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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6화

꿈의 강-2

 


1993년 ○월,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이듬해 1월, 연희가 재현을 낳았다.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그들은 학비는 물론 아기 기저귀 값까지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유학 오기 전, 밤낮으로 일하며 유학비용을 벌었다. 장학금을 받는다 해도 생활비는 마련해서 가야 한다고 들었던 까닭이다. 어느 정도 자금이 확보된 뒤 미국의 7개 대학에 지원했다. 2개 대학에서 입학허가서(admission)를 받았는데, 단 한 곳에서 장학금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학교 명성과 상관없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 학교로 가게 되었다. 맨손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인데다 양가에서 지원받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평양 상공을 가로질러 미국이라는 땅, 그 대학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도교수 A가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우를 포함 8명의 박사과정 학생을 선발해놓고, 백인 4명에게만 혜택이 주어진 것이다. 맥이 탁 풀렸다. 


 애초 장학금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국내에서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아이비리그로 갔지 아내 연희조차 어딘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하는 그 학교를 선택할 리 없었다.      

 악에 받칠 대로 받친 현우는 A교수를 찾았다. 날선 목소리로 감정을 쏟아냈다. 

-교수님! 이게 무슨 영문입니까? 

-Whst’s problem?

-설마 인종차별은 아니죠?

-What does it means?

-몰라서 그래요? 장학금 건은 계약위반이잖아요!

-헤이, Mr. Lee!!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만 했을 뿐이네. 우리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지 않은가?   

 몸집이 큰 누런 황토색 인종이 무소의 뿔처럼 대들자, 몹시 당황한 A는 황급히 캐비닛을 열어 서류 뭉치를 꺼냈다. 

 현우는 속으로 일말의 가능성을 믿었다. 교수가 겁먹고 마음을 바꾸려나 싶어서였다. 


-이것 읽어 보게나!

 A는 어떤 문장에 빨간색 펜으로 줄로 표시하고는, 현우 앞으로 던지듯 내밀었다.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눈앞으로 바짝 당긴 채 현우는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갔다.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영어 실력이 짧아 그런가하여 몇 번 되풀이 읽었으나 개운치 않긴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읽었다. 


 부드러운 청색우단 천을 손으로 쓸면 잿빛이 되었다가 반대로 쓸면 다시 청색을 되찾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 될 수 있는 내용 같았다. 


 무식까지 탄로 난 듯한,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분노로 이어져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대들었다. 

-이게 보험 약관입니까? 글을 이런 식으로 써서 사람을 속이다뇨? 

-자네 나라에선 사람을 그렇게 속이나? 적어도 이 나라에선 그렇지 않네.

-이런~C….

-나한테 학생은 많네. 그리고 교수에게 욕하는 버릇은 자네 나라 풍습인가? 

-뭐어? 우리나라가 어떻다고? 이런 XX! 여기까지 오느라 내 청춘을 다 바쳤어, 보따리 싸란 말이야? 학생을 이런 식으로 농락하며 모멸하다니, 여기가 선진국이라 이름 하는 그 미국 맞아? 

 나라와 민족을 들먹이는 A에게 비분강개하여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Well, it's all up to you now. and, Don’t pee in your pants.

-@#$%^&*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사람이나 동물이 자식을 낳을 때 하는 행위의 비어를 내뱉고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캠퍼스를 서성이다,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흥분 상태로 기계공학 학과장 사무실을 찾았다. 

-Welcome!

-한국에서 온 ‘이현우’ 이라고 합니다. 

-Do you want some help, Young Kim? 

-Please, Sir!

-I’ll do it to the best of my ability.

-장학금 받는 조건으로 이 학교를 선택했으므로, A교수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앞 뒤 문맥조차 생각할 겨를 없는 영어로 쏟으며 조금 전 A교수와 있었던 일을 죄다 토했다. 

-All right, All right, Ok, Ok…I understand, Ahem, Ahem…. 

 미친 듯 펄펄 뛰는 짐승(?)을 일단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학과장은 부드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현우의 난동(?)을 다스렸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요?

-장학금을 받아야만 합니다. 

-Heam….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야 해요. 제발 부탁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장학금 문제는 지도교수의 재량이므로 학교 측에서 강제할 방법이 없어요.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A교수와 신뢰가 틀어져 공부하기 힘들다면 다른 교수를 소개하는 일은 가능해요. 장학금 관련 문제도 다시 논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학과장이 소개한 교수는 레이 밴더비(Ray Vanderby)였다. 그 학교로 부임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신임교수란다. 밴더비 교수 아래 4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있었지만 1명이 박사과정자격시험(Qualification)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3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줄, 아니 머릿수라도 채워줄 학생이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A교수는 현우의 석사과정 세부전공인 ‘고체역학’ 분야였고, 밴더비는 의공학 계열인 ‘생체공학’이었다. 석사코스와 관련 없는 의공학 분야를 다시 공부한다면 시간ㆍ경제적 손실이 몇 곱절일 터였다. 게다가 경륜 많은 교수에 비해 기업체 등에서 펀드를 따내는 능력이 부족해, 장학금 여부도 회의적이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차라리 과학원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자 더한 절망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이 한순간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신창이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밴더비를 만났다. 

-Hello? Hyun woo Lee, Nice to meet you.

 새하얀 손을 내밀며 눈부시게 웃는 밴더비에게 알 수 없는 동요와 감정이 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미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는 매우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운명인지도… 미래엔 생체공학 쪽이 더 전망 있을지….     

 스스로에게 세뇌 당한 그는 기꺼이 밴더비 제자가 되었다.      

 밴더비 교수는 무슨 방법으로라도 현우를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듯했으나, 햇병아리 신참 교수에게 선뜻 주머니를 여는 후원업체나 기업이 많지 않은 듯했다. 

 어렵게 1년이 지나고 있었다. 



 통장 잔고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자, 연희는 전화통을 붙들고 살다시피 했다. 일자리를 알아보고, 베이비시터와 그 비용 등을 알아보느라….

 발음과 문장이 제멋대로여서, 그녀가 통화할 때마다 현우는 자리를 피했다. 스스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슬프고 비애로운 감정을 추스를 길 없어서였다. 

 “저 영어로 구직을 하다니, 용기보다 만용….”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현우를 연희가 불러 앉혔다. 

-여보!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어. 아기를 한국의 친정올케나 시부모님께 맡기자. 그리고 돈은 내가 벌게! 여기는 베이비시터 비용이 너무 비싸. 아기 맡기고 일 해봤자 남는 게 없어. 

 아들에게 젖을 물리는 연희의 표정이 전장에 나가야 하는 장수처럼 비장하다 못해 무서웠다.      

 현우가 침묵하는 동안, 연희는 거사(!)를 진행했다. 한국에 아기를 맡기고 오는….     

 그녀가 한국으로 아들을 맡기러 떠나는 사월의 어느 날 날씨는 잔인하도록 눈부시고 화려했다. 아파트 단지가 꽃 속에 파묻힌 무릉도원이다. 그들의 사정과는 아랑곳없이 꽃 천국이었다. 풍요속의 빈곤, 아름다움 속에 갇힌 외로움, 세상의 어떤 단어나 문장도 마음을 대변할 길 없었다. 

 “아직도 열이 안 내린 것 같네….”
  연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타이레놀 챙기면 되겠지?     


 그저께 아들이 열이 40도를 오르내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아이가 어찌되는 건 아닌지, 처음 부모 된 심정은 두렵고 떨리기만 했다. 

-감기군요, 집에 타이레놀 있으면 먹이면 되구요, 옷 벗기고 찬 수건으로 몸의 열을 내려주세요….

 의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열이 이렇게 많이 나는데요? 주사라도 한 대 놔 주시면 안 될까요? 

 아무 처방도 내려주지 않았다. 심지어 가는 길에 마트 등에 들러 해열제까지 우리더러 구입하란다. 

 연희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어법에 맞지 않은 영어로 억지를 썼다. 

-제발 주사 한 대라도 부탁드립니다.

-노, 노, 노옵! 감기엔 약이 없어요, 열흘 정도 지나면 저절로 낫게 될 겁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채 3개월이 되지 않은, 아직 핏덩이에 불과한 아들을 이역만리로 보내야하다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자기자식을 스스로 거두지 못하는 못난 아비, 사랑을 나누며 옹기종기 살아갈 작은 울타리마저 쳐주지 못하는 못난 남편, 부모님은 또 어떻게 어린 것을 떠맡을지, 농사일, 바다일, 전기요금 수금 일에….’


 부모님을 생각하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목구멍과 코, 눈으로 분출되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세차게 틀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공항에서 수속을 밟는 동안 서류가 미비하다며, 아기 출생증명서를 요구했다. 여권을 준비했지만 그것만으로 안 된단다. 비행기출발 시간까지 불과 채 1시간도 남지 않았다. 집에서 공항까지 자동차로 왕복 50여분 거리,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내와 아들을 공항에 둔 채 미친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단돈 1달러에도 벌벌 떨었지만 과속과태료 따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 1분이라도 아들을 더 품안에 안고 싶었다.      

 최고 속도를 무시하고 달려오니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서 서류를 받으며, 연희와 아들이 탑승했음을 알렸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듯 업무로 돌아갔다. 굳이 필요치 않은 서류를 요구한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바깥 기체가 보이는 장소로 이동해, 유리창에 바짝 붙어 아내와 아들을 찾았다. 햇빛에 반사된 기체의 내부가 시야에 들어올 리 만무했지만, 연희가 기내에서 그를 봐주기를 바라며 

윗옷을 벗어 정신없이 흔들었다. 

 아내와 아들이 탄 비행기가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자리에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텅 빈 몸과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차로 돌아와 문을 열자, 뒷좌석에 놓인 베이비 시트가 팅 빈 눈을 현우를 바라보았다. 

 시동 소리에 맞춰 통곡을 쏟아냈다. 스스로의 울음이 부끄러워 라디오를 켰다. 

~~~~~

In the middle of the night, I go walking in my sleep

Through the vally of fear, To a river so deep

I`ve been searching for something, Taken out of my soul

Something I would never lose, Something somebody stole

~~~~     

 노래가 그의 가슴을 할퀴며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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