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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Jan 05. 2024

재벌이 되기까지-제 13화

The River of dreams


위스콘신 매디슨의 겨울은 길고도 춥다. 9월 중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이듬해 4월경 아쉬운 듯 물러난다. 봄ㆍ가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고 긴 여름과 겨울이 이어진다.

 한국에 있는 동안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대한민국’이란 내용을 접할 때마다 ‘오죽 자랑할 게 없으면….’ 라고 빈정대기까지 했다.


 너무 가까이 다붙어 있어서였을까? 전모가 드러나는 위치로 물러서고서야 비로소 그 실체를 느낄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선명하게 구분지어지는 고국의 사계절이 박물관에 걸린 명화만큼이나 귀하고 가치 있게 다가왔다.


 지난해 매디슨에서의 겨울은 양극단의 최고점을 오갔던 시간이었다. 평소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경했던 이면에 모든 미제품이 국산품을 앞지른다는 편향된 사고 또한 바탕하고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곳간의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조차 특별하고 우등하게 느껴졌다. 감질나게 내리는 한국의 눈(snow)과 차원이 다른 것처럼.


 하늘에서 주먹 만 한 눈송이들이 쏟아지고, 땅에선 하얀 대지가 쑥쑥 올라온다.

 광활한 대지가 하얀 융단에 덮인 절경은 가히 '신의 걸작품'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연일 눈이 내리는 날엔 낮밤이 헷갈리기도 한다. 캄캄한 날씨가 그 경계를 지워버리는 이유다. 우중충한 날씨 또한 연희에겐 신비스러울 따름이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우주만물은 ‘before, after’ 로 경쟁하고 비교당하며, 명맥을 유지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정립하고 있던 터였다. 눈 내린 풍경, 인간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치우는 작업, 전자와 후자를 이전과 이후로 설정하여 링크로 연결해보았다. 환상적 궁합이 따로 없다.

 약 1m 높이까지 쌓이는 대 장관에 넋을 잃으면서도 마음 한편 저 많은 눈을 어떻게 치우지, 라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흥부가 놀부 걱정한 꼴이었다.

 적설 양, 인도ㆍ차도에 따라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제설기들이 연극무대 주인공처럼 등장하여 묘기 부리듯 눈을 해치웠다. 천지가 개벽한 느낌이었다.

 ‘저런 기계들이라니….’

 눈이 내리는 날마다, 공상과학영화를 접하는 느낌으로 ‘before, after’를 감상했다.



 세상 이치는 자신의 입지에 따라 굴절된 스펙트럼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처음 남편에게 장학금을 제시하며 입학을 허가했던 A교수와의 사이가 틀어지며, 영화의 시나리오가 순식간에 ‘upside down’의 위치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카드 엽서에 등장하고도 남을 아름다운 설경, 제설기들의 현란한 몸짓들이 A교수와 한 몸인 듯, 풍요속의 빈곤, 박탈감을 안겨주는 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사이렌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니 바깥활동을 주의하라는 경고음이다.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난 연희는 매월 15일 전국적으로 울리는 민방위훈련 경계경보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문학에 몰입하기 시작하며 그 소리에 울렁증이 생겼다. 소설 ≪태백산맥≫, ≪지리산≫ 등의 등장인물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그 한가운데 자신이 있는 듯한 환각ㆍ환상이 일었던 것이다.


 전혀 결이 다른 울림이었지만, 적군이든 아군이든 무찌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소설과 다를 바 없었다.


 조금 내린 눈에 전기 끊어지고 수도관 터졌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으로 장식되는…, 너무나 인간적인 대한민국이 눈물겹도록 그리웠다.   

   

 며칠 동안 집안에 갇힌 연희는 갑갑증을 견디다 못해 외출을 결심했다.

 단단히 무장한 채 멘도타 호수로 향했다.

 호수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었다.

-Hello, Hello?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경찰차였다. 미국 경찰차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사람 가까이서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증명이라도 하듯 차문을 연 경찰관이 조용한 음성으로 그녀를 부른 것이다.

-Me?

-Yes, Lady, You must return back home.

-Thank you for your concerns, But I have to take a walk.

-Sorry, You can’t! too cold.

-I am ok. Sir.

 연희는 경찰에게 관심은 고마우나 운동이 필요하다며, 계속 걸을 뜻을 내비쳤다. 급기야  차에서 경찰관 한 명이 내려 기어이 그녀를 차에 오르게 했다.

 간단히 덜미 잡힌 채 물건처럼 집에 옮겨졌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눈이 멈추지 않았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 집 앞 눈이라도 치우고 싶어 빗자루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이르는 길을 허리 굽힌 채 쓸고 있었다.

-Hello?

-What’s happened?

-안돼요!  Ha Ha Ha Ha…, I can speak Korean, 감사합니다, 안돼요, all that sort of things.

-Good job! Could you allow this work to me, I need some work.

-Oh no! This is my job, my pay, Ha Ha Ha Ha….

 작은 권리마저 박탈당했다.

 망연자실한 채 보고 있으니, 개가 밥그릇 핥듯 깨끗이 치운다.


 미친 하늘의 오작동 같다. 도대체 며칠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는지…, 매일같이 울려대는 제설기 소리에 영혼이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는 동안 ‘왱왱‘ 소리가 현관 바로 앞에서 그녀를 놀리듯 공격해왔다.

 현관문을 발칵 열어 제치며 고함을 질렀다.

-I am pregnant! too noisy, please stop stop!

-Oh so sorry, wait a minute, Lady.


 미국에 와서 느낀 건, 사람들 언행이 부드럽고 친절한 것 같지만 돌아서서 제 할 짓(?) 다 한다는 사실이었다. 못마땅한 일에 감정을 분출하며 딱 잘라 말하는 한국인들이 백번 나았다. 이중 삼중의 민낯들 천국에 환멸이 느껴졌다.

 “이 발달된 문명에 저주 있으라!”   

  

 씩씩대며 옷을 걸치고 호수로 나가다 경찰차를 발견하곤 되돌아왔다. 연희의 간 크기(?)로  경찰이 무서웠던 건 아니다.

 “저 동양인… 또 돌아다니네… 쯧쯧….”

 열등감 높은 사람에겐 조롱이나 비웃음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인지 모른다.      



 ‘차라리 한국에서 돈을 벌어 이곳으로 보내주었더라면… 아들과 떨어지지 않았을….’

 지난겨울을 돌이키며,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있는 연희를 깨운 건 학교에서 돌아온 현우였다.

-아앜, 깜짝이야!

-왜 그리 놀라?

-어어? 아아, 아니야.

-I have a good news!

-뭐?

-캠퍼스 내 화장실 청소 당첨됐어!

-!

-세차장 알바를 했었는데 오늘부로 그만두었어. 노가다도 해본 사람이 하나봐, 아직 가을인데 어찌나 춥고 손 시운지….

 ‘bad news’였다. 근래 들어 늦은 밤 들어오는 현우의 얼굴과 손이 동상이라도 걸린 듯 시뻘겋다못해 푸르죽죽했다. 연희는 의식적으로 현우 일을 알려 하지 않았다.

 현우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 병환으로 어려웠으나, 차츰 건강을 되찾은 아버지가 한국전력 수금사원으로 취직하는 행운을 얻어 시골 살림치고는 따뜻했다. 고된 바다 일은 물론 집안일에서도 그는 해방되었다. 차츰 두각을 나타내는 큰아들이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시부모에게 장남 현우는 천금 만금…, 하늘, 땅 우주였다.


 남편 뒷바라지 하겠다고 아들까지 떼어놓은 채, 멀쩡한 사지육신으로 무위도식하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여자는 깃발처럼

베란다 난간에 서 있다

가위눌린 외침,

살려주세요, 집이 칼을 들고있어요

아무도 듣지 않는

허공의 늪으로 나서며

바람처럼 깊이 칼끝을 안는다

길게 늘어지는 칼,

추락할 줄 알았던 여자는 날아오른다

<연>-김운화     

 

날지 않고는 추락할 선택지 밖에 없던 연희에게 섬광처럼 번뜩이는 무엇이 있었다.

  ‘하아! 그 생각을 못하고….’



 일요일, 1달러를 준비해 한인교회로 갔다.

 예배 끝난 후 목사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목사님, 노동허가서 없이 일할 곳이 없을까요?

-교포들이 많이 사는 시카고 같으면 모를까, 이곳은 이민 온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여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기도해주겠다는 목사 앞에서 연희는 다시 한줄기 서광을 발견했다.  

 ‘오오! 마사!’    

 

 마사가 처음 긴자를 소개할 때, 자신의 큰아버지 가족이 시카고로 이민 와 일본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대박이 나며, 사촌형들 너도나도 식당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시카고 본점은 맏이가, 매디슨 긴자는 둘째가 운영한다고도 했는데, 오로지 매디슨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던 까닭에 나머지는 흘려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지도를 펼치고 시카고를 찾았다. 매디슨 시에서 시카고 다운타운까지 149마일(240km), 자동차로 2:30~3:00 걸리는 거리였다. 넓은 땅 미국에서 불법 체류, 불법 고용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시카고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다니!      


 토요일, 현우와 함께 마사가 준 주소를 들고 시카고로 향했다. 시카고 북동쪽에 위치한 일본 정통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사촌들이 운영하는 식당 중 시카고 본점이 가장 규모 크다고도 했다.

 ‘아카사카‘라는 자그마한 간판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미국의 상점이나 가게들은 하나같이 작고 예쁘게 디자인된 간판들을 달고 있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간판에 대해 현우에게 물었다.

-간판들이 왜 저렇게 작아?

-그렇지? 주변경관과 어울리게 설계ㆍ설치한대.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너도나도 조금이라도 더 앞장설 새라 큰 간판을 대문짝만하게 달거나, 그것도 모자라 형형색색 입간판, 배너 등을 가게 앞에 세우는 한국, 커다란 간판보고 들어간 식당이 테이블 서너 개 있는 좁은 공간이어서 놀란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도시의 미관…주변경관과의 조화…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


그 후 미국 어디에서 간판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는 몹시 씁쓸한 기억을 동반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간신히 졸업한 연희를 어느 사람 앞에서나 과대 포장하여 소개하는 엄마가 오버랩 되 것이다.

 “공부를 잘해 대한민국 최고 명문인 M여고 졸업 후 대기업에 근무….”

 명문 고등학교 들어간 것은 맞지만 3년 내내 꼴찌를 면치 못한 채 간신히 졸업장만 받아 나온 신분이었다. 엄마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내세울 때마다, 연희는 표정관리 하느라 허둥댔다.

 모녀는 그래놓고 돌아서 서로 불편해했다.


 열등감 높은 이들이 기죽지 않으려고 까치발 들며 안간힘 쓴다는 것을, 미국의 간판들에서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지점에선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졌으니.



 마사와 꼭 닮은 중년 남자가 그들을 맞았다. 사촌동생에게 얘기 들었다며, 영어는 문제없는지 물었다. 엄마로부터 습득된 연기와 긴자에서의 별(?) 하나 단 이력으로, 연희가 급히 ‘예스‘ 라고 답했다. 현우가 당황하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 것을 연희가 툭 쳤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노동허가서에 대한 말을 먼저 꺼냈다. 시카고는 미국 내에서도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에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로, 그들에 대한 감시나 통제가 약한 것이 사실이란다. 자신의 사업장에도 불법체류자 신분 몇 명을 고용했음을 털어놓았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아카사카를 나오는 그들에게 사장은 숙소에 대한 팁도 주었다. 다운타운 어디쯤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곳에 원룸을 구하는 걸 추천했다.


 “신은 죽지 않았어!”

 아카사카를 나오며, 연희가 하늘을 향해 외쳤다.

 

 고속도로를 약 20~30분 달려 나와 한인촌에 들어섰다. 지나는 동양인에게 말을 걸자 한국말로 답하는 게 아닌가. 미주한인신문 파는 곳을 물었다.

 차를 서행하며 동포가 알려준 곳으로 갔다.

 “어어 여보, 저기, 저기 한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날의 감격이 그러했을까? 가판대 버젓이 꽂혀 있는 한글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코인을 넣어 신문을 빼고는 차 안에서 머리를 박은 채 광고란을 살폈다. 저렴한 순으로 전화번호를 메모하고, 바로 옆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들리는 한국말에 다시 나라를 되찾은 듯(?) 울컥했다.      


 두 번째 찾아간 집이 마음에 들었다. 2층 건물로 1층엔 주인가족이, 2층은 인남자 어머니가 기거하며, 세입자를 관리한다고 했다.


 연희에게 해당된 방은 복도 한가운데 위치한 창문 없는 방이었다. 애초 방으로 설계된 게 아닌 창고로 여겨졌다.

 값비싼 방들은 모두 한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현우는 방에 창문이 없는 것을 걱정하며 몇 군데 더 들러보자고 했다. 하지만 연희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당일치기로 면접, 방 계약까지 완료한 두 사람은 다시 매디슨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현우는 학교로, 연희는 내일 다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시카고엔 미시간 호수, 매디슨엔 멘도타 호수가 있다. 물맛을 보기 전엔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파도가 일렁이고 아득한 수평선이 보인다.

 ‘호수에서 발생하는 수증기가 물안개로 피어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동화나라 낭만을 상상했었다.


 안개가 고속도로를 꽉 메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 산길에서 길을 잃었거나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느낌이 그랬을까? 살아날 확률이 희박한 서바이벌 전쟁에 뛰어든, 공포요 두려움이었다.


 차안의 지도를 살피며, 시속 10~20마일 속도로 천지분간이 안 되는 길을 어림짐작으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곡예, 목숨을 담보한 운전을 주말마다 연희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두 사람이 압축되었다.

 누군지 모를 침 삼키는 소리만이 차 안의 적막을 갈랐다.

-안개 주의보, 이런 일기 예보 있겠지?

-내가 오라고 하기 전엔 매디슨 집에 오지 않는 게 좋겠다. 최대한 빨리 학위 취득하도록 노력할게!

-항상 안개가 이렇게 많이 끼이겠어?

-두 도시 모두 호수에 둘러싸여 안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특성을 안고 있어. 일기예보가 소용없을 거야.

-내가 다녀가지 않으면, 당신 뭐 먹고 살 건데?

-내 걱정은 마! 굶지 않으려는 게 인간의 본능, 캄캄한 밤 당신 혼자 운전해서 온다고 생각해봐. 공부가 제대로 되겠어?

-일어날 일은 좋거나 싫거나 일어난다고 생각해!

 현우가 먼저 입을 닫았다. 지금껏 심줄보다 질기고 강한 연희의 고집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옳다 싶은 일엔 돈키호테처럼 밀어붙이는, 결국 자신의 신념대로 하고 말 것이다.


 시카고 매디슨 간 대중교통이 있다고는 들었으나 애초 불가능한 방편이었다. 차 없이는 발이 아무런 소용 다.



 냉랭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지, 현우가 라디오를 켰다.

 알아듣지 못할 꼬부랑 말 뒤에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집에 있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이면 날마다 듣던 노래였다. 처음 연희는 저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가 자신들을 조롱하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디오, TV 할 것없이 틀면 나오는 노래였다.

 미국 땅을 떠나지 않고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기며, 가사를 들여다보았다.

 ‘세상에나!’

지치고 힘든 마음이 일순간 녹아드는, 그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노래가 아닌가,

현우와 가사를 음미하며, 물처럼 공기처럼 노래를 흡수했다.


Billy Joel의 <The River of dreams>!      

한밤중에 난 꿈속을 걷고 있어

진실의 사막을 지나서 그렇게 깊은 강으로

우린 모두 바다에서 끝이나

우린 모두 시냇물에서 시작해

우린 모두 따라서 갈 거야

꿈속의 강을 따라

한 밤중에     



 현우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순간까지, 연희는 특별한 주말을 제외하고 안개 낀 고속도로와 사투를 벌이며 두 도시를 오갔다.

 낯선 세상에 태어나, 다시 낯모를 세상으로 던져진 아들, 부모, 아내, 자식까지 볼모로 잡은 남편의 무게, 평생 실제 평수보다 더 큰 간판을 머리에 인 채 살아오신 엄마…. 이 모든 서사가 <The River of dreams>를 배경으로, 활화산 같이 활활 타오른 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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