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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3화

미사리-1

 


돌아온 월요일이었다. 차를 몰고 가다 절벽 앞에 급브레이크 한 듯, 갑자기 길이 끊어진 느낌이다. 꿈처럼 길이 사라졌다. 

 그래도 어딘가로는 나가야 할 것 같아, 옷을 걸치며 연희에게 던지듯 말을 뱉었다. 

-오늘 차 가지고 갈 거야.


 현관문을 나서는 그를 연희는 본체만체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일요일부터 지금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지만 가끔 차가 필요한 날이면 미리 말을 해 줘야 한다. 둘째 어린이 집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병원을 가는 등, 차를 이용할 일이 연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 집은 주차장이 따로 없었다. 집 주변 도로가 넓고 땅 여유분도 있어 굳이 주차를 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1층 상가 세입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3개월에 12만 원 지불하는 거주자우선주차를 이용하고 있다. 주차장은 집에서 직선거리로 약 백여 미터, 집 이층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연희가 주차장을 확인하지 않을 리 만무했으므로 일단 차를 뱄다.


 천천히 동네를 두 어 바퀴 돌 무렵, 번개처럼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오오, 미사리!”     


 미사리 하늘은 더없이 맑고 고요했다. 넓고 넓은 주차장 어디에도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공사 차량인 듯 트럭 두 대가 보였다. 건너편으로 차를 몰았다. 이른 오전이라 그늘이 건너편에 있었다. 친구들과 왔을 당시 업무차량을 제외한 야유객 차는 건너편으로의 이동을 제한하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객들에게만 허용했었다. 당시 그들 일행 중 몇 명이 건너편 자리로 갈 것을 원해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났다. 


 차를 몰고 건너편으로 들어가는데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평일엔 주차 관리요원 외, 일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깊숙이 몰고 들어갔다.  


 미사리는 10여 년 전에 현우가 보았던 풍경이 아니었다. 당시엔 나무들이 고만고만했었다. 버드나무를 비롯, 작은 묘목들에 각목 같은 지지대를 받쳐 놓았던 기억이 선명했다. 버드나무는 끝 모를 높이로 솟아있고 다른 나무들도 그의 키를 훌쩍 넘었다. 구색 맞춰 심어진 꽃나무들에선 형형색색의 꽃들이, 잎이 돋아나는 나무들에선 연초록, 진초록, 붉은 색, 노란색, 가지각색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예술가는 자연의 애인이다. 그는 자연의 노예이며 주인이다.’

 시인 타고르가 말했던가?


 자연만큼 위대한 예술이 또 있을까? 어떤 화가나 작가가 그림이나 글 등으로 이 위대함을 표현할 수 있으리,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선 표현할 길 없는 예술이었다. 

 신(神)의 작품 한가운데 하나의 오점처럼 이현우, 자신이 있는 듯했다.   


 차를 다시 주차했다. 차안에서 강이 보일 수 있도록.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환경의 영향으로, 그는 어디를 가나 물이 있는 풍경을 좋아했다.   

 운전석 의자를 뒤로 끝까지 밀고 의자 등받이를 강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로 맞추었다.   새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은빛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고향집 마당에서 저 멀리 푸른 바다를 보는 것만 같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 서서 곧잘 상념에 젖곤 했다. 

-저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어떤 세상일까, 걸리버 여행기 속 거인, 소인이 살고 있을까, 알리바바와 사십 명의 도적들이 살고 있을까, 밤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보존한 술탄의 왕비, 세에라자드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현우는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동화 속 나라를 동경하곤 했다. 그가 살고 있는 바다는 고되고 힘든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배안엔 김발막이 재료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노를 젓는 사이 현우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아득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철모르던 시절엔 거의 매일 바다로 나갔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게 싫어서였다. 바다 일이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가 자진해서 바다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오는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해질녘에야 오곤 했다. 그와 달리 친구들 집에선 어른들이 바다 일을 했다. 나아가 이웃끼리 품앗이로 수월하게 하는 것 같았다. 유독 그의 집에서만 품앗이도 없이, 자신을 비롯한 동생들까지 대동해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만날 우리 집만 이래?

-너의 아버지가 아픈디, 누가 품앗이 끼워 준다냐? 아버지 낫으믄 너도 놀 수 있어야….

 불퉁한 입으로 불평불만을 하면 어머니는 나직한 한숨을 쉬며 그를 달래곤 했다.

 배는 어느새 그들 구역까지 왔다. 바다 구역은 일 년에 한 번 제비뽑기로 정한다. 가끔 돈을 주고받으며 서로 바꾸기도 했다. 

-집에 재수가 없을랑께, 바다까정….

 어머니는 운이 나빠 나쁜 구역이 걸렸다며 못내 불만스런 표정으로 둥얼거렸다. 

-현우야! 닻 내려라!


 아버지가 화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닻은 어머니 발아래 있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어머니를 부르는 대신 꼭 아들인 현우를 불렀다. 어머니의 불평불만이 듣기 싫다는 뜻이다.  10월 1일, 달력에 빨간 글씨로 씌어있는 국군의 날이었다. 공휴일이라 친구들과 놀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억지로 끌려온 터라 아버지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바다가 아닌 육지였다면, 오는 길에 아마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현우 뭐하냐? 닻 내리랑께!

 아버지의 성난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린 뒤에야 어머니의 잔소리가 멈췄다. 어머니는 가장 후진 구역에 걸린 것에 화가 나는지, 제비뽑기를 한 아버지에 대해 화가 나는지, 현우로선 분간키 어려웠다.

 닻은 화난 어머니 손에 들려 직선으로 곧장 떨어졌다.


 바다 한가운데 김발 설치하는 작업은 한마디로 악전고투와도 같다. 지지대역할을 하는 두 축인 소나무 기둥을 세우는 일이 가장 힘들다. 소나무 기둥은 직경 약 20cm, 길이 7~9m 크기로 약 60~80kg, 장정 두 명이 겨우 들 정도로 무겁다. 그 기둥을 섣부르게 설치하면

 모든 작업이 수포로 돌아간다.   


 기둥으로 쓸 소나무 밑동을 날카롭게 깎는다. 그것을 바다 밑바닥 뻘 속에 세운다. 땅속 약 1m 이상 박히게 배의 반동을 이용한 힘으로 누른다. 약 오십 미터 간격을 두고 기둥인 축 하나를 더 세운다. 기둥을 중심으로 말뚝 서너 개씩 박고 질긴 나일론 줄로 기둥과 말뚝을 단단히 연결한다. 말뚝은 직경 약 5cm, 길이 1m, 소나무로 된 것이다. 기둥과 말뚝 간격은 약 1~2m, 지지대 기둥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다. 

 말뚝 박는 일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쇠 파이프에 직경 약 4cm, 길이 5m의 대나무를 끼우고, 한쪽엔 밑동을 뾰족하게 다듬은 말뚝을 끼운다. 이미 말뚝 중간 부분에 길고 튼튼한 나일론 줄이 묶여 있어야 한다. 말뚝에 연결된 나일론 줄을 대나무와 함께 손에 쥔 채 말뚝, 쇠파이프, 대나무로 이어진 것을 기둥으로 세운 소나무 가까이 펄(뻘) 속에 꽂은 후, 배의 출렁이는 반동을 이용한 힘으로 누른다. 약 1m 길이 말뚝이 펄 속으로 다 들어가면 대나무를 힘껏 잡아당긴다. 말뚝은 박힌 채 대나무와 연결된 쇠파이프, 말뚝에 묶인 줄만 위로 올라온다. 그 줄을 기둥으로 세워놓은 소나무에 묶는다. 기둥 하나를 중심으로 말뚝 서너 개를 박고 끈으로 연결해 놓으면 태풍에도 견딜 수 있다. 


 두 축 기둥이 완성되면 적당한 높이의 대나무를 5m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세워나가야 한다. 이어 대나무와 두 축, 기둥인 소나무를 나일론 줄로 엮고 사이사이를 갈대, 섶, 싸리 등으로 그물처럼 엮는다.    


 아버지는 기둥을 어디에 세울지 사방을 돌며 적당한 자리를 탐색했다. 썩 마음에 드는 자리가 없는지 오랜 시간을 대나무로 바다바닥을 꾹꾹 찌르며 확인하였다. 중간 중간 선미에 앉아 기침을 하느라 시간을 더 끌었다.

 아버지가 기둥나무를 들자는 사인을 보내왔다. 표정으로 보아 썩 탐탁찮은 자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땅하게 좋은 곳이 없어 밀어붙일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통나무를 힘들게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가 앞서고 어머니와 현우가 뒤에서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며 밀었다.

-하나! 둘! 셋!

 힘을 다해 바다 속으로 나무를 밀어 내렸다. 다행히 바닥에 자갈이나 바위가 없었는지 나무가 곧게 섰다. 다시 힘을 합쳐 배의 반동을 이용해 나무를 힘껏 내리 눌렀다. 세 사람의 힘을 모두 뺀 뒤 기둥은 무사히 바닥의 개펄 속에 고정 됐다. 약 오십여 미터 간격을 두고 나머지 한 개도 무사히 세웠다. 


 이제 기둥 주변으로 말뚝을 박을 차례였다. 말뚝은 지지대인 소나무가 단단히 고정되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하기에, 섣불리 하면 간신히 박아놓은 기둥까지 부유하는 역작용을 일으키므로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해 온 쇠파이프 한 쪽에 긴 대나무를 끼우고 못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파이프의 다른 한 쪽엔 말뚝을 끼웠다. 말뚝 중간에 작은 홈을 파 긴 나일론 줄을 집에서 이미 묶고 왔다.


 아버지가 장대높이 하듯, 그것들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는가 싶더니 잽싸게 바다 아래로 내리꽂았다. 아버지 동작이 끝나기 무섭기 어머니와 현우가 달라붙었다. 다시 배의 반동을 일으키며 힘껏 장대를 밀어 넣었다. 말뚝에 묶인 줄을 기둥인 소나무와 묶으려던 참이었다.

-하지 마라!

 아버지가 어머니와 현우의 손을 중단시켰다. 그 기둥이 여전히 미덥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기둥을 손으로 흔들며 고개를 갸웃한 걸보면. 

 줄이야 언제든지 잡아끌어 당기면 되었으므로, 큰 숙제는 축인 기둥이었다. 


 어머니와 현우가 침묵하는 동안, 긴 나일론 줄이 바다 물살을 따라 넘실넘실 춤추고 있었다. 

-저쪽부터 하자.

 아버지가 하던 걸 놔두고 다른 쪽 기둥주변 말뚝을 박자고 했다. 

-휴우!


 현우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일이 자꾸 늦어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라도 친구들과 놀고 싶어, 여간 마음이 조급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다른 쪽에 말뚝을 세우려는지 쇠파이프 등을 손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현우 눈치를 살피며 배안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현우는 바닷물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나일론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래던 중이었다. 

-아이고메, 현우 아부지!

 어머니의 기괴한 음성이 바다를 출렁였다. 깜짝 놀란 나머지 현우는 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상어 떼라도 몰려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두둥실 떠올라 버렸다. 벌써 이미 저만치 떠내려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현우가 소나무를 잡기 위해 허둥대는 사이 아버지는 몸을 비틀며 기침을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하고, 붉게 물든 석양이 서쪽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내일 다시 이 자리에 와야 한다. 현우는 죽으면 죽었지 내일 다시 와서 이 일을 하기 싫었다. 

 아버지의 간헐적인 기침 소리만이 주변의 정적을 거두고 있었다. 

-오늘 끝내고 가!

 현우는 어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할 수 있겠소?


 어머니가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묻는 동안, 현우는 자신이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또래들보다 키와 덩치가 크고 힘도 셌다. 아픈 아버지보다 어쩌면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우 기침을 멈춘 아버지가 일어섰다. 먼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소나무를 배위로 끌어올려야했다. 물에 퉁퉁 불은 소나무는 무겁기 이를 데 없어, 세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도 배위로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겨우 잡았다 싶으면 다시 손에서 빠져나가고, 다시 잡아 올리면 미끄러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힘을 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예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나무가 배에서 멀어지면 닻을 올리고 배를 움직이며 따라 잡아야했다. 


 겨우 소나무를 배 바로 아래 잡아놓는데 성공한 세 사람은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현우는 세 사람의 힘만으로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힘보다 머리를 써야할 것 같았다. 일단 나무가 손에 잡히기만 해도 가능성은 있다. 바다 물에 불을 대로 불은 나무는 무겁기도, 미끄럽기 짝이 없어 일에 진척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놀이터가 바다였던지라 물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수영을 잘했다. 안 되면 다시 배위로 올라오면 될 터였다.

-내가 바다로 내려 갈께라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콜록! 콜록! 니깟게 뭔 힘을 쓴다고? 콜록, 콜록, 콜록….

 아버지가 무서운 표정으로 화를 내며 아들을 꾸짖었다. 도중 기침을 시작하는 바람에 말이 끊겼다. 

-이건 힘만으로 안 되는 것이여, 쬐끔 기다려, 아버지 기침 멎으면….

 어머니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버지의 기침이 멎자 그들은 다시 일어섰다. 나무가 손에 닿을 듯 말 듯, ‘용용 죽겠지, 나 잡아봐라’ 하며 다시 미끄러지며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안되겠다. 내일 다시 하자!

-저 내일 안 올래요, 오늘 끝내고 가!요

-아야! 누구는 오늘 안하고 싶어 이러냐, 아버지 몸이 성하지 않응께….

-너, 이런 일 하기 싫거든 밥도 처묵지 마라!

 아버지 말이 떨어지자마자, 현우는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내렸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내일 또 같은 일을 하기는 죽기보다 더 싫어서였다.      

 웬일인지 내 몸이 떠오르지 않았다. 발버둥 칠수록 몸이 더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말뚝에 묶어놓은 나일론 줄에 그의 몸을 휘감겨 들었다. 

-사, 사, 살려, 살려 줘! 엄마, 아버지…, 으으으흑…, 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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