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수화 Dec 18.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10화

달러와의 전쟁-제 10화


요오꼬가 나간 후 머리를 둔기에 머리를 맞은 듯 멍한 상태로 서 있던 연희는 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청소도구와 거품 묻힌 변기를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순서절차야 어찌 되었든 청소를 마무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식당에서 화장실을 얼마나 깨끗이 관리하는지,  특히 긴자에서는 아침 조회시간마다 화장실 청소를 강조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리 구부린 채 뿌연 눈으로 변기를 닦고 있는 그녀를 누군가 불렀다. 매니저였다.

-잠깐 오시겠어요? 청소는 다른 이에게 하라고 하지요. 


 매니저를 따라간 사무실에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 통에서 손을 놓아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만난 아이처럼, 연희의 눈에서 봇물 터지듯 뭉클뭉클한 액체가 쏟아졌다. 

-쏘리, 쏘리… 아마 요오꼬 양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전수하느라… 트레이너를 바꿔드릴게요!          


 위스콘신 매디슨 시의 여름은 푸르고 위압적이었다. 수풀이 우거질수록 외로움이 더해가는, 풍요속의 빈곤을 절감하는 일은 고독하고 외로웠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며 아파트가 텅 빈 것 같기도 했다. 비어가는 아파트에 이름 모를 새들과 짐승들이 점점 자리를 점령해온다. 흔하게 보이는 청설모들이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사람들이 그들을 피하는 일이 잦았다. 주차한 뒤 발을 내딛는 아래로 갑자기 뛰어들거나, 미처 차를 피하지 못해 운명을 달리한 사체를 마주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운전하기 전 허리를 굽힌 채 자동차 아래를 들여다보는 일이 습관처럼 이어졌다.      



 새 트레이너로 바꿔준다는,  화요일이었다. 

 이른 아침 연희는 눈 뜨자마자 숨 쉬는 것부터, 행동 하나에서 열까지 기도를 담아 움직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장독대에서 정안수 떠놓고 기도하던 흉내를 내며 찬물 한 그릇 베란다에 조심럽게 두었다. 새 트레이너는  제발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문이기도 했다.      


 주차장으로 와 차 아래를 유심히 살폈다. 좋은 일엔 화가 끼어들면 아니되었기에. 청솔모를 살생(?)하고 난후 ‘콜리파이’나 ‘디펜스' 등의 시험에 통과되지 못했다는 징크스들이 유령처럼 떠돌던 중이었다.    

 

 긴자에 도착하니 백인과 동양인의 혼혈로 보이는 젊고 앳된 숙녀가 연희를 맞았다. 

-Hi, I’m Sally, I’m glad to meet you.

-Hello? My name is Yuen Hee.

 대학생으로 방학기간 풀타임, 학기 중엔 파트타임으로 일해왔노라 했다. 마침 여름방학, 그날이 첫 출근이라 했다. 자신이 일하는 동안 일에 익숙해지도록 열심히 가르쳐 주겠노라 했다.    

  

 샐리는 매우 예의바르고 긍정적인, 유쾌, 상쾌, 통쾌한 아가씨였다. 무엇보다 말을 알아듣기 쉬웠다. 연희의 잦은 실수에도 너그럽고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연희! 걱정 말아요. 나중엔 실수한 것을 더 잘 하게 될 테니까요!      

 긴장을 덜하니 배우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연희가 아는 단어 몇 개만으로도 말을 아주 재미있게 한다며, 진심으로 웃는 게 느껴졌다. 둘이는 자주 깔깔거리고 웃었다. 


출근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사장과 매니저도 예전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연희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6주 동안의 수습이 끝나고, 드디어 혼자 전장(?)에 나가야 하는 날이 도래했다. 하다가 모르면 언제든지 다른 직원을 부를 수 있는 ‘쿠폰’까지 주어졌다. 

 큰 시험에 합격하기라도 한듯, 일본식당 웨이트리스로서의 자격증(?)을 딴 사실에 감개무량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집에서 축배를 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고, 온전한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연희보다 더 감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당당한 웨이트리스 주연으로 설 무대를 향한 발걸음은 힘이 넘쳤다. 차 시동은 엔진소리부터 다른 듯했다. 어느 직장에서의 출근이 이보다 더 기쁘랴!    


 모든 사람과 격의 없이 지내는 샐리로 인해 연희는 모든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다. 비록 백 프로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인간에겐 만국이 소통되는 몸짓 언어가 있지 않은가. 신경 쓰이는 건 요오꼬였다. 연희가 직원들과 친해질수록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지만, 다가가려 해도 전혀 곁을 주지 않았다.     


 아침 조회시간, 요오꼬가 싸늘한 눈빛으로 연희를 쳐다보는 게 의식되었다. 트레이너가 샐리로 바뀐 후부터 그녀는 연희를 철천지원수처럼 노려보곤 했다. 

-사람이 왜 저렇게 꼬였을까? 아직 대한민국을 자기들의 속국으로, 연희를 자신보다 하등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긴자 식구들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유독 그녀만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을 통치하던 무리 속 인간으로 증오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마사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너그럽게 가져야했다. 연희는 되도록 되도록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손님을 응대한 첫날의 점심 서빙이 끝났다. 자신에게 할당된 테이블의 봉사료는 모두 본인이 갖는 것이라 했다. 연희수는 테이블마다 자신이 첫 서빙하는 날이라며 잘 봐달라는 멘트까지 넣었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이 봉사료를 더 두둑하게 올려놓는 듯했다. 5, 10 달러들의 지폐를 보자 감개가 무량했다. 

남편이 학위를 취득하고 금의환향하는 옆에, 왕관을 쓰고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환상으로 연결되었다. 

 꿈같은 일주일이 그렇게 흘렀다.    


 돌아온 월요일, 출근하기 위해 경쾌한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연희의 자동차 바로 뒤에 사지가 찢긴 채 피를 흘리는 청솔모가 발견되었다. 아마 그날 새벽 사고를 당한 듯 했다. 아직 선명한 핏자국하며….

-관세음 보살, 주님, 고수레 고수레…. 

 출근길이 바빴지만 차를 빼면 다시 짓이겨질게 뻔했다.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가 종이와 화장지, 걸레 등을 가지고 나와 사체를 고이 싸서 주변 잔디밭에 올려다두었다. 나중에 청소부가 어찌 하더라도.


 운전대 잡은 심장과 손이 주체 못할 정도로 떨렸다. 

-에이,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 여전히 영어는 서툴지만 배울 건 얼추 다 배웠는데….

 가능하면 요오꼬와 눈조차 마주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저 화약고를 건드렸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무사히 점심 장사를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직원들이 둘러앉았다. 

 식당 앞으로 경찰차가 서더니 두 명의 경찰관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매니저가 일어서 그들을 맞더니 혜수를 불렀다. 

“Are Yuen Hee Lee(남편 성 따라)

“Yes.”

“Do you have a identification?”

 연희는 핸드백이 놓여 진 자리로 가 운전면허증을 들과 와 보여주었다. 

“Do you have Social Security Number Card?”

 그들은 다른 신분증까지를 요구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발걸음을 떼 역시 핸드백 속에 들어 있는 자그마한 종이 딱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당신은 F2 비자를 갖고 있군요. 이 비자는 주 연방법에 따라 일할 수 없는 분류로 되어 있습니다.”

 

연희는 점심을 먹다 말고 집으로 쫓겨 왔다.           

이전 10화 재벌이 되기까지-제 9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