 세는 동안 생각해보자! 하나, 둘, 셋.’

 이 모든 건 자신을 버린 첫 사랑 때문, 그 남자를 생각하자 창자가 끊어질 듯 격한 발작이 일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열 번까지 세고 나면 강물로 뛰어내리고 말 것 같다.

‘아아, 안 돼!’


 자신이 죽고 난 뒤 어머니와 동생이 슬퍼할 걸 생각하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를 길 없었다. ‘꺼억 꺼억’ 소리 내어 울며 현장을 벗어났다. 남자에게 우는 모습 들키는 모양새 또한 코미디일 터였다.

 빠른 걸음으로 읍내로 들어서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마땅히 갈 데가 떠오르지 않아 길가 화단 앞에 앉았다. 대구도, 시골도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눈물은 어느새 가슴골을 타고 내려 치마까지 적셨다. 치마를 보자 또다시 미친 듯한 연민이 일었다.

‘엄마!’

 속에 있는 눈물을 탈수기로 짜듯 휘발시킨 다음 겨우 진정을 하고, 연호사로 되돌아갔다.     

 남자가 그녀를 죽었던 사람 돌아오듯 반겼다.

- 퇴짜 맞은 줄 알았어요.

- ….

- 미안해요, 제가 너무 늦게 나왔죠? 스님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 아뇨, 혹시 옷을 사야하나 생각하다가...

- 에이이 말씀드렸잖아요. 오드리햅보다 더 예쁘다구요.

- 남이 해주는 칭찬은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긴 합니다. 흐흐


 차는 진주 방향으로 달리는 듯하더니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산청 쪽으로 빠졌다.

- 어어? 진주 가시는 거 아니에요?

- 운전사 마음입니다.

- 어디 가는지는 알아야.

- 지리산 쪽에 아름다운 계곡이 있어요. 가족과 함께 간 적이 있는데 주변 경관에 반해 애인 생기면 꼭 같이 오리라 생각했어요.

- 계곡, 계곡, 계곡이라.

 스멀스멀 스미는 불안을 어쩌지 못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끝도 없이 들어간다. 남자가 어쩌면 작정하고 왔는지 모른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차의 엔진 소리를 눌렀다. 뛰어내려야 하나, 밖을 내다보니 아슬아슬한 절벽 길이었다.

‘여자는 버드나무 팔자여서 어느 땅에 꽂히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잘 살고 몬살고는 다 지 복인기라, 순옥이 봐라, 어느 남자라도 자슥 낳고 살면 정(情)들기 마련인기라.’

 어머니의 말이 쟁쟁하게 울리며 반 체념 상태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자신을 버린 남자보다 더 여유 있는 삶을 제공할지 모른다.


 점심시간이 조금 넘어 차는 ‘닭백숙’이라는 자그마한 간판이 달린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혜수를 밖에 있게 하고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하고 나왔다. 메뉴는 한 종류라 선택의 여지가 없단다. 식사는 원두막으로 갖다 준다고 했다.


 혜수는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고 마음도 누그러졌다. 요소요소마다 돗자리 깐 소수 또는 다수 집단들이, 군데군데 서 있는 원두막이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던 것이다. 연호사에서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게 자신의 운명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저기 폭포수 물 떨어지는 거 봐요, 경치 아름답죠?

- 그러게요. 황진이 서경덕이 놀다 간 자리 같군요.

- 그 두 사람 이름 들어봤는데, 혹시 독립운동한 뭐어 그런 사람들이죠?

- 저도 독립운동은 안 해봐서요, 아름다운 연애를 했던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밀당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나가면 틈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제공했던 커플 같아요.

- 역시! 공부도 연애로 접근하니 재미있군요.


 함께 걷던 혜수가 남자더러 먼저 가라 이르고 식당으로 돌아와 화장실을 들렀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어느 원두막을 가리키며 ‘우리 자리’라고 사인을 해줬다. 손을 들어 알았다는 표시를 하자 남자는 원두막을 지나 물가로 갔다.

 

 원두막에 이른 혜수는 지저분한 내부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있었는지 어지러운 물건들로 가득했다. 크나큰 재떨이에 공깃밥처럼 수북하게 담배꽁초가 쌓여 있고, 목침, 부채, 수건인지 마른 걸레인지가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 큰 판이 벌어졌던 듯 둘둘 말린 담요 사이 화투장 몇 개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인해 청소를 못한 듯했다.

 그곳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니,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냄새 나는 재떨이 먼저 비워야 할 것 같아 구두를 벗은 채 그것을 들고 남자 앉은 물가로 갔다.

- 에이, 뭘 청소한다고 그러세요?

- 재떨이라도 비우게요.

- 발이 예쁘군요.

- 제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신발을 잘 벗지 않거든요. 높은 구두로 그나마 유지하던 키가 푹 꺼져서요.

- 섭섭한데요. 첫날은 엄청 작아보였는데 지금은 저보다 더 커 보여요.

- 역시! 사람의 키는 내면의 깊이와 합쳐지기 마련, 제 내장 중 간댕이가 좀 큰 편인데 그게 아마 키에 반영됐을 거예요.

- 킄킄킄킄, 저는 지금껏 혜수 씨처럼 키가 큰 여성을 보지 못했어요.

- 에이, 또 막 나가신다.

- 그나저나 키가 얼마예요?

- 152.5센티미터거든요. 돈 계산할 때 소수점은 반올림을 하잖아요. 남녀 간 상거래 흥정 중이니 153센티미터로 상품 출시해도 되죠?

- 국가 기밀로 유지하겠습니다.

- 사실 이 비밀 털어놓은 사람이 처음이에요. 이제 우리 한편 먹은 깐부예요.

- 푸하하하, 하하하하.

- 이제 제가 질문 드려도 되나요?

- 처음 만날 날도 저에게 아무 질문을 하지 않아 서운했어요. 관심이 있으면 묻는 게 인지상정인데 말이죠.

- 나이, 키, 몸무게, 직업을 순서대로 나열하시오!

- 그날 어머니께 다 들었다 하지 않았어요? 설마 제 나이도 직업도 몰랐단 말이에요? 서운합니다.

- 형님과 누나들 판사, 의사, 교사 등이라고만, 정작 당사자에 대해선 모르시더라구요.

- 혜수씨가 그런 조건에 휘둘릴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요.

- 퍼뜩 계산기를 두들겼죠. 결혼해서 대학 가면 되겠구나!

- 부라보! 저 내년에 대구시 D대학 들어가려고 해요. 지금 짓고 있는 중이라 특정 학과를 제외, 미달학과가 많을 거라 들었어요. 예비고사만 치르면 무조건 뽑아준다고.

- 공부하기 싫다는 분이 굳이 대학에?

- 공부 못한다고 꿈도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저는 장차 정치가가 될 거예요. 부모님과 형제들이 대학 감투는 써야 유권자들에게 말발 먹힌다고, 우리 결혼해서 같이 대학 갑시다!

- 제 주변 남자들 하나같이 뜬구름을 잡는 것 같죠? 얼마 전까지 만나다 채인 놈이 있는데 유학 간다면서 절더러 벌어놓은 돈 얼마 있냐고, 없다고 하자 미련 없이 가버려….

- 아이 그 XX! 장담하건대 ‘그 XX’ 성공하면 제 손에 장 지질게요. 남자 새끼가 쪼잔하게 여자한테 돈 달란 말을?

- ‘그놈’ 정도로 순화하시죠. 아무리 안 듣는 데지만.

- 아직 ‘그놈’을 마음에 두고 있나요?

- 저 싫다고 간 사람 굳이, 나머지 질문에 답해주셔야죠.

- 나이 혜수씨에 더하기 2를 하면 되구요, 키 177, 몸무게 77, 직업은 현재 형님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내년에 대학에 들어갈 테니 곧 백수 되겠군요.

- 그럼 뭐 먹고 살죠?

- 부모님도 저의 대학 진학을 강력히 원하시니, 빨대 꽂아야죠.

- 한 컵에 빨대 두 개 꽂고 마셔도 될까요?

- Sure why not! 제가 아는 유일하게 긴 영어 문장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예요.

- 이렇게 감동적인 영어는 제 생전 처음이에요.

- 혜수씨! 사랑스러운 분이에요.

 혜수는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가까워 얼른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 가서 청소 마저 해야겠어요.

- 밀치고 그냥 먹읍시다. 청소하며 저도 버릴 것 같아, 밥 오면 불러주세요.


 흐르는 물에 재떨이를 닦고 돌아온 혜수는 원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담요를 펼치고 안에 있던 화투를 정리하여 곽에 넣은 다음 개켜 한쪽으로 치운 뒤 목침과 부채 등도 구석으로 몰아 두었다. 마른 수건인지 걸레 옆 낡은 옷이 보였다. 들고 보니 얇은 여름 점퍼였다. 낡고 너덜너덜한 것으로 보아 놀던 사람이 일부러 버리고 간 것으로 짐작되었다. 혹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구석에 둘 요량으로 개키던 중 주머니에서 묵직한 무엇이 느껴졌다.

- 어머! 어어, 허억!

만 원짜리 지폐가 빽빽하게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저 사람에게 얘기를 할까, 식당 주인에게 해야 하나? 아니면….’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동안 식사가 왔다. 일단 점퍼를 돌돌 말아 담요와 목침 사이 숨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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