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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9화

달러와의 전쟁-2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현우와 함께 밴더비 아래서 박사과정 코스를 밟고 있는 일본인 친구 ‘마사‘였다. 연희가 무면허로 약 250km를 달렸을 때 남편을 태우고 와준 사람이었다. 아기 선물을 들고 온 그는 아기가 없다는 사실에 눈을 휘둥대며 몇 차례나 되뇌었다. 

-Why? Why?


 현우가 마사에게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희는 예전의 감사도 갚을겸, 그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고 급히 앞치마를 둘렀다. 한사코 만류하던 마사는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다시 앉아 남편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희는 미역국, 불고기, 김치 등으로 소소한 상을 차렸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드세요.

-오오, 미역쿡이노, 기무지, 부루고기 등, 제가 무지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코리아 아기 낳으면 미역쿸이노….

-한국풍습을 잘 아시는군요. 흐흐흐흐…. 


마사는 마치 자신이 아이를 낳기라도 한 듯, 미역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밥까지 한 공기 더 요청해 깨끗이 비웠다. 

 김치의 매운 맛에 땀을 뻘뻘 흘리던 그는 냅킨을 달라고 했다. 

 현우가 식탁위의 두루마리 화장지를 마사 앞으로 당겨주었다. 

-Napkin please….


 얼굴 위로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마사의 땀을 보다 못한 연희가 화장지를 손에 들고 ‘탁!’ 소리나게 그의 곁에 두었다. 

-Napkin please?

 몇 번이나 ‘냅킨‘을 반복하던 그는 연희가\와 현우가 번갈아 주던 화장지를 외면한 채 일어서 화장실로 직행하고는, 물을 쏴아 털고 씻고 나왔다.   


 며칠 후 마사가 그들의 집을 다시 찾았다. 커다란 냅킨 박스를 거실 입구에 놓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현우에게 건넸다. 자기 사촌형이 운영하는 일본식당이란다. 내일이라도 당장 가보라고 했다.

 그가 따난 후, 현우가 무릎을 쳤다. 

"아아, 미국인들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식탁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어, 그래서 저걸…."

 “일본, 일본인…, 참 고마운 마사!”     


 다음날, 남편과 주소를 들고 긴자레스토랑을 찾았다. 땅이 넓은 나라,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등이 고층빌딩이 아닌 1~3층이라는 사실에 연희는 적잖이 놀라는 중이었다. 학생아파트도 단층, 학교 건물도 고층보다 저층 건물들이 많았다.    


 넓은 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실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에게 얘기 들었어요, 저희 역시 노동허가서 없는 사람 고용해 보지는 않았으나, 사정이 딱하다고 들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도 좋습니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느낌이었다. 일본ㆍ일본인을 죽도록 미워만 하고 살아온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우리나라에 이완용 같은 인간이 있듯, 일본에 착한 사람이 왜 없었을라고….'     

 집에 돌아온 연희는 식당에서 가져온 메뉴 북과 한국에서 준비해온 서비스 관련 영어책을 초등학생처럼 달달 외웠다. ‘박사’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는 남편 옆에서 ‘밥상’을 위한 공부에 매달렸다. 굶지 않고 버텨내는 게 그녀에겐 ‘훈장’이었다.      



 월요일, 비장한 각오로 출근했다. 재현과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부모님께, 당당한 엄마와 며느리가 되리라 다짐했다.      

 사장은 매주 월요일 아침 직원회의가 있다며 연희를 큰 사무실로 안내했다. 스무여 명의 직원이 앉은 자리에서 연희를 소개했다. 

 큰 박수소리가 끝나고, 회의를 이어갔다. 일본어 반 영어 반, 연희에게 너무 어려운 랭귀지였다. 일본인들의 영어 발음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good morning-구드모노니잉’, ‘restroom-레스트로루므네’, ‘what about-‘훠또 어바우또’ 등으로 요상하게 들렸다. 

연희는 마사만 그런 줄 알았다.    


 회의가 끝나고, 사장이 매니저에게 연희를 담당할 트레이너를 소개해 주라고 했다.

 ‘요오꼬’라는 여성이 연희에게 소개되었다. 

-Hello? Nice to meet….

-Follow me!

 연희가 공손한 목례로 인사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가 명령조를 내뱉었다. 

따라간 곳은 화장실이었다. 

-!@#$%^

 그녀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Could you tell me again? 

-!@#$%^!

 다시 뭔지 모를 말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몸에서 진땀이 났다. 

-Write it down for me, please?

 요오꼬의 눈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몸짓의 언어는 거짓으로 전달되지 않는 법이다. 

야릇하게 비웃는 듯하더니, 그녀가 손수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가만있기 무안하여, 연희가 두 팔을 걷으며 거들겠다는 시늉을 했다. 

-No No No No!

-Let me do it.

-Just shut your mouth.


 순간, 연희는  얼음이 되었다. ‘입 닫으라!’니, 저 말은 한국에서도 비어로 사용되는 표현이었다. 불쾌하다 못해 감정이 솟구쳤다. 

-Write it down for me, please?


 연희의 거듭된, 제발 글씨를 써 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요오꼬가 밖으로 나가 종이와 펜을 들고 와 무언가를 적었다.

-Just watch!     


 처음 온 사람에게 궂은일을 시키기가 뭐해 그러나 싶어, 연희는 시집 온 새색시마냥 두 손을 앞으로 얌전히 포갠 채 송구한 몸짓으로 서 있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친 요오꼬는 연희에게 다시 ‘팔로우 미’를 외치고 앞서 걸었다. 

크고 넓직한 양푼에 담긴 물수건을 옮기려는 그녀에게 손을 보태기 위해 손을 벋쳤다. 

-Hey, just watch!

-!


 연희는 다시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상감마마 따라 움직이는 내시처럼 그녀를 따랐다.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몰려왔다. 요오꼬가 주문받는 옆에서 연희는 단 한 마디라도 놓칠 새라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작은 일이라도 시켜주면 좋으련만, 허수아비처럼 허우적대게 두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깊은 생각은 더 깊은 괴로움을 동반했다. 


 퇴근하니 남편이 감격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어땠어?

-어어? 아아 당연히 괜찮았지!

-영어는 어렵지 않았어?

-노력해야지.

-당신은 잘해 낼 거야!

-….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요오꼬는 연희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퇴근 후 남편의 ‘힘들지 않느냐?’는 위로가 너무나 괴로웠다. 일이 없어 힘들다는 말을 어찌 하겠는가.      

 투명인간처럼 요오꼬를 따라 다닌, 1주일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제발 무슨 일이라도 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식당으로 향했다. 

 1주일 전처럼 직원회의가 있었고, 요오꼬가 연희를 불렀다.

-Follow me!

 연희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주일 전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화장실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현실세계로 돌아왔음을 알았다.


속사포 같은 말을 연희에게 쏟아내는데, 역시 소귀에 경 읽기였다.

-Write it down for me, please?

 빈정대는 표정으로 노려보던 그녀가 집게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빠른 일본말을 내뱉었다. 욕설처럼 들렸다. 

-Write! Please!


 살기 띤 눈으로 연희가 치받자, 잠시 당황해하던 요오꼬가 몇 마디를 지껄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그녀 손에 종이가 들려 있었다. 

 “Do it in the exact same procedure. I've shown you for one last week.(일주일 동안 내가 한 방식대로 청소해!)


 ‘Do it’이란 글자를 보고는 안도했다. 뒷 문장은 미처 살필 겨를도 없었다. 드디어 일이 주어진 것이다.      

 빠른 손놀림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가 뭣이 그리 어렵다고 일주일동안이나 지켜보라고… 서울에서 파출부도 하다왔어…하기사 니가 내 이력을 어떻게 알겠니? 너야말로 이제부터 ’저스트 워치다!’ 한국 여자의 야무진 손맛이 어떤지 지켜 봐!‘      

 첫째 칸 변기에 세제를 주르륵 붓고 수세미로 빡빡 문지르는 연희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Stop! Stop! Stop!

-? 

-Procedure, Follow, Me. 

 스타카토로, 또박또박 끊어, ‘Procedure’란 단어에 손가락을 탁탁 내리쳤다. 

 청소 순서 절차를 지금껏 자기가 해온 대로 하라는 것 같았다. 

 어이상실이었다. 화장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다 보니 물이 튀지 않게 하라는 것은 이해가 지만 세면대나 거울이나 무엇을 먼저 하든 무슨 상관이람? 

-Do it!

 요요꼬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연희는 그녀가 했던 절차를 기억하지 못했다. 

 ‘순서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첫날부터 순서를 잘 기억하라’고 하지, 지켜보라고만 해놓고선….‘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이미 얼음이 된 연희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전신이 마비되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냥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연희는 요오꼬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식대로 청소를 시작했다. 

-Stop! Stop! Stop!

-No! No! No! No! 

-@#$%^&*….

 연희의 강한 반격에 잠시 당황하는 듯하던 그녀가 더 거친 일본 말로 포를 날렸다. 이번에는 연희도지지 않았다.

-야! 순서가 그렇게 중요했으면 왜 진즉 말하지 그랬어, 나 욕보이려 일부러 그런 거니, 사람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보자보자 하니 누구를 등신으로 아나? 

-*&^%$#@….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말로 소리치고 악을 쓰던 중 요오꼬가 먼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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