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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7화

제 2부: 절망의 벼랑끝에서



제 새끼를 떼어놓은 동물(!), 연희는 비장한 각오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일을 하려면 일단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 몇 번 운전시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불합격하는 바람에 면허증이 없는 상태였다. 미국은 차 없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라였다. 주거지와 상가가 분리돼 있는 편이었다. 특히 현우와 연희가 둥지를 튼 학생아파트는 자그마한 편의점 하나 없어 우유 하나를 사려도 차를 이용해야만 했다.


임신기간 동안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력이 한국유학생들 사이 전설처럼 떠돌고 있었는데, 사연은 바로 이러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면허증을 따야한다며 현우가 이론 교재를 사다주었다. 모국어 한 글자 없는 두꺼운 책을 보자 벌써부터 숨이 찼디.

살아내야 했기에, 수험생처럼 앉아 파고들었다.     

 수 개월 동안 뇌의 최대치 용량을 사용하며 어렵게 시험을 치렀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합격'이란 말이 들렸다.

너무 좋아 팔짝팔짝 뛰고 있는데 시험관의 칭찬이 덧붙여졌다.

-일부러 영어 시험지를 선택한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자국어로 된 시험지를 택하거든요.

-한국어 시험지가 있었다구요?

-저기!

 그 사람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자 한국어 교재가 버젓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허탈감에 맥이 풀렸지만, 영어에 한발 다가간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이제 실기시험만 보면 되었다.

 한국에서 운전대를 잡아 본 것은 실기시험장에서가 전부였다. 그나마 몇 번 떨어지고는 시간과 돈의 제약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론과 실기 시험 모두 시험장에서 치렀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미국은 이론 시험은 교통국(Transoortation Bureau)에서, 실기는 본인이 준비되었을 때 날짜를 배정받으면 되었다. 운전연습과 차량 또한  본인들의 선택과 소유여야 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필수이기에, 제도 또한 다른 듯했다.    


 실기시험 D-day, 조수석에 탄 시험관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우회전, 좌회전, 유턴 등을 무리없이 수행하며 교통국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좋은 결과를 예상했던 연희에게 불합격이 떨어졌다. 문화차이에서 비롯된 감점이었다. 건널목에서 빨간불이 켜져 정차 한 뒤 기다렸다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자마자 주행기어를 넣고 출발했는데, 저 쪽에서 사람이 뛰어오고 있었단다. 물론 연희는 발견하지 못했다. 주행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었어도, 보행자가 건널목을 건널 의도로 보이면 마땅히 기다려야 한단다.

 어떤 상항에서도 인간보다 차가 우선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큰 깨달음을 얻은 낙방이었다.    

 

 심심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자가용은 구경조차 못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며 가끔 동네에 공사트럭이 나타나곤 했는데, 엔진에서 풍겨지는 석유냄새가 좋아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코를 흠흠 거렸다. 개구쟁이 머서마들이 트럭 뒤에 매달리며 승차감을 즐기는 동안, 연희도 지지 않고 무리와 뒤섞이는 게 차와 접촉한 전부였다.     


 결혼하여 서울에 살면서도 자동차는 구경만 했을 뿐, 자가용 소유한 사람을 애초 자신과 다른 인간등급으로 인식했다. 어쩌다 자가용 운전자와 마주할 일이 있으면 차주에겐지 자동차에겐지 모를 겸손함이 절로, 자신도 모르게 고개와 허리가 굽혀졌던 것이다. 비오는 날 자가용이 흙탕물을 튀기며 지나가도 운이 나쁜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으니....


이러저러한 환경적 요인으로, 자동차가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현우는 연희의 임신을 걱정하기도, 시험을 치른다며, 며칠 째 주행연습을 시켜주지 않았다.


 들어오는 것 없이 바닥으로 치닫는 통장 잔고가 생명을 갉아먹는 초침소리처럼 목을 짓누르며 다가와, 그녀 속이 타들어갔다. 출산 후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에, 무의미하게 흘러나가는 시계 초침소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긴박한 울림으로 들렸던 것이다.     


 남편이 밴더비가 소개해준 아르바이트로 겨우 숨통을 트고 있었지만 학비, 생활비엔 턱없었다. 현우의 머릿속 경제는 단시간 내 박사과정을 끝내는 일까지를 포함했다, 필요한 코스를 최대한 빨리 통과하자는 계산으로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했다.

 남편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두 손 놓고 노는 것이 불안했던 연희는 한시라도 빨리 면허증을 쥐고 싶었다.  


 어느 날 초조한 심정으로 바깥을 내다보던 그녀 눈에 뭔가 번쩍 띄었다.

주차장에 턱하니 세워져 있는 자동차였다.

남편은 학교까지 셔틀 버스를 이용하고 있어, 시장이나 병원 등, 특별하게 나갈 일이 없으면 차는 늘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아사 직전의 맹수가 먹잇감을 발견한 듯, 맹렬한 욕구가 일었다.

 “저 먹이를 먹지 못하면….”  


 연희는 자동차 열쇠를 지니고 나갔다.

 아직 혼자서는 단 한번도 운전대를 잡은 적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처음에서 시작하는 투성이었다.  

 ‘운전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자전거는 두 바퀴로 구르지만 자동차는 네 바퀴로 구르잖아? 더 안전하고 쉬워….’     

 남편이 몇 번 주행연습을 시켜주며 위안삼아 건네던 말을 신앙처럼 붙든 채,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대여섯 살 때부터 어른 자전거를 손대기 시작한 그녀는 이른바 자전거 타기의 달인이었다. 넓고 편평한 도로에서는 두 손 놓고도 족히 몇 미터는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는 식료품마트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곳은 집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열쇠로 시동 거는 손이 벌벌 떨렸다.

 조심스럽게 후진해서 차를 빼는 데 성공하고, 긴장된 발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돌려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넓은 길로 들어서 가는 게 최대의 관건이었다.


왕복 6차선 도로 앞에 섰다. 몇 번 엉거주춤하다 겨우 진입에 성공했다.

 “!”

 순간, 앗차 싶었다. 모든 차들이 빛처럼 빠르게 달리며 그녀를 위협했다.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차들이 모두 자신에게로 돌진하는 것 같다. 시속 80마일(128km), 한국 고속도로 최고  속도에 준했다.

 머리가 하얘지며, 다시 갓길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3차선으로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경적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려 다시 2차선에 있었건만, 창문을 열고 거친 욕설을 퍼붓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미친 질주를 하는 무리들로, 이미 연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위급 상황을 표시하기 위해 비상깜빡이를 켜려는데, 어디에 붙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 메모리가 다 지워져버렸다.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한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작동될 만 한 건 다 움직였다.

와이퍼는 눈앞에서 혼이라도 빼려는지 어저럽게 왔다 갔다 하고, 좌회전 우회전 시그널도 릴레이 하듯 깜빡거렸다.

전방 주시만도 벅차 계기판 오작동을 멈추기는 불가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땀으로 범벅된 몸에서 흐르는 액체가 눈으로 스며들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아아 이제 죽는구나!우리 애기 어떡해….”     

 몸 속 아이를 생각하자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구원의 길은 단 하나, 갓길뿐이었다.


심호흡을 하며 핸들을 오른 쪽으로 살짝 비틀었다.

 “끼이이이익! Are you ceazy?… Fuck you!… Goddam!, Do they have a death wish or somethung?….”


 요란한 경적과 급브레이크 밟는 굉음 등이 고막을 찢었다. 차체가 심하게 요동치며 어느새 1차선으로 진입하여 지그재그로 움직이다 기어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고보니, 아직 죽은 게 아니었다. 좌측 미러가 훼손된 채 차가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여! 관세음보살! 저와 아기를 살려주시면… 세상에 꼭 선한 일을 하고 가겠습니다. 제발, 제발요….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연희의 머리를 번개 처럼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아아 그렇지….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느니 갈 때까지 가보자였다. 인생도, 세상도 끝이 있기 마련, 가다보면 서울이건 부산이건 어딘가에는 종착지가 있을 거라는 예단이었다.     

그냥 쭉 달렸다. 몇 시간 동안….   


 얼마나 지났을까, 차들의 속력이 점점 늦춰지더니 통행료 내는 곳이 나왔다.

연희는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결정에 탄복했다.

"인생에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지만, 불행히도 무인시스템이었다. 동전 2개를 던져 넣고 생명의 길 3차선으로 빠져나왔다.    


 큰 길에서 작은 길로, 다시 동네 골목으로 들어섰다. 한 대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로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들어가는 그녀 앞에 또 하나의 허들이 나타났다.

저  앞에서 차 한 대가 마주 오는 게 아닌가!

-저건 또 뭐꼬, 와 저라는데, 내 가는 거 안 비이나?

차 두 대가 비켜갈 수있는 길이 아니었다.


 두 근 반 세 근 반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도 천천히 앞으로 갔다.

 어느새 두 차는 결투를 신청한 원수처럼 마주섰다.     

 앞차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며 뭐라고 소리쳤다.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연희에게로 다가왔다.


 유리창을 톡톡 치며 내리라는 제스처를 했다. '면허증 소지자인 동승자 없는 무면허 운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중범죄로 알고 있었다. 달랑거리는 통장에 벌금이라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연희는 어느 집이나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전화기를 빌려 남편에게 연락할 생각이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문을 내렸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What’s the prdblem, Sir?

-This is one way. don't you know?

-….(뭐라케쌌노?)

-This is one way. Lady?

 ‘원웨이, 원웨이가 뭐였더라…, 아아 일방통행!’

 낭패였다. 그 좁은 길을 후진으로 나가야 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운 '불가능'이었기 때문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차에서 내렸다.

-Back! Back!

-Excuse me, Sir, I need your help, please….

-Suer, What can I help you, Lady?

-One moment, please.

-?     

 연희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 메모지에 글자를 적었다. 말은 못하고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문장을 적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밀었다.

“I need a lot of help since I’m expecting a baby.(임신 중이라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끝에 남편의 학교와 연구실, 집 전화번호까지 적었다.     

 메모를 본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Are you all right? Are you all right?

-Yes, Yes, Thank you, Thank you!     


 그때서야 남자는 땀으로 범벅된 그녀 몰골을 훑어 내렸다. 즉시 연희의 차에 올라 차를 후진 시켜 안전한 곳에 주차한 다음, 자신의 차에 연희를 태웠다.

 집에는 그의 부인이 있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자 부인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임신한 몸으로 너무 먼 거리를 왔다고 하는 것 같았다.     

 참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아무 걱정 말라며 안심시키고, 차와 다과까지 내 주었다.

운전 면허증 소지여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남편이 친한 동료의 차를 타고 연희를 데리러 왔다.

 집에서 약 250km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이런 서사가 배경했음일까재입국 후 바로 실기시험을 신청했다.

 지구가 인간 본위로 돌고 있다는 깨달음사지에서 살아남은 경험과 교훈 등이 살과 피가 되어수월하게 합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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