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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8화

달러와의 전쟁-1


 연희는 서울에서 남편의 유학준비를 하는 동안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나라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였다. 유학생활의 고생담 등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접시 닦기’는 당연히 염두에 두었지만, 현지사정이 어찌 될지 몰라 여러 방편을 모색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용기술을 익혀가도록 권했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비싼 미용비에 ‘야매(뒷거래)’가 성행한다는 것이다. 유학생 부인 중에는 아예 현지 미용실을 이용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한국 들어올 때마다 짧게 자르거나 꼬불거리는 파마 등으로 최대한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스타일로 무장(?)한다는 것이다. 

 꿀 떨어지는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바쁜 일상을 쪼개가며 미용학원에 다닌 연희는 기어이 ‘미용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이를 떼놓고 온 뒤 본격적인 구직을 위해, 한인교회에 다시 갔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재미교포는 물론 한국인유학생들의 친교ㆍ교류 장소가 교회라는 사실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예배 중 헌금함이 각자 앞으로 돌았는데, 준비 없이 갔던 그들은 잔돈이 없어 5달러짜리 지폐를 불쑥 내고 말았다. 

 빼앗긴(?) 5달러가 두고두고 아까워, 그 후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로 1달러를 준비하여 신(神) 앞에 나아간 그들은 어렵지 않게 ‘야매미용실’ 연락처를 구했다. 

집에 오자마자 가장 빠른 날짜에 남편 헤어컷 예약을 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파마약 주성분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성이 역시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성의 머리 파마를 하고 있었다. 

-어세오세요. 아아 ○시에 예약한, 남자 분 커트 아니세요? 

-맞아요. 

-예약 시간에, 예약 당사자만 오셔야 해요. 보시다시피 공간도 좁고…. 아직 한 시간이나 남은걸요? 

-몰랐습니다. 오늘만은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될까요? 되돌아가기도 뭐해서요....  

-언니, 나는 괜찮아. 

-괜찮겠어?

-당연하지, 

-그래, 고마워,  

 손님으로 앉아있는 여성의 흔쾌한 제안에 주인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리 요령껏 찾아 앉으세요. 흐흐….

-감사합니다. 

 현우와 연희는 비좁은 소파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었다. 소파 양 옆으로도 미용재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주인이 거울에 비치는 연희 부부를 향해 물었다. 

-언제 오셨어요? 

-1년 쯤 됐어요. 

-전공은요?

-기계공학요.

-작년 한국유학생 신입환영회 때 못 뵌 분 같은데요? 

-저희가 사정이 좀 있어, 거의 나다니질 않았어요. 

-자주 다니며 얼굴 익혀야 해요. 약 5~10년 동안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담 쌓고 살면 못 견디거든요. 내 동네려니 하고….

-….


연희는 약 5~8년이라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maxium 3년’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5~8년씩이나요? 

-그 안에 끝나도 감사하죠. 저희는 그 숫자도 넘겼어요. 킄킄, 여기서 이렇게 청춘을 가 보낼 줄… 시가와 친정에서의 뒷받침도 슬슬 줄어 이 일을 시작했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친정부모가 강남에 빌딩을 갖고 있어, 임대료만 수천만 원씩 들어오는데, 남동생 결혼 후 유학자금이 반 토막으로 줄었다니까요. 올케가 나쁜X….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동안, 연희는 점점 위축되었다. 돈 들어올 구멍하나 없는데다, 자격증만 가지고 있는 미용은 사람머리라곤 만져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자격증 취득 후 미용보조원으로 몇 년간 일해도 남성 헤어컷을 할까 말까였다. 

-저어, 여기 있는 기본 재료들 다 구비하려면 얼마나 들까요? 

-왜요? 미용하시게요?

-저도 놀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요. 

-어머, 미용하다 오셨어요?

-그냥 자격증만… 어찌될지 몰라서요. 

-경쟁자 생기겠군요. 농담이구요, 해보세요. 저는 영어를 못해 한국 손님만 받고 있지만, 영어 잘하면 인도, 중국…, 손이 모라자지 손님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방안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린 두 남매가 거실로 튀어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

-얘들아, 뛰지 말고, 방에서 놀아, 손님 계시잖아!     

 연희와 현우의 몸이 전류에 감전된 듯, 동시에 굳었다. 4개월여 동안 모유수유를 하다 칼로 무 밑동 자르듯 아이를 툭 떼어놓고 왔으니…, 붕대와 거즈로 칭칭 동여맨 연희의 가슴팍에선 시시때때로 모유가 새어나고 있었다. 

아들을 생각하자 유선에서 젖이 돌며, 격심한 통증이 일었다.      

 말없이 그 집을 나오며, 연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미용재료 파는 데 가볼까? 

-어딘지 알아?

-슬쩍 메모해두었어.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 미용 재료들이 촘촘히 진열돼 있었다. 가장 먼저 가위와 클리퍼(clipper) 가격을 확인한 연희는 입을 딱 벌렸다.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해도 100달러가 넘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두 개만 있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거울,  커트보 등, 필수로 갖추어야 하는 종류가 천지였다. 그것들을 다 갖추기엔 통장잔고가 너무 위험했다.   


 하릴없이 매장을 몇 바퀴 돌던 현우가 연희 가까이로 와 건조한 목청으로 말했다. 

-조금 전 다녀온 그 미용사 아줌마 귀국하면, 그 재료들 헐값에 매입하는 거 생각하고 있어. 그녀 남편이 박사과정 8년째라고 했으니 아미 곧 디펜스 통과하지 않을까?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텅 빈 두 사람 웃음이 서로의 안쓰러운 주머니를 관통했다.   


 만약 미용에 자신이 있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료를 구입하여 돌진했을 연희였다. 

모 아니면 도, 간당간당한 통장으로 배팅할 순 없었다. 

-돈을 조금 더 벌어 저 재료들을 사서… 재현을 데려오자!

-응.     



돈 들이지 않으면서 돈 버는 일이 급선무였기에, 연희는 아파트 단지 내 쉼터나 현우학교 식당 앞 게시판 등에 비치된 광고전단지를 종류별로 가지고 와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씨름했다. 아무 일이나 주어지는 대로 할 작정이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두 곳 면접을 다녀온 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노동허가서’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유학 당사자인 ‘F1’ 비자 소지자는 아르바이트 등이 합법이었으나, 그 동거인 ‘F2’ 비자 소지자의 경제적 활동은 불법이었다. 시간 수당을 적게 받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안쓰럽다는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불법고용은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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