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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Jan 12. 2024

재벌이 되기까지-제 14화

제3부: 밥상 주인

이현우 일기    

   


미사리에서, <The River of dreams> 노래가 현우의 달팽이관을 통해 인체로 접선되는 순간, 마치 고압 전류에 감전되기라도 하듯 온 몸이 굳었다.

스위치 된 전류는 오만가지 잡념으로 뒤죽박죽된 뇌 속 메모리를 점점 지워가는 동시에 단 하나의 전경을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꿈과 사랑, 희망, 절망, 고독으로 점철되었던 매디슨에서의 유학생활이었다.

 펄펄 끓었던 심장이, 애절한 그리움이, 피맺힌 절규들로 채워진 시간들이, 텅 빈 머릿속을 파노라마처럼 훑고 지났다.

  

시간을 거슬러, 하염없는 상념 속에 빠져있었다.

   


 온 가족의 희생을 딛고 올라선 지점이 명퇴당한 후 오갈 데 없이 숨어든 곳이 ‘미사리’라니, 혹사시켰던 가족구성원에 대한 배은망덕이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나 다름없다.

 내가 이러려고 그 고생들을 시켰나?” 

              

 참 어리석게도 돈이 힘이며 권력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나무만 보고 산을 오르고 보니, 케이블카 타고 정상에 오른 자들이 이미 산을 점령하고 있었다.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현실은 자본주의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가장 공정하고 청렴해야 할 교육계에서 그런 부조리가 횡행한다는 사실은 아무리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교수라는 직업을 굳이 상거래개념으로 따지자면 지적재산을 다른 쪽 저울 위에 올려 엇비슷한 중량으로, 물물교환처럼 맞바꾸 줄 알았다.

현물로 매입한 뒤 본전을 위해 학생 개개인을 돈으로 매수하라는 뜻인가?     

 

 "이게 나라냐?"

 미국 L사에서의 시민권 제의까지 뿌리치고 돌아온 자신에 대한 국가의 모독으로까지 여겨졌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주일여 동안 미사리로 출근하며 얻은 게 있다면 발상(發想)의 대전환이었다.

 지금껏 재벌을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들의 전유물로 착각했다. 현생의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상징(!)이며 가치라는 걸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학창시절 상장, 장학금 등을 받기위해 안간힘 쓰며, 누군가 쳐놓은 테두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 발을 동동거렸다.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인 줄 알았다.

시커먼 보자기 둘려 쳐진 시루 속에서,  정수박이로 쏟아지는 물을 먹으며, 남의 밥상에서 빛나는 음식이 되도록 살찌워졌다.

()수여자, 기관 설립자, CEO 등의 위치에 대해서 무지했다.    

       

 차에서 나와 잔디밭에 앉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반짝이는 물비늘에 구름 몇 점 떠 있는 하늘이 담겨있고, 낮게 내려앉은 하늘 속엔 알록달록한 꽃들과 연초록 진초록 잎들이 다채롭고 오묘한 수채화로 담겨있다.

저 멀리 강 건너 하늘에는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나무들이 자신을 우주의 알고리즘을 연결해주는 듯했다.

 인드라즈 알라의 관계망 속 하나의 종(種), 하나의 그물코로 엮여있는 이현우, 그에게도 강한 잉태의 기운이 느껴졌다.

 “알을 깨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없어! 내가 만든 밥상에 남들이 수저 들고 모이게 하자!”

 노래에서 파생된 전류가 그의 심장을 뜨겁게 펌프질 했다.    

         


  한 사업을 염두에 두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각 가정마다 싱크대 개수대 아래 분쇄기가 장착돼 있는 것을 경험했다. 「디스포즐(Disposal)」이라 불렀는데, 음식물쓰레기 중 딱딱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갈아 물과 함께 배수구로 내려 보내는 장치였다.

 ‘디스포즐’을 보자마자 연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세상에! 이런 문명이라니! 미국X들 머리 좋네! 우리 한국 돌아가면 이 사업하자!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도 이 분쇄처리기 없었어. 아무도 사업 쪽으로 생각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에선 음식물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지?

-일반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렸지.

-이상하네, 좋은 사업 같으면 기업체에서 달려들었을 텐데?

-나도 그게 조금 이상하긴 해. 로열티 뭐어 이런 부담 때문에 설마 대기업 등에서 망설이는 거 아닐까?

-글쎄….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정부가 미국방위산업체 L사에 발주한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미국에 남게 되었다. 가족이 다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연희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나라 싱크대 봤어? 여전히 아무런 장치가 달리지 않았어. 미국에서 신기하고 획기적이라 싶은 것들은 정식 수입절차를 거쳤거나 짝퉁이거나 죄다 한국에 있는 것 같았는데, 유독 저 편리한 게 없었는지 이해가 안가.

-요즘은 한국에서 어떻게 분리하나?

-유학 왔던 몇 년 전이나 비슷했어. 조금 달라진 점은 환경 운운하며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도는 정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듯했어.

-전기세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누구라도 경제적 부담 앞에서 큰 불편 없으면 예전방식을 선호하기 마련이니.

-한국에 가난한 사람밖에 없는 줄 아나봐? 어쩌면 부자들은 이미 들였을지도... 그래도 사업이라는 게 일반대중을 상대해야지 특정부류들만 생각했다간 별로 승산이 없지. 사용자 수가 곧 매출로 직결되니.

-우리 마누라 참 똑똑하다!

-한국 들어가면 꼭 알아보고, 저 사업할 거야. 그동안 누가 아이템 훔쳐 가면 안 되는데….  

   

 당시 연희의 말에 관성으로 응대했을 뿐이었다. 예민한 감성으로 무슨 일에나 감동ㆍ감격을 잘하는 그녀 비위를 맞춰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낮에는 미사리, 밤에는 집에서 노트북과 컴퓨터로 음식물쓰레기 동선을 살폈다. 대부분 매립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구체적 구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여 동안의 미사리를 근무(?)를 마치고 새로운 직장으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각 지자체를 돌며 음식물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시청과 관련 관공서 등지를 돌아다녔다. 해당 공무원들에게 쓰레기처리과정을 물으니 하나같이 귀찮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업무 외적인 일로 여기는 듯했다.

찡그린 얼굴들 속에서 겨우 알아낸 것은 외곽지역에 매립하고 있으며, 과포화 상태라 다른 장소를 물색 중이라는 것뿐이었다. 매립지에 대해서는 너도나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미사리 야유회 가지 않은 날부터 연희는 잠자리조차 거부하며 아이들 방에서 잤다.

평생 식욕과 성욕을 잃어본 적 없는 편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잠자리가 동하지 않았다.

살아 내야 한다는 절박감에 몸이 균형을 상실한 듯했다.

다행히 식욕은 없지 않아, 밥과 국그릇만은 휑하니 비웠다.      

 개가 핥듯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치우는 연희의 눈이 하등동물을 바라보는 듯했다. 밤에 사랑을 나누며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매서운 눈초리가 등 뒤에 꽂힐 때마다 점점 위축되어 도무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눈칫밥 먹는 의붓자식이 이해되었다.

 어른이 된 후 사람이 무섭기는 처음이었다.

       


「미사리프로젝트」의 가장 첫 단추는 추연희 협조를 구하는 일로 여겨졌다. 그녀 도움 없이 성공을 보장할 수 없고, 설사 성공한들 의미 없게 느껴졌다.

성공에 대한 욕구는 어쩌면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심리가 가장 근저에 바탕하는지 모른다. 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본인의 성취감이 충족되기에….

연희와 두 아들, 부모님과 형제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지금껏 자신이 그녀 혜안을 따르지 못했다. 유학생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귀국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년 전 미국에서 몇 년 동안 번 돈을 잘못된 투자로 몽땅 잃었다.

연희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 그녀에게 알리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큰 마음먹고 이실직고하던 날, 연희는 냉정한 표정으로 세찬 죽비를 내리쳤다.

-당신 이름으로 대출 받을 만 한 곳 다 알려줘.

-왜?

-집 사게.

-지금 제정신이야? 돈을 다 잃었다는데 무슨 집을 사?
-제정신이라니? 말조심하고!

-내, 내가 잘못했지만, 집은 몇 년 더 벌어 사자, 이자를 무슨 수로 감당하려고?

-이혼 아니면 대출, 둘 중 하나 선택해!

 싸우다 지쳐 결국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 저 성질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였다.


그녀 지시(?)에 따라 회사 무주택자, 개인 신용 대출 등, 제 1ㆍ2금융권을 통틀어 최고한도로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상가주택을 매입했다.


집을 사자마자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에, 그저 아찔할 따름이었다. 그녀가 강제하지 않았으면 여전히 무주택자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였다.

   

 회사 그만 둔 줄 알면 아마 까무러치고도 남을 것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사어업, 지금 사업이라고 했어, 그렇게 다 까먹고 또? 집 대출금, 아이들 학비, 부모님 생활비, 기타 등등 어떻게 하려고? 차라리 우리 미용실 셔터맨이나 하지 그래?”

기관총처럼 발사될 연희의 독설이 벌써부터 두렵다. 그 총구 앞에서 살아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녀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일어날 일은 이미 각본 짜인 채 무대에 오를 타이밍만 엿보고 있을지 모른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방법으로 작전을 짜는 수밖에.

 연희의 어떤 독설에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참으리라 다짐했다.

'사업' 하나만은 용서해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을 작정이었다.

           

회사 나온 지 며칠 째인지 기억에 없다.

 주말을 보낸 월요일 아침, 연희가 차려주는 성찬을 해치운 뒤 집을 나섰다. 자신의 관할구청에 갈 생각이었다. 편한 복장으로 갈까 하다 회사출근복 정장차림으로 바꾸었다.

자료조사를 마치려면 몇 주가 더 소요될지 몰랐다.

단 하루라도 연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환경청소과 앞에서 순번표를 뽑고 기다렸다. 다른 부서에 비해 유독 대기자가 많아,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의 차례가 왔다.

 창구에서 번호표와 함께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겸손한 어조로 인사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잠시 긴요한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웬 잡상인인가 하는 눈길로 현우를 힐긋 보던 직원이 명함에 눈길을 주었다.

 사회에서 학벌과 현재 위치를 말해주는, 명함의 힘을 현우는 모르지 않았다.  


이현우
카이스트 석사
위스콘신주립대학 공학박사  
H그룹 연구실 수석부장


-저어기 가서,  좀 기다리세요. 뒤엣분 민원처리하고 가겠습니다.

 직원이 가리킨 곳은 민원인들이 북적거리지 않는, 다이닝 테이블과 소파가 놓인 곳이었다.  

    

 잠시 후 그 직원이 현우에게로 다가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다름이 아니오라…,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싱크대 내 부착된 분쇄기를 보고 한국의 음식물쓰레기에 대해 관심 가졌었습니다. 환경의 심각성을 고려하면서요.


 마치 회사가 기획하는 프로젝트처럼, 자신의 절박함을 범세계적 환경문제인양 둔갑시켰다.

-대기업에서 관심 가져주신다면, 저 같은 일개 구청공무원이 아니라 청와대 직통라인을 이용하셔도 될 텐데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일개공무원이라뇨? 청와대가 뭘 알겠습니까? 탁상행정이 실무를 따를 수 없습니다.

-흐흐흐흐, 하기사 청와대에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피곤합니다.

 현우의 말에 웃는 낯으로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었다.

-현재 정부에서조차 뾰족한 대책이 없어 지자체로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정된 땅에 무한대로 묻을 수 없거든요.

-옳은 말씀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음식물쓰레기를 계속 묻다간, 식수오염 등,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파생되거든요.

-땅 뿐만 아니라 바다도 문제예요. 업체들 중 돈 받고 수거해 바다에 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해양생태계까지, 참 보통 일이 아니군요.

-저희 구에서도 많은 세금을 들여 시범처리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요? 시범처리 하는 곳을 가볼 수 있을까요?

-원하신다면…, 담당자에게 연락해 놓겠습니다.   



 공무원이 알려준 곳은 미사리 인근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늘어선 곳이었다.

 허름하게 보이는 건물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악취가 진동했다.

 차에서 내려 건물로 이동하는 동안 허리가 고꾸라지며, 윗 속의 내용물이 왈칵 쏟아졌다.

 더 이상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차로 돌아와 공무원이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방독면으로 완전무장한, 우주인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다가왔다. 멀리 떨어진 채 손짓으로 어디로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했다.

     

 현우는 물티슈로 입을 틀어막은 채 차문을 열고 나와 포탄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처럼 뛰었다.

사무실이었는데, 그곳에도 악취가 배어 몇 번 헛구역질을 했다.  

    

 곧이어 작업복 벗은, 오십대 초ㆍ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들어왔다. 그의 몸이 몰고 온 역겨운 냄새 앞에 또다시 헛구역질이 일었다.


-냄새 마이 나지예?

 현우는 먼저 명함을 건네며, 구청에서와는 다르게 음식물쓰레기 사업을 생각하고 있으며,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해서 왔노라했다.      

명함을 들고 있던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쿠우! 이렇게 공부도 마이 하시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분이 뭐할라꼬 이런 일에 뛰어 들라캅니꺼? 저같이 못 배운 사람들이나….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지만 다행히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경상도 출신으로 여전히 사투리를 쓰고 있는 연희 덕이기도 했다.

     

 직원에 따르면, 음식물 찌꺼기 중 일부는 가축의 사료로 개인이나 업자들이 수거하고, 나머지는 다른 장소에서 침출수를 제거한 뒤 그곳으로 보내온다고 했다.

시범 장에선 건조와 퇴비 두 가지 방법을 시행 중인데, 즐비하게 늘어선 비닐하우스들이 퇴비화 시키는 장소라고도 했다.

차를 타고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풍기던 악취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연희와 아이들도 ‘농작물 재배지에서 왜 이상한 악치가 나지?’ 라며 코를 막곤 했다.


 퇴비화 과정을 묻는 질문에, 음식물쓰레기에 톱밥과 왕겨를 섞어 땅에 묻은 뒤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키며 미생물을 번식시키는 원리라고 했다.

-퇴비 성능과 활용도는 어떻습니까?

-말짱 도루묵이라예.

-왜 그렇죠?

-음식물에 포함된 염분이 땅을 더 배린다꼬, 농부들에게 웃돈 얹어주며 가져가라고 했더니, 농사도 짓지 않는 땅주인들이 너도나도 돈 받고 가져가서는 빈 땅에 묻거나 쌓아둔다 아입니꺼.

-아이쿠우 이런, 그러면 안 되는데요. 지하수 오염의 주범으로 ….

-말하면 뭐합니꺼. 시골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물맛 좋다꼬, 나라 세금이 미친 데로 줄줄 세고 있는데, 정치인들 너도나도 눈 가린 채 아옹하고, 국민들만 등신이지예.

-잘 말리기만 하면, 가장 좋은 대책일 것 같습니다만.

-하모예. 완전히 말라삐마 그것만큼 좋은 기 없지예. 일반쓰레기와 섞어 태우면 되거든요. 쪼매 돌다 멈추면 안에서 반쯤 익은 것들이 지독한 악취로 나오는기라예. 오시는 길 현수막 걸린거 보셨지예?

‘음식물쓰레기 시범장 철거하라’는….

-네에 봤어요.

-냄새 마이 나는 날은 주민들이 데모해쌌꼬, 난리도 아입니더.

-아무리 빨리 말려도 악취는 날 텐데요?

-박사님! 그 정도는 우리 국민들 참아냅니더. 6ㆍ25, IMF도 다 이겨낸 민족 아입니까!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다카는데, 못 참을 사람이 오데 있겠습니꺼?

-건조기 설비 좀 볼 수 있을까요?

-들어갈 수 있겠능기요?

-들어가야죠!     


 현우는 직원이 건네는 방진복으로 환의한 뒤, 모자와 마스크, 방독면까지 착용하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음식물이 한가득 담긴 듯, 불룩한 배를 싸안은 기계가 김을 무럭무럭 뿜으며 멈춰 서 있었다.

그 아래 작업자 세 명이 달라붙어 용 쓰는 게 보였다.

-저 보이소, 하루 반나절도 안돌고, 고친다고 저래쌌는데, 사람 할 짓이 아입니더.   

   

 기계의 원리를 살피던 현우는 의외로 단순한 방식에 놀랐다. 뻥튀기 기계를 확대시켜 놓은 것에 불과했다. 안에 든 내용물이 원심력에 의해 한군데로 쏠리며, 모터에 과부하가 인 것으로 보였다. 내용물이 뭉치면 균형도 문제지만 열 전달이 고르지 않아 건조되기도 쉽지 않다.

저런 하급 시설에 세금이 투입되다니, 참으로 한심한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었다.      


 작업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현우가 설비를 수리하고,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후끈한 김과 악취를 발산하며 기계가 돌기 시작했다.

-우와아! 역시 박사님이라 다르네예!

-고치긴 했지만 오래 못갈 겁니다. 여전히 반복될 문제이기도 하구요.

-그렇지예? 그런데도 구청에서는 끝까지 해보라 캅니다. 쓰레기는 계속 모이지, 어디 둘 데가 있어야지예.   

  

 그곳을 나오며 현우는 더욱 결심을 굳혔다. 음식물쓰레기가 지금껏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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