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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5화

꿈의 강-1


 미국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회사 몸담고 있으면서 대학교수의 꿈도 포기하지 않았던 터라 기회만 되면 전공 관련 분야 학회나 세미나 등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학술지에 새로 올라온 논문들을 접하며, 그 분야 학자들과 학문과 친목을 교류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어느 학회에서였다. 참가자 중 한사람이 현우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모 대학 정형외과 Y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가 이박사님 팬입니다. 논문을 빠짐없이 다 읽었어요, 햐아! 정말 대단하신 능력자시더군요. 박사과정을 도대체 몇 년 만에 졸업하신 겁니까?

-네에, 정확히 2년 8개월 만입니다. 

-그 짧은 기간 박사과정 끝냈다는 사실도 놀랍고, 짧은 시간 발표하신 논문들에서 경외감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아직 교수가 못 되고….

-교수가 뭐 별겁니까, 몸담고 있는 분야에 최선을 다하면 되죠 뭐, 허허허허….

-그렇긴 하죠, 하지만 산업체 몸담고 있으니 제동이 걸려요. 이 분야 연구를 계속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맞아요, 이박사님 같은 분이 대학교수가 되셔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이 나라 미래가 밝을 텐데, 교수 자리가 실력만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 저 또한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과하신 칭찬 같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 특히 더구나 논문에 대해 칭찬 듣는 일만큼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곧 친해졌다. 학회나 세미나 등에서 뿐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 만나기도 했다.  Y교수는 자신의 논문에 현우 논문을 자주 인용한다며, 기꺼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박사님, 제 꿈이 대학총장입니다. 논문을 꾸준히 쓰는 이유지요. 좀 도와주십시오. 

-제 논문으로 도움이 되신다면 얼마든지 갖다 쓰십시오, 제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Y교수를 만난 지 채 이주일이 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최근 들어 부쩍 더 자주 만나자고 했다. Y교수와 달리 현우는 회사에 매인 몸이었다. 주말엔 그나마 시간을 좀 낼 수 있지만 주간 저녁시간대를 원했다. 주말엔 골프약속이 있단다. 


 몇 번의 시간 조율 끝에 만났다. 

-이박사님 우리 사업합시다, 박사님도 남의 일 하기 지겨우시죠? 저 역시 총장을 꿈꾸고 있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게 세상사, 정치를 해볼 생각도 가지도 있습니다. 정치는 돈과 직결됨으로….

-아아 네에 그러시군요.

-평교수로 퇴직해 논다는 건 스스로 하락하지 않는 자존심이기도, 조그만 동네 병원 차려놓고 종일 환자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긴 싫습니다. 돈은 남이 벌어줘야지 늙어서까지 내 몸뚱어리 움직여가며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해서 말인데요, 더 늦기 전에 판을 한 번 벌이고 싶습니다. 이박사님 논문에 사업가능성 좋은 아이템이 몇 개 있어요. 사실 이것도 제가 학교에 몸담고 있는 동안 시작해야지 그렇잖으면 힘들어요. 학교연구실 이용하며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니까요.

-교수님, 저와 생각이 이렇게 같을 수 있습니까? 주말만 되면 집에서 생각하는 게 그겁니다. 회사 매이면 끝장인데 하면서도 매인 목줄 때문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그래도 교수님은 작은 병원이라도 운영할 수 있잖습니까? 저 같은 월급쟁이는 회사 나오면 그날로 식물인간이 돼 버려요.   


  사업이라, 그가 꿈꾸는 일 중의 하나였다. 사실 현우는 교수가 되었다 해도 어딘가 사업체를 하나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월급쟁이 사장 앉히고, 원격 조정해가며 꾸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회사 매이다 보니,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의기투합했다. Y교수는 골프까지 줄여가며 현우에게 집착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만남을 이어가며, 구체적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놓았다.   


 보석이 많이 매장돼 있는 산을 알고 있는 이가 있었다. 늘 그 산을 탐내오던 그는 날 잡아  산주를 찾아갔다.

 “산에 값비싼 보석이 많이 매장돼 있습니다. 함께 발굴하실 의향이 없으신지요?” 

 산주인은 그 산이 쓸 만한 땅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값비싼 보석이 묻혀있는 줄은 몰랐다. 둘이는 그 자리서 흔쾌히 합의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자원을 캐내어 시장에 내다팔지 구체적 논의에 들어갔다. 산주는 그 산의 지형과 토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어디에 굴착기를 갖다 대고 입구를 만들 것이며 출구는 어느 방향으로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었다. 

 죽이 척척 잘 맞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D-day를 잡아놓은 어느 날, 그가 산주에게 말했다. 

 “누군가는 앞장서 이끌어야 하니, 제가 대표가 되는 게 맞겠죠?”

 “무슨 말씀이신지?”

 “보석의 종류와 진가를 잘 아는 제가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게… 저 아니면 보석이 있는 줄도 몰랐을 테니, 당신에게는 일정한 액수의 월급을 드리겠습니다….”


 산주인을 앞에 두고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그 후 Y교수 만나는 게 싫어 학회 등에도 나가지 않았다.      

 어떤 좋은 일감이 있어도 병원, 의사, 의대교수, 특히 정형외과 의사나 교수를 끼고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뿐이었다. 


 돌이켜보니 Y교수가 무리한 요구를 한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에서 나와 두 팔 쭉쭉 뻗으며 스트레칭 하고 걷기를 시작 할 땐 의욕이 넘쳤으나 이내 의기소침해졌다. 한마디로 의욕상실,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풀이 팍 죽어버렸다. 자신의 내 젊음과 청춘을 모두 쏟아 부어 이룬 것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된 기분이다. 


수첩을 잔디밭에 내동댕이친 채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늘에 구름 한 조각이 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이 저 위에 떠있는 구름 같다.

 ‘저 구름은 왜 저기 있지? 어디로 가는 걸까, 비나 눈을 만들기에 터무니없는데 어쩌다 무리에서 떨어져, 저렇게 떠돌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까?’

 “내가 이러려고 그토록 힘들게 공부했나? 온 가족의 희생을 볼모로….”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밀려들었다. 어디서부터 매듭이 꼬였으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다시 차로 돌아왔다. 

 라디오를 켠 뒤 의자 등받이를 뒤로 있는 대로 젖힌 채 누웠다. 

 슬픈 곡조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상반신을 올려 황급히 채널을 돌렸다. 신나는 이야기나 경쾌한 음악이 듣고 싶었다. 이리저리 돌리는데 스튜디오 안이 왁자지껄한 웃음바다, 웃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다. 행복한 사람들이 싫어 다시 채널을 돌렸다. AFKN이 잡힌다. 굳이 뜻을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영어방송이었다. 중간 중간 음악소리만 선별해서 의식 속으로 받아들인,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다시 허리를 의자로 눕혔다.     

 가물가물 잠이 찾아든다. 라디오를 끄고 싶었으나, 젖은 솜뭉치마냥 천근만근인 의식은 이미 몸의 통제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얼마를 잤을까, 귀에 익은 노랫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가슴에 싸한 찬바람이 일었다. 

 어제 과자를 삼키다 끝내 목이 메었던 그 노래…. 

~~~~~~

깊은 밤중에 난 꿈속을 거닐고 있어. 믿음의 산에서부터 깊디깊은 그 강까지.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아마 잃어버린 신성한 무엇이 아닐까? 강이 너무 넓어 건너기가 힘들어. 그 강이 너무 넓은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매일 저녁 강가에 내려와 서 있고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시도했어. 그리하여 마침내 내가 찾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어.     

 내 영혼으로부터 빠져나간, 내가 잃어버렸던 적이 없는 무언가를, 누군가 앗아간 그 무언가를. 난 내가 왜 한밤중에 이렇게 걷고 있는지 모르겠어. 난 이제 너무 지치고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아. 부디 이 행동이 내 남은 삶을 앗아가지 않기를,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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