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1화

실직-1


1

화창한 사월의 일요일 아침은 눈부셨다.

 이른 아침부터 연희는 김밥을 싸느라 분주했다. 모처럼 두 아들을 데리고 가족나들이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들 또한 벌써부터 일어나 신이 나 방과 거실을 오가며 잔뜩 들떠 있었다.

-엄마, 우리 몇 시에 출발해?

 기쁨에 찬 첫째아들 재현의 목소리였다.

-글쎄, 아빠가 일어나는 시간에 달렸겠지? 빨리 가고 싶으면 아빠 깨워.

 형의 아빠 깨우는 소리에 언제 일어났는지 둘째 아들 성현이 아빠 곁으로 다가가 몸을 부비는 듯했다.

 흐뭇한 기분으로 연희는 김밥과 아침상을 준비했다.

-밥 먹자! 얘들아, 빨리 오고, 아빠도 오시라고 해.

-아빠 인나, 인나.

-엄마, 아빠는 아딕 자고 있떠, 눈 안 떠.

-아냐, 일어나긴 아까 일어났어, 눈 뜨고 있어.

 재현과 성현이 흥분된 들뜬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분명히 눈 떴었는데 다시 자는 척해.

-여보, 빨리 일어나! 밥 먹고 얼른 가서 그늘 좋은 자리 잡아야….

-엄마 우리 놀이공원 갈 거예요? 어린이 대공원을 옛날에 한 번가봤는데. 호랑이도 있고 사자도 있어.

-엄마, 왜 형만 데리고 다녀? 나는 한 번도 그런데 가본 적이 없어.

-이 아보야, 넌 태어나지 않았잖아.

-엄마, 왜 나를 형보다 먼저 낳지 않았어?

-세상에 나오는 순서는 신(神)이 점지해주시는 거라. 엄마 아빠도 어쩔 수 없었어. 특별한 사고나 병이 없으면 온 순서대로 가는 거, 지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비슷해.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나보다 늦게 죽는다는 말이잖아.

-어어? 내가 죽는다고?

-당연하지, 엄마 아빠 나도 죽어, 너도 죽고.

-아니야, 난 엄마 아빠와 형과 함께 살 거야. 죽지 않고…으으어어엉엉….

-재현아. 어린 동생 붙들고 무슨 말을 하니?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연희가 성현의 울음소리를 듣고 비로소 아들들의 대화를 참견했다.

 성현은 쉬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여보! 나와서 성현이 좀 달래 줘. 지금 둘이 철학을 논하다. 죽음을 걱정하고 저리 우네.

-….

 연희가 안방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남편 현우를 불렀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여보! 일어나! 아이들도 좀 씻기고….

-….

 성현의 울음소리가 좀체 멎을 생각을 하지 않는데도 방안에선 기척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연희가 김밥 싸던 위생 장갑을 벗고 성현에게 다가가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엄마, 형이 말한 게 정말이야? 엄마도 아빠도 형도, 우리 모두 죽어?

-흐흐흐흐, 그건 네가 알기엔 너무 일러. 차차 알게 되지. 하지만 꼭 두려운 일만은 아니야. 약 백 년 동안 세상에 머무르며, 자신 에너지 용량 최대치를 사용하다보면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연스럽게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게 되거든. 빨갛고 노란 단풍잎 아름답지?

-응.

-거봐. 인생도 그런 거란다.

-….


 성현이 겨우 울음을 그치긴 했지만, 둘 다 조용하다.

 연희는 자신의 어린 시절 최초로 죽음에 대해 듣게 된 때의 두려움을 기억해내고는, 두 아들의 감정 상태를 이해했다. 누구나 한번은 접해야 하며 겪게 될 일이었으므로. 애들이 어리다고 거짓말로 에두르거나 모면하거나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자초할 뿐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 돌직구로 설명했다. 삶에 올인하다 보면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삶이란 한바탕 축제, 그 축제에 합류하다보면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자신의 살아온 궤적이며 경험이다. 오는 대로 맞이하면 될 일이기에.

 조금 전까지 수런거리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집안에 적막이 감도는 듯했다.

 분위기를 반전을 위해 연희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일어나! 쟤들이 지금 철학 속에 빠져있거든, 당신이 현실 세계로 끌어올려 줘야겠어.

-….

-왜 그래?

-당신 혼자 애들 데리고 놀다 오면 안 되겠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안해, 좀 그렇게 해줘, 부탁이야….

-진짜 웃긴다.

 현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날선 감정을 세웠다.

-성현이 불쌍하지도 않아? 걔가 무슨 죄인이야, 집안에만 숨겨놓게? 지금까지야 사느라 못 갔다 치자, 이제는 살만하다 뿐이야, 남들이 다 우릴 부러워하는 수준이야. 제발 더 이상 옹색하게 굴지 마! 인생 그렇게 긴 것 아니야, 어머니를 보고도 그래?

-거기서 우리 어머니가 왜 나와?

-모르는 것 같아서, 힌트 줄려고.

-말 다했어?

-아니, 할 말 많아.

-그만 하지!

 조금 전까지 깊은 심연 속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 안방으로 들어오며 엄마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또 다른 두려움의 표정들이다.

-아빠! 설마 이번에도 안가는 건 아니지?

 재현이 아빠 옆에 안겨들며 재우치자, 현우가 몸을 움직이며 관성적 몸놀림으로 아들을 안았다.

-아빠 실망이야, 늘 이래.

-국내 굴지의 대기업 수석팀장, 연봉만으로도 우리는 상류층이야. 미국에서 귀국한 뒤 잠깐 흔들렸지만 우여곡절 끝 대출받아 산 이집이 몇 배나 뛰었어? 충분히 놀 형편 되고 자격도 있어!

-그냥 오늘 당신이 애들 데리고 다녀와 미안해!

-아무리 효자라지만, 제 자식 내 팽개치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하는 게 정상일까?

-그게 아니야!

-누가 모를 줄 알아? 당신 속을 훤히 꿰뚫거든.

-마음대로 생각해.

-….

 

남편을 이해하다가도 가끔 숨이 턱 막힐 만큼 답답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경우다, 물론 겨우 허리 펼 만할 때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연희에게도 슬프고 가슴미어지는 일이었다. 첫아들 재현을 3년간 키워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목이 멜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빠 밥 먹으라고 해.

남편을 단념하고 혼자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기로 마음먹었지만, 현우에 대한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아 날선 목소리로 안방을 향해 포를 날렸다.

 그때서야 현우는 구부정한 허리로 거실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식탁에 앉은 남편을 본척만척, 밥과 국을 ‘탁!’ 소리 나게 놓고는 일어서 아이스박스에 김밥, 과일 등을 채우느라 연희는 다시 부산하게 움직였다.      

-아빠, 진짜 놀러 안 갈 거야?

 아침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컴퓨터에 앉은 남편에게 재현이 다가갔다.

-응, 아빠가 바쁜 일이 있어, 다음엔 꼭 같이 갈게, 오늘은 엄마하고 다녀와, 알았지?

 현우는 재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허얼! 아빤 만날 이래.

-아빠, 아빠 같이 가아….

 성현이까지 남편에게 달려들며 떼를 쓰는 듯했지만 그의 몸은 컴퓨터와 한 몸인 듯 요지부동이다.

-진짜 안 갈 거야?

 연희의 앙칼진 음성이 그의 귀청을 때렸다.

-미안해….

 차갑고 쌀쌀 맞은 표정을 뒤로한 채 연희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둘째 태어난 이후 한 번도 가족끼리 나들이하거나 야유회 가본 적이 없어. 가까운 놀이공원에라도 다녀오면 안 돼?”

  “그래, 한 번 다녀오자!”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정확히 들었어. 가자! 오케이! 예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 이 봄마저 그냥 보내면 나 혼자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미사리라도 다녀오려고 했거든.”

 연희의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나비가 하늘거리듯 몸놀림이 경쾌하고 가벼웠었다.

 “얘들아, 아빠가 놀이공원에 가신대.”

 “우와! 진짜? 아빠, 거짓말 아니지? 언제?”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 또한 집안을 메웠었다.

 자신 입으로 가겠다고 약속한 날이 바로 오늘, 쉼 없이 돌아가던 쳇바퀴 속에서 튕겨져 나오기 전이었다.

 


 2

성현은 어머니 돌아가신 날로부터 정확히 10개월 만에 태어났다. 60세 되자마자 번개처럼 사라지신 어머니로 인해 집안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지 약 2개월 후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현우는 아버지는 물론 형제들에게까지 민망하도 눈치가 보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비롯, 형제들에게 눈치가 보여서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짓(?)을 했다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상관없이 성현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새 생명이 불러들이는 기운은 놀라웠다. 겨우내 땅속에 움츠렸던 생명체들의 응집된 생명력,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그 힘의 기운이 집안으로 다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집안 분위기는 봄기운처럼 푸릇하고 싱싱했으며 기쁨과 행복이 넘쳐흘렀다. 행복의 기운이 샘물처럼 솟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문득 현우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행복 같아서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둘째는 백일은 물론 돌잔치도 생략한 채 틀 속에 가두고 살아온 터였다.

어머니와 둘째 성현은 별개의 우주였다. 비단 둘째만이 아니었다. 첫째 재현에겐 더 미안했다. 태어나자마자 급류에 휩쓸리듯, 파란만장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일 년 365일이야, 채 하루도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나도 노는 거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아? 해외여행도 휴가 때마다 다녀오는 사람이 있는데….”   연희는 최근 들어 저 소리를 달고 살았다.

 “알았어, 멀리는 못 가고 가까운 미사리라도 다녀오자!”

 “당신 그때 가서 오리발 내밀면 곤란해.”

 “약속할게. 교수되기 위해 논문 쓰느라 시간을 내지 못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

 “….”

 

둘째 성현이 태어나기 전 친하게 지내는 현우 친구 세 명의 가족들과 미사리로 가족소풍을 다녀온 적 있었다. 돗자리 펴고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자전거도 태워주고 배드민턴을 치며 놀았다. 한국에서의 결혼생활 동안 가족이 함께 한 유일한, 현우의 뇌리에 좋은 기억으로 미사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내 뿐 아니라 두 아들에 대한 미안함에 선뜻 약속해마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두 아들 모두 세상 밖으로 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집안, 공기와 먼지조차 움직임을 멈춘 듯 교교하고 적막하다.

 어제 일어난 일이 마치 꿈같다. 출근하자마자 벌어진 일들이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련하다 못해 아리송하다. 스스로 숨을 쉬고 있는지 의식하기 위해 호흡을 멈춰보았다. 1초 2초 3초…, 채 1분도 안 돼 호흡이 가쁘다. 틀림없이 살아있는 현세다.


 불끈 쥔 두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자신에 대해 참을 수 없음 때문이다. 소장의 ‘아구통’이라도 날리고 나왔더라면, 하다못해 멱살이라도 한 번 잡고 흔들었다면 이렇게 분하고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로 믿기지 않을 때 젊은 직원들이 ‘이거 실화냐?’ 라고 하더니 딱 그 상황이었다.   

  

 출근하자마자 퇴직 권고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발길 한 곳이 공원이었다. 깊숙한 가장자리 로 파고들어 몸을 가린 채 분분이 날리는 꽃잎에 시선을 두었다. 하얀 꽃잎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지 분간조차 어려웠다.


 그 시간의 공원은 현우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였다. 이른 아침이나 퇴근 후 잠시 짬을 내 운동을 하거나 주말 오후시간대 아이들을 데리고 와 본 게 다였다. 그의 뇌리 속에 각인된 생기 있고 발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모차 밀고 가는 아기 엄마, 다리를 절며 걷는 사람, 칠십대 후반이나 팔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걷는 할머니 등이 다였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바삐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간혹 눈에 띄기도 했다. 어디에도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자신과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 일정한 질서로 움직이는 우주의 톱니바퀴 속에 그 역시 속해 있었다. 회사에선 대기업 연구실 부장으로, 연구원 스무여 명을 거느린 수석 팀장으로, 집안에선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들의 아빠로, 꽉 맞물린 채 돌아가고 있었다. 그 관성의 움직임이 동작 그만한 채, 거기 고정된 벤치에 묶여 있었다.

 -이부장님, 회사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달 안으로 부장과 과장 몇 명 정리하라 하니 저로서도 참, 그래도 가장 유능한 이부장님께서 총대를 메는 게, 게다가 사모님께서 미용실을 하신다니 외벌이가 아니라 그나마 좀 다행스럽기도….

 아침 출근하자마자 연구소장실로 불려가 소장에게 몇 마디 듣고 짐 싸서 집으로 오기까지 단 세 시간 만에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현우 팀에서 특허를 내고 개발한 제품이 시중에서 큰 히트를 치고 팀원 전원에게 두둑한 성과금과 휴가까지 주어지자 연구소장은 심한 질투를 하는 듯했다. 그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트집 잡으며 시비를 걸었다. 팀원 중 고과가 조금 낮은 신입직원이 있었다. 소장은 걸핏하면 그 직원을 해고하라며 압력을 넣었던 것이다. 현우가 그 직원의 개인사정을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현우는 그 직원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입사 초년생으로 가정적 불행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현우가 소장에게 반기를 들 수 있었던 배경은, 연구소 내에서 가장 우수한 수석팀장으로 회사 매출을 올려주는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소장은 공개석상에서 더더욱 현우를 비판하며 눈엣가시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소장을 경쟁상대로 여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분위기 속에서 차기 연구소장으로 현우가 물망에 올랐다.

소장은 본격적으로 악마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말 산행 참여해라, 회식 3차 빠지지 마라, 골프대회에 참여해라….’

 자율적인 여가까지 참견하며 골프를 하지 않는 현우를 대놓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골프채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그에게 대회에 참여하라는 건 유치찬란한 억지였다.

-이부장님은 참 좋겠어요, 부인이 미용실을 운영하시니, 원래 미용사 남편은 ‘셔터맨’이라고도 하잖아요, 셔터만 열고 닫아도 먹고 산다는 얘기 아니에요? 교사 월급은 유리 지갑, 이것 떼고 저것 떼면 몇 푼 되지 않아,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애들 밥 다 해먹이고 출근 하는 것 보면 안쓰럽고, 남편이 못나 그런가 싶어 미안하고….     


 현우가 회사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주말 집에서 쉬고 있는 동안 소장(당시는 소장이 아니었다)이 그의 집 근처에 왔다며 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 당황하며 서둘러 옷을 걸치고 나가니 바로 집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아내 연희가 일하는 미용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후 소장은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주 ‘이부장 부인이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추켜(?)세웠다. 그때 아내를 인사시켰는데, 그것이 그토록 소장에게 기쁜 일이 될 줄 몰랐다.

 연희는 허름한 건물 한쪽 귀퉁이 구석진 자리에서 보조미용사 한 명 데리고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초라한 쪽에 가까웠다. 동갑내기 그들 부 나이 마흔 넘어 낳은 늦둥이 키우며 쉬엄쉬엄 생활비나 버는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것이다.

 걸핏하면 ‘미용실 운영’이라는 문구를 사용해가며 아내 직업을 들먹이니…, 처음 민망하더니 갈수록 무덤덤해졌다.

-우리 한번 단체로 예약 잡아 이부장 사모님 미용실에서 헤어스타일 확 바꿔 보는 거 어때요?

 

자신의 아내가 교사라는 것을 강조할 자리에선 언제나 아내 연희를 조미료로 삼았다. 미용사와 교사를 비교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려 든다는 걸 눈치 못 챌 현우가 아니었다.

 그의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여 오히려 연민이 일었다. 얼마 못가 그의 명줄이 다할 것 같아 딱하기까지 했다.

 얼마 전, 소장이 현우를 조용히 불렀다.  

-이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나가면 해먹고 살 게 없어요, 아직 아이들이 한창 공부하고 있고….

-무슨 말씀이신지?

 현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소장의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회의석상에서 현우가 그 점을 콕 집어 지적했는데 소장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사장단에게 보고되기 전 그 책임을 현우가 떠안아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교활하고 얍삽한 인간에게 도리어 허를 찔리고 만 것이다. 사장을 직접 만나 소장의 비리를 낱낱이 까발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곧 생각을 거두었다. 승자는 결과로 말한다. 전장에서 패한 자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나저나 뭘 해야 하나? SCI(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에 논문이 추가로 실린 것 있는데 교수 자리 다시 찾아볼까?”

 탄식 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쪽은 이미 물 건너 간 지 오래였다. 서울시내 4년제 대학이란 대학은 거의 지원을 했던 터였다. 대부분 총장 면담까지 올라갔다. 총장 면담까지 2명의 후보가 오르고 그중 1명이 낙점된다. 딱 그 지점에서, 일부 사립대학에서 돈을 요구했다. 억 단위였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제 그에게 일어나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D 대학 총장 면담 일주일을 앞둔 날이었다. 학과장이라는 사람이 현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박사님과 식사나 하면서 좋은 말씀 나눌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현우는 기꺼이 약속에 응했다. 총장면접의 워밍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면접 준비를 했다.      

 학과장과의 약속일, 시내의 고급 한정식당으로 갔다.

 널찍한 방에 4인용 테이블 한 개가 놓여있는, 밀실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유난히 머리가 번들거리는 중년 남자와 건장한 젊은 남자 두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중년 남자가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학과장, 옆에 있는 남자를 행정실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박사님 이력서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논문도 훌륭하시고, 산업현장에서의 경험까지, 학생들을 지도하시는데 이만한 경쟁력 갖춘 분을 찾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대학에 와 주신다면 학교로서도 영광일 것입니다.

-과찬이십니다.

 현우는 거듭되는 학과장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엉덩이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저희 사학의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예상 하시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딱 잘라 O억, 이박사님이 워낙 출중한 분이시라 저희가 최소 금액으로…, 준비 되시면 바로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

-이 집은 이 탕 맛이 일품이에요, 국물이 워낙 시원해서 술을 어지간히 마셔도 이 탕과 같이 마시고 나면 다음날 거뜬하더군요, 이박사님, 국물 한번 쭉~ 들이켜 보십시오, 아마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실 겁니다. 안 그래요 실장님?

-아, 네네, 저도 정말 맛있습니다.

 학과장의 말에 대답은커녕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숟가락질만 하고 있는 현우의 침묵에 그는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옆에 앉은 행정실장이라는 자에게 공허한 웃음을 날리며 애써 무안함을 달래는 듯했다.

-이박사님께서는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3년 만에 받으셨더군요. 누가 들으면 혹시 돈 주고 산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겠어요, 하하하하… SCI 논문이 어떻게 3년 동안 7편이나 나올 수 있는지… 히야! 진짜 대단하신…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그런 논문은 돈 주고도 살 수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런 걸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아마 부자들이 좋은 자리 차지해 버리고, 가난한 사람은 평생 교수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터, 하하하하….

 딸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만이 정적을 깨웠다.      

 학과장은 현우의 침묵이 견딜 수 없었던지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나갔다. 중간 중간 말이 끊기는 자리엔 입을 크게 벌린 채 썩은(?) 미소로 어색한 침묵의 공간을 메웠다.

-….

 어차피 깨진 그릇, 현우는 침묵이 사람에게 얼마나 가학적일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에에, 으흠, 음, 으흠…, 혹시, 저희 학교에 뜻이 없으신 건 아니신지?

 긴 침묵을 깬 이는 역시 학과장이었다.

-….

-그럼 이만 여기서, 저희완 인연이 아닌 걸로….

 그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가려는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예에, 물론 뜻이 없습니다. 당연히 없고 말구요, 이 대학이 이렇게 교수장사해서 이만큼 커진 건가요? 저는 돈도 없거니와 설사 돈이 있다고 해도 이런 썩어빠진 대학에는 갈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돈을 내고 교수가 되었다 칩시다, 떳떳치 못한 인간으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현우의 발언에 학과장과 행정실장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지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네에, 그렇군요…, 저희완 인연이 아닌 걸로….


 그들은 다시 눈짓을 주고받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채비를 했다.

-오늘 저와 하신 얘기는 다 녹음이 되어있습니다. 제가 몇 번 당했거든요. 그래서 이 대학도 그런가 하고 준비를 해 왔지요. 운 나쁘게 걸린 것이 좀 안타깝긴 하지만 저도 당한만큼 어딘가는 풀어야 하겠기에…, 이 사실을 언론에 퍼뜨리겠습니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따위 수작을 부려?

 행정실장이라는 자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현우를 바닥에 자빠뜨리며 목을 짓눌렀다.

-교수님, 이 새끼 주머니 뒤져 녹음기 꺼내십시오!

 학과장이라는 자가 허둥대며 현우의 양복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있는 건 펜과 수첩, 핸드폰, 지갑이 다였다.

-교수님이 이 새끼 팔을 좀 잡고 계십시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그들은 역할을 바꿨다.

-그 정도로 악질은 아닌 것 같은데….

-아뇨,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에요, 분명 어딘가 숨겼을 거예요.

 행정실장이란 자가 현우를 붙들고, 학과장이 그의 몸을 수색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행정실장이 경고를 날렸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너 정도 이 사회에서 매장하는 거 어렵지 않아. 가족들 잘 챙기고, 밤길 조심 해!

 애초 녹음기 같은 건 없었다. 몇 번 그런 제의를 받고 보니 독이 오를 대로 올랐던 것이  그날 폭발했을 따름이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모욕과 수모를 당하고, 가족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굴복해서가 아니었다.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알아? 이미 네 소문이 쫙 돌았어….’

 대학교수로 있는 선배들과 친구들의 진심어린 충고도 작용했지만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돈을 요구한 대학은 일부였지 다 그렇진 않았으므로.  

    

 현우는 회사 들어가면서부터 평생 그곳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마음 한구석 늘 다른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에 그쳤을 뿐 어떤 시도도 해보지 못했던 건 제 시간에 퇴근 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주말도 집에 편히 있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단합 목적인 산행, 체육대회, 골프대회 등, 무수히 많은 대회를 만들어 사람을 옭아맸다. 골프를 치지 않은 이유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늘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에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확성기 소리, 어린아이들 함성,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등으로 삽시간에 공원이 분주해졌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어린들이 떼 지어 그를 스친다.

 물끄러미 그들을 보노라니 두 아들 생각이 났다. 아직 초등학교, 유치원도 졸업하지 못했다.

 분분이 날리는 하얀 꽃잎이 강한 절망의 색깔로 그를 에워쌌다.

-이현우! 너 나이 마흔 다섯, 이제 뭐 해먹고 살래?

이전 01화 계곡이 깊은 만큼 산이 높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