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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Dec 29. 2023

재벌이 되기까지-제 12화

 5달러, 300달러와의 도박 


돈의 역설적 위력을 실감했다. 단돈 1달러라도 절약하기 위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광고지를 붙이자마자 걸려오는 전화가 대변해주었다. 

당장 그 주말 남성 커트와 여성 파마 한 명씩을 예약했다. 각각 토ㆍ일요일로 잡은 이유는 남편이 통역사로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선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귀가 닫혀버리는 얕은 영어실력 때문이었다. 


 불안에 떨던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예약시간 5분전, 머리를 뒤로 당겨 묶은 남자가 왔다. 국적을 종잡을 수 없는, 동양계와 서양계의 혼혈인 듯한 청년이었다. 

-Where are you from? 

-타이완.

-What style do you want?

-Can you do that, 섀기 style? 

-쒜기이이?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경직된 몸에서 말이 덜덜 떨려 나왔다. 

 ‘못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지, 마수걸이가 얼마나 중요한데, 더구나 생애 첫 미용 손님….‘

 방 안의 통역사 역시 미용에 관해선 문외한이었다. 

-Would you tell me about ‘섀기’ style?


 연희는 설명만 해주면 무슨 스타일이든 척척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되물었다.  

-Shaggy have their work cut out for them in this feature-length, supernatural mystery… 

-uh huh, uh huh….


 긴 설명으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손님 앞에서 연희는 미국인들 특유의 추임새까지 넣으며 표정을 연기했다. 뭔 소린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버젓이 ‘미용사자격증이 있음을 광고지에 표기했던 터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장발의 커트라곤 일직선으로 자르는 단발, 한국에서 자격증시험 준비하며 마네킹머리로 연습한 게 전부였다. 마네킹 가격이 비쌌던 탓에 그마저 단 한번으로 끝이었다. 

 지난 주말 남편의 머리를 소림사 중으로 만든 노력까지 헛수고였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백 미터 달리기 출발 선상에 선 아이처럼 두 근 반 세근 뛰는 심장을 부여안은 채 들숨날숨을 내쉬었다. 모 아니면 도,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었다. 



 스프레이를 들고 천천히 분무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쉐기, 쐐기풀, 새끼줄, 개XX…정말 이름도 XX…이 긴 머리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사전을 펼치고 단어를 물어 뜻을 알고 싶었으나,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미용인들끼리 주고받는 속담에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아기걸음마 내딛듯 오랜 연습과 경험 뒤에 축적되는 게 기술이다. 숙련공이 앞에서 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고도, 막상 가위를 들면 앞이 캄캄해져 오기 일쑤였기에. 


 칼을 뺐으니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했다. 

가위로 목 뒤에서 뭉텅 잘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테크닉, 단발로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일직선으로 자르기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속머리부터 차근차근 윗머리로 올라오며 결을 맞춰야 하는 이론은 꿰고 있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균형이 맞지 않았다. 


 이솝 우화의 얄미운 여우처럼 이쪽을 자르다 보니 저쪽이 길고 저쪽을 자르니 이쪽이 짧아졌다. 그가 처음 제시한 기장을 훨씬 넘어버렸다. 타원형에 가까운 사선으로 보였다. 좌우 대칭이라도 만들어야한다는 사명감(?)에 죽도록 용을 썼다.

 남은 고기가 나누지 못할 정도로 작아졌다. 여전히 삐뚜름한 사선이다. ‘섀기’는 차치하고 단발이나마 일반적 모양새여야 한다는 양심은 살아있었다. 

 다시 이쪽 고기와 저쪽 고기를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갔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주님과 관세음보살을 번갈아 불렀다. 방안의 대기조는 쩔쩔매는 연희를 아는지 모르는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자격증 취득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본은 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연희가 쩔쩔 모습을 몰래 보고 갔을지도.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고 있을 그를 생각하자 무거운 비애가 느껴졌다. 

 ‘마수걸이를 잘 해야 다음, 그다음 손님으로 이어지고, 남편 학업까지 연쇄적 링크로 연동될 터….’


 시작한 지 어언 2시간이 넘어서고 있었다. 숨소리, 가위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손님이 얼마나 더 해야 되는지 물었다. 거울 속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눈을 황급히 피하며 얼버무렸다. 

-well…um um…. 

 거울 속에서 얼핏 스친 남자 뒤의 여자가 무섭도록 이질스럽게 느껴졌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에 어지러이 달라붙은 머리카락, 공포에 질린 눈, 무중력 공간에 홀로 떠 있는 외계인이었다.  

 ‘하늘로 솟을 수도…땅으로 꺼질 수도…앞에 놓인 것이 차라리 고깃덩이라면 여우처럼 입에 넣어버리면 그만…이 거대한 괴물을 어찌해야할지….‘


 두 눈을 손님 목덜미 가까이 바짝 붙이고, 엉덩이는 장끼꽁지처럼 뒤로 기다랗게 뺀 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세는 연희에게 구원의 음성이 들렸다. 

 “Would you stop, Please?”

 수없이 부르며 갈구한 기도에 비로소 신(神)께서 응답했다. 구원의 음성은 방안까지 들렸던지, 현우가 총알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국 사발을 삐딱하게 엎어놓은 것 같기도, 주전자 뚜껑을 살짝 비틀어 올려놓은 듯한, 코미디프로 분장 배우와 갓 삭발한 소림사 중의 눈길이 빛처럼 서로를 관통했다. 

 어느 천재 작가, 예술가가 그 순간의 공기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었으리!      

 눈빛 결투의 승자는 남편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듯한 청년이 지갑에서 5달러를 꺼내, 거울을 받치고 있던 식탁에 던지듯 두고는 허겁지겁 나가버렸던 것이다.     


 질식할 것 같던 무중력의 공간을 허문 것은 남편이었다. 

 “킄킄킄킄, 워어, 워어, 원, 흐흐흐 하하하 으으흐흐 원두마악 지붕, 크흐흐흐 아하하하 아하하. 주전자 뚜껑….”     


 얼마를 웃었을까, 남편이 돌연 표정을 바꾸었다. 

-미국인들은 머리 잘못 깎아도 고소를 한다던데, 괜찮을까? 그나저나 내일 파마 손님은 어떻게 하지?

-그렇잖아도….

-못하겠다면 바로 전화주어야지. 

-….


 시커먼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려 떨어진 바닥과 주변을 청소하며 현우가 물었다. 

연희는 소파에 모로 기댄 채 무심히 현우의 운동성에만 눈길을 주었다.      

-뭐 먹어야지?

 청소를 마친 현우가 부엌 냉장고를 뒤지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저녁도 놓친 것 같다.

-내가 할게.


 그때서야 연희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부엌으로 다가갔다. 

-밥솥에 밥 있고 김치 있으니… 대충 먹자.

 현우의 말에 대꾸도 않은 채 연희는 김치를 잘게 쓸고 참치 캔을 따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그 위에 계란프라이를 얹은 두 접시를 단란하게 올렸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좀 더 침착히 생각해보자. 내가 일자리 더 알아볼게. 

 현우가 주걱만한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설거지를 끝낸 연희가 내일 파마예약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거실에 미용 도구들을 세팅했다. 

-당신, 하려고? 

-응.

-일주일만 더 생각해보자, 무슨 일이든 급하면 체하기 마련….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곳이 아득한 절벽, 아래는 푸른 바다가 아가리를 벌린 채, 앞에는 총 든 적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어, 바다로 뛰어내릴 수 없으니….’

 연희는 차마 말을 뱉지 못했다. 현우가 일자리를 더 늘리겠다는 말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머리가 어깨를 넘어 허리 절반까지 내려온 여성이 두 번 째 손님으로 왔다. 터키에서 온 학생이라고 했다. 피부색과 머리는 검은데 이목구비는 서양인을 닮은 외모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커트는 하지 말란다. ‘물결 같은’이란 표현을 쓰며 약한 웨이브를 강조했다. 

-wavelike, wavelike, wavelike….


 연희는 입속으로 그녀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점점 작아지려는 자신을 다독였다. 억새풀같이 거친 머리숱에 벌써부터 압도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격증 준비하던 마네킹교본 머리는 목 라인을 살짝 덮는 수준이었다. 일정한 길이의 영혼 없는 가짜머리만 주구장창 시간 재며 연습한 것이 다였다. 


 긴 머리가 짧은 것보다 쉬울 줄 알았다. 착각이며 기우였다. 머리끝에서 두피로 말고 가는 동안 짧은 머리카락이 대열에서 낙오하는 바람에 함께 이끌고 가느라 진땀이 빠졌다. 더 얹어, 천신만고 끝 간신히 두피까지 말고 들어간 것 또한 봉분처럼 불룩하니 로드를 덮어 고무 밴드 끼울 자리를 찾지 못했다. 

 말아도 말아도 끝없는 머리카락이 드높은 태산처럼 아득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와인딩이 무려 3시간 지난 5시 무렵 끝이 났다. 

 어설프게나마 말린 헤어에 파마약을 도포하고 비닐 캡을 씌웠다. 직모인 헤어 조직이 둥근 로드를 따라 파괴되어 구부러지기만 하면 되었다. 

 약 1시간 프로세싱 타임이 있다고 하자, 손님이 가져온 책을 꺼내며 보고 있겠다고 했다. 

 연희는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차를 대접했다. 

-Thank so much

-Your welcome.

 알아듣기 쉬운 영어는 답하기도 쉽다. 


 배운 절차대로, 약 1시간여 만에 손님을 화장실로 데려가 와인딩한 머리를 헹구고 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은 다음 중화제로 다시 도포했다.      

 장장 5시간 걸려 완성된 프로젝트였다. 결과에 대한 기대는 당사자보다 연희가 훨씬 더 간절했을지 모른다. 죽느냐 사느냐, 두 개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으므로. 

 도 닦는 심정으로 로드 하나하나를 풀어나갔다. 

-Wow! good! I like it! 

-Yeah, looks beautiful. 


 긴 시간 아무런 불평없이 차분히 책을 읽고 있던 그녀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머리를 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연희도 그녀 말에 맞장구치며,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홀연히 나타난 신기루였을까? 욕실에서 머리를 감기고 나오니 구불거리던 웨이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웨이브 진 곳은 심하게 꼬불거리고, 나머지는 생머리 그대로가 아닌가! 

 짚북데기 같은 머리를 싸안고 그녀는 괴성을 질렀다. 

-What’s happened? Is this my hair? 


 방에서 장전된 채 있던 현우가 다시 총구 밖으로 튀어나왔다. 

-잘못 된 거야?

-파마가 제대로 안 나온 듯, 나도 왠지 모르겠어.

 부부가 한국말을 주고받는 사이, 손님이 머리를 감싸 쥔 채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What’s wrong? Is this for real?

-Take it easy lady. 

-How can I calm down? 

-Sorry Sorry, My wife will give you this free.

-No, No, Noup….


 이때까지 차분하던 그녀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연희와 현우를 덮칠 기세로 달려들었다. 

-Do you have the cosmetologist license?

-Yes, She has.

-Let me see.


 연희에게 미용사 자격증이 있느냐는 물음에 현우가 ‘예스’라고 답하자, 그녀가 보자고 했다.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방으로 들어간 연희는 ‘한국미용기술자격증’을 가지고 나와 그녀에게 보였다. 

-What is this? Is this cosmetologist license? Oh My Goodness! No, No…I’m gonna sue….


 세종대왕이 만든 대한민국 글씨를 보고는 더 흥분하며 급기야 ‘sue(고소)’란 말을 입에 올렸다. 

-우리는 당신의 헤어복구비용 뿐 아니라 그 후 서비스에 해당하는 비용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진정하십시오.

-How much?

 현우의 돈을 물어주겠다는 말에 그녀가 정색하며, 얼마를 주겠는지 물었다. 

-How much are you asking?(얼마면 되겠습니까?)

-Five hundred dollers!

 ‘뭐어? 오백 달러?’

 연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백불이라니!

 “five hundred dollers, five hundred dollars….”


 현우는 비교적 차분한 성격이지만, 감당 못할 큰일 앞에선 얼굴의 핏기가 사라지는 편이다. 백짓장 같이 하얀 얼굴로 오백달러를 가락처럼 읊었다. 

     

 잠시 후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손님을 소파로 이끌었다. 

-여보, 여기 차 한 잔 부탁해요.


 집안에 다양하게 구색 맞춘 차가 있을 리 없었다. 한국에서 유행하던 믹스커피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 

 아까 대접했던 인삼차를 다시 그녀에게로 가져갔다.      

 남편이 떨리는 음성으로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가 돈을 벌기 위해 아기를 한국에 데려놓고 왔으며, 코리아에서 미용라이선스는 취득하기 결코 쉽지 않은 자격증, 단지 트레이닝이 부족했을 따름, 형편이 어렵다는 점 등을 털어놓으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다. 

 어느 지점에서 그녀 감정이 움직였는지, 3백 달러로 합의를 보았다. 


  *섀기 커트(shaggy cut): 머리카락을 층을 내면서 숱을 쳐서 자르는 방법. 미국의 헤어디자이너인 폴 맥그레거에 의해 창안된 커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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