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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2화

실직-2


 “그나저나 뭘 해야 하나? SCI(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에 논문이 추가로 실린 것 있는데 교수 자리 다시 찾아볼까?”

 탄식 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쪽은 이미 물 건너 간 지 오래였다. 서울시내 4년제 대학이란 대학은 거의 지원을 했던 터였다. 대부분 총장 면담까지 올라갔다. 총장 면담까지 2명의 후보가 오르고 그중 1명이 낙점된다. 딱 그 지점에서, 일부 사립대학에서 돈을 요구했다. 억 단위였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제 그에게 일어나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D 대학 총장 면담 일주일을 앞둔 날이었다. 학과장이라는 사람이 현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박사님과 식사나 하면서 좋은 말씀 나눌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현우는 기꺼이 약속에 응했다. 총장면접의 워밍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면접 준비를 했다.      

 학과장과의 약속일, 시내의 고급 한정식당으로 갔다. 


 널찍한 방에 4인용 테이블 한 개가 놓여있는, 밀실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유난히 머리가 번들거리는 중년 남자와 건장한 젊은 남자 두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중년 남자가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학과장, 옆에 있는 남자를 행정실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박사님 이력서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논문도 훌륭하시고, 산업현장에서의 경험까지, 학생들을 지도하시는데 이만한 경쟁력 갖춘 분을 찾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대학에 와 주신다면 학교로서도 영광일 것입니다.

-과찬이십니다.

 현우는 거듭되는 학과장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엉덩이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저희 사학의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예상 하시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딱 잘라 O억, 이박사님이 워낙 출중한 분이시라 저희가 최소 금액으로…, 준비 되시면 바로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


-이 집은 이 탕 맛이 일품이에요, 국물이 워낙 시원해서 술을 어지간히 마셔도 이 탕과 같이 마시고 나면 다음날 거뜬하더군요, 이박사님, 국물 한번 쭉~ 들이켜 보십시오, 아마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실 겁니다. 안 그래요 실장님?

-아, 네네, 저도 정말 맛있습니다.


 학과장의 말에 대답은커녕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숟가락질만 하고 있는 현우의 침묵에 그는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옆에 앉은 행정실장이라는 자에게 공허한 웃음을 날리며 애써 무안함을 달래는 듯했다. 

-이박사님께서는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3년 만에 받으셨더군요. 누가 들으면 혹시 돈 주고 산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겠어요, 하하하하… SCI 논문이 어떻게 3년 동안 7편이나 나올 수 있는지… 히야! 진짜 대단하신…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그런 논문은 돈 주고도 살 수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런 걸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아마 부자들이 좋은 자리 차지해 버리고, 가난한 사람은 평생 교수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터, 하하하하….


 딸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만이 정적을 깨웠다.      

 학과장은 현우의 침묵이 견딜 수 없었던지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나갔다. 중간 중간 말이 끊기는 자리엔 입을 크게 벌린 채 썩은(?) 미소로 어색한 침묵의 공간을 메웠다. 

-….

 어차피 깨진 그릇, 현우는 침묵이 사람에게 얼마나 가학적일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에에, 으흠, 음, 으흠…, 혹시, 저희 학교에 뜻이 없으신 건 아니신지?

 긴 침묵을 깬 이는 역시 학과장이었다. 

-….

-그럼 이만 여기서, 저희완 인연이 아닌 걸로….


 그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가려는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예에, 물론 뜻이 없습니다. 당연히 없고 말구요, 이 대학이 이렇게 교수장사해서 이만큼 커진 건가요? 저는 돈도 없거니와 설사 돈이 있다고 해도 이런 썩어빠진 대학에는 갈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돈을 내고 교수가 되었다 칩시다, 떳떳치 못한 인간으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현우의 발언에 학과장과 행정실장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지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네에, 그렇군요…, 저희완 인연이 아닌 걸로….


 그들이 다시 눈짓을 주고받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채비를 했다.

-오늘 저와 하신 얘기는 다 녹음이 되어있습니다. 제가 몇 번 당했거든요. 그래서 이 대학도 그런가 하고 준비를 해 왔지요. 운 나쁘게 걸린 것이 좀 안타깝긴 하지만 저도 당한만큼 어딘가는 풀어야 하겠기에…, 이 사실을 언론에 퍼뜨리겠습니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따위 수작을 부려?

 행정실장이라는 자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현우를 바닥에 자빠뜨리며 목을 짓눌렀다.

-교수님, 이 새끼 주머니 뒤져 녹음기 꺼내십시오!

 학과장이라는 자가 허둥대며 현우의 양복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있는 건 펜과 수첩, 핸드폰, 지갑이 다였다. 

-교수님이 이 새끼 팔을 좀 잡고 계십시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그들은 역할을 바꿨다. 

-그 정도로 악질은 아닌 것 같은데….

-아뇨,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에요, 분명 어딘가 숨겼을 거예요.

 행정실장이란 자가 현우를 붙들고, 학과장이 그의 몸을 수색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행정실장이 경고를 날렸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너 정도 이 사회에서 매장하는 거 어렵지 않아. 가족들 잘 챙기고, 밤길 조심 해!

 애초 녹음기 같은 건 없었다. 몇 번 그런 제의를 받고 보니 독이 오를 대로 올랐던 것이  그날 폭발했을 따름이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모욕과 수모를 당하고, 가족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굴복해서가 아니었다.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알아? 이미 네 소문이 쫙 돌았어….’

 대학교수로 있는 선배들과 친구들의 진심어린 충고도 작용했지만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돈을 요구한 대학은 일부였지 다 그렇진 않았으므로.    

  

 현우는 회사 들어가면서부터 평생 그곳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마음 한구석 늘 다른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에 그쳤을 뿐 어떤 시도도 해보지 못했던 건 제 시간에 퇴근 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주말도 집에 편히 있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단합 목적인 산행, 체육대회, 골프대회 등, 무수히 많은 대회를 만들어 사람을 옭아맸다. 골프를 치지 않은 이유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늘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에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확성기 소리, 어린아이들 함성,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등으로 삽시간에 공원이 분주해졌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어린들이 떼 지어 그를 스친다. 

 물끄러미 그들을 보노라니 두 아들 생각이 났다. 아직 초등학교, 유치원도 졸업하지 못했다. 

 분분이 날리는 하얀 꽃잎이 강한 절망의 색깔로 그를 에워쌌다.

-이현우! 너 나이 마흔 다섯, 이제 뭐 해먹고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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