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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Jan 19. 2024

재벌이 되기까지-제 15화

가장 두려운 적


 매일같이 자료조사를 하고 발품을 파는 동안 대한민국 음식물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동선이 대충 그려졌다. 각 지자체마다 여러 대책들을 시도하긴 했으나 종착지는 결국 매립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 국토가 쓰레기매립장이 될 것만 같았다. 


 정부에서도 처리 방법ㆍ방식을 고민하며 예산을 들이기도 했지만, 미사리 인근에서 보았던 건조와 퇴비화가 전부였다. 

디스포즐에 대해 알아보던 중, 누군가 그 사업을 하려다 실패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환경적인 이유가 걸림돌이었다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쳤지만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시대, 필요하고 편리한 문명은 빛처럼 흡수된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 모든 것과 별개로 그의 마음은 이미 한곳에 홀려버렸다. 마치 신에게 점령당하듯, 시범장에서의 허름한 건조설비에 자신의 영혼이 빨려든 것이다. 장난감 권총에 실탄 장착한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럽던 건조기와 조우하던 순간, 머릿속은 이미 실탄에 어울릴 시뮬레이션이 가동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뇌 속에서 돌고 있는 시뮬레이션을 꺼내 노트와 컴퓨터 등에 공동 저장시켰다. 


 건조설비를 잘 만든다면 일약 스타덤에 오를 것 같았다. 사업가로서의 성공은 물론 지구환경 살리는데도 크나큰 기여를 하게 되어, 노벨 평화상 내지 물리학상까지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육지ㆍ바다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순백의 하얀 도화지에 마음껏 채색할 수 있는, 어느 누구도 발걸음하지 않은, 상업ㆍ사업적으로 미개척 분야임이 분명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도 평생 바다를 떠돌던 선원이었기에 가능했을 터였다. 

기계공학전공자로 고등학교부터 줄곧 기계와 한 몸인 채 살아왔다. 

그 분야만큼은 누구보다 밝은 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신(神)이 나에게 지구 살리라는 사명을 부여… 백만, 천만, 억만, 조 장자…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워렌 버핏… 세상은 꿈을 꾸며 항해하는 자의 것….’



 상상과 환상 속에…, 매일 아침 팔당댐을 지나 양수리 방향의 한적한 카페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점심도 거른 채 종일 건조설비 연구에 미친 듯 노를 저었다. 

지구가 둥근모양인지 편평한지는 나중의 일이었다. 


 길을 걸으며, 운전 중인 차 안에서, 카페에서, 잠자리에 누워…, 신들린 듯 새어나오는 웃음을 누를 길 없었다.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형체(!)에서 뿜어지는, 그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해, 김밥 옆구리 터지듯 툭툭 터지는 몸의 분화, 용암의 분출이었던 것이다. 



 여느 날처럼 아침을 먹고 정장차림으로 밖을 나와, 청계천으로 향했다. 플랜트 제작을 위한 재료구입과 거래처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른 오전의 청계천상가는 갓 잡은 생선이 팔딱팔딱 뛰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상인, 손님 할 것 없이 발걸음에 힘이 넘치고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길가 어느 카세트테이프 노점상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가 저 멀리 북악산까지 닿을 듯, 높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현우야 어디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청계천에서 너의 꿈을 일사천리 이루리이라 

~~~~     

 

노래에 자신을 대입하여 아무 말 잔치로 목청껏 따라 부르며, 청계천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점심시간 이르러서야 얼추 일을 다 보았다.


 비교적 한산한 곳을 찾아,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의 집은 오래된 상가건물이었다. 2층은 연희와 두 아들이 둥지를 튼 살림집이었고, 1층엔 상가 3개가 나란히 있었다. 목 좋은 순으로 식당, 부동산, 연희 미용실이 자리했다. 부동산 자리를 비워달라고 할 참이었다. 

맨 구석에 위치한 미용실 자리가 적당했으나 연희가 비켜줄 리 만무했다. 

더더구나 자신이 백수 된 마당에 그녀가 벌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일찌감치 제외시켰다. 



 부동산은 부부가 함께 운영했다. 대로변 번듯한 상가엔 남편이, 한 골목 들어선 현우네 가게에 부인이, 양 쪽을 오가며 영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신호가 채 울리기도 전에 저쪽에서 받았다. 

-○○부동산입니다. 

-안녕하세요? 재현이 아빠예요.

-오머머머! 사, 사장님께서 웬일이세요?

-미용실에 계시다면, 밖으로 나오셔서 받으시겠어요? 

-아아, 네에, 잠시만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연희 미용실에 있었던 듯했다. 

-예에 사장님, 저희 가게로 왔어요. 무슨 일이세요? 

-좀 있다 뵐 수 있을까요? 아저씨 가게에서요. 

-사모님 모르게요? 

-네에. 부탁입니다.  

-네에에? 아아, 예에. 예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그를 기다렸다.

-아까 놀라셨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허허허허….

-저도 간장한 채 들어왔습니다. 허허허허….

 현우가 남자의 말을 패러디하며, 편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

-혹시 집 세놓으시고, 강남으로 이사 생각하시는지요? 요즘 아이들 교육은 학교가 아닌 대치동에서 한다고 들어….

-전혀 아닙니다. 흐흐흐흐…, 실은 제가 백수가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명퇴를 당했거든요. 이참에 사업을 해볼까 하는데, 제게 공간이 필요해서요.

 현우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둘러 말하다보면 덮은 위에 겹겹이 둘러야 한다. 결국 더 초라하고 궁색해질 따름이었다. 

사람 마음 얻는데 진실만한 무기가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오기도 했다. 


 임대료 저렴한데다 연희미용실을 끼고 하는 장사가 쏠쏠하여 만료일까지 있겠다고 할지 몰랐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할 것에 대비, 며칠 동안 전략에 고심했다. 

결국 인간본심에 그물을 놓기로 했다.    

  

 평소 연희를 통해, 부동산 아줌마 캐릭터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 아줌마 얼마나 웃기는 줄 알아? 다 갖춘 남자와 살며, 자가 건물에서 취미 생활하는 내가 부럽대. 

-모두 좋은 말인데 왜? 

-여자는 버드나무 팔자라 남자 잘 만나는 게 최고의 복이라나? 내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래. 

-그 말도 맞네. 

-현장의 뉘앙스는 달라. 4년제 대학 나온 자신보다 별 볼일 없는 내가 어쩌다 고학력 남자 만나 잘 사는 것으로 배배 꼰..., 듣다보면 기분이 고약해져. 

-천하의 추연희가 그런 수준ㆍ수위의 발언을 마음에 두다니, 쯧쯧.

-거의 매일 우리 미용실에서 자기 영업하거든. 이 손님, 저 손님 붙들고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니까. 내가 전문대 출신임을 손님들에게 알리려는 저급한 술수, 나를 자기 아래로 내리려 안간힘...

-그 아줌마 간 크네. 감히 연희한테 그런 도전을? 당신 고등학교 때 꼴찌 했다는 사실 알면, 아마 조심하지 않을까? 

-반대 아니고? 

-1등이 위로 오르며 성취감 느끼는 동안, 꼴찌는 얼마나 아래로 내려가며 깊이를 적립하는지, 그 심오한 철학을 알려주면 겁 먹지 않을까? 

-와우! 그 '철학' 쥑인다!      


 비슷한 연령의 두 사람이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구분지어진다면, 누구라도 질투심이 일기 마련이다.

 사촌이 땅 사는데 배 아픈 증상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공통적 질병(?)이라 믿었다. 


 자신 역시 그런 감정들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여전히 그런 편이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 선후배가 일찌감치 대학교수로 등용되자 비교저위의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어코 교수가 되리라는 희망으로 회사생활 틈틈이 논문보따리를 들고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쫓아다녔다. 

 그러던 중 친구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 지원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까지 대학주변을 맴맴 거리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서류합격 통보를 받은 지 며칠 후,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대학에 지원했더라? 내가 동료 교수와 학과장에게 너 칭찬 엄청 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놓치지 않은 천재였다고, 되면 내 덕인 줄….

-고맙다. 높은 자리에서 힘 좀 써주라. 히히히히…. 

 결국 그 대학에서 떨어졌다. 


 ‘높은 자리에서 힘 좀 써주라, 히히히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부(?)했던 궁색한 발언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미칠 듯한 악몽에 시달렸다. 

 ‘썩소’가 받쳐진 문장이 박제된 채 자신을 노려보는 괴로움은 말로 다 하지 못할 고통이었다. 

순간순간 머리를 어디든 처박고 싶었다. 


 상심해있는 동안, 그 친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죽을 만큼 받기 싫었지만, 진퇴양란의 수렁에서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다. 

-당연히 네가 될 줄… 나름 애썼는데 안타깝다… 너 정도면 몸담고 있는 대기업 전무, 사장, 나아가 회장직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믿어….

 잔인한 사디스트, 확인사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남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다지려는 심리를 ‘인간본심’으로 확신했다. 어쩌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지위를 구축하는데 가장 밑바탕 된 감정일지 모른다. 타인을 앞지르려는 승부근성이 어느 동물보다 강하다는 반증이니까!   

   


 현우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남자와 달리, 아줌마는 난처한 기색을 거두지 않았다.  

 때를 놓칠 새라 현우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봉투를 꺼냈다. 

-이거 받으세요, 충분치 않겠지만 직장 잘린 사람 마음 좀 헤아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아이구,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자리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해 늘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자동연장 계약이라… 나가라면 당연히….

-그래도 미리 알리지 않았으니 저희 책임이죠, 제가 이렇게 추락할 줄 몰랐구요.


 남자와 봉투로 실랑이 하는 동안 여자가 자기 남편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이러시면 안 되는데…. 

-사장님, 다시 직장 구하시면 그 가게 꼭 저희한테 주셔야 해요! 

자기 남편 손에 들린 봉투 두께를 슬쩍슬쩍 훔쳐보던 아줌마가 현우를 향해 조건부 승낙이라도 하겠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흐흐,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참, 노피심에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당분간 제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오머머머! 그러면 사모님이 아직 사장님 회사 그만둔 줄 모른다는 말씀이세요? 

 여자가 놀란 듯 말을 뱉고는 스스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흐흐흐흐… 그렇습니다. 

-사모님 성격이 불같으신데, 이 일을 어째요? 

-그래서 먼저 뵙자고 했습니다. 

-당신 입 조심해! 함부로 떠들지 말고!

-아이 알았어,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는 줄 알아? 


 남자가 제 아내를 단속하는 틈에, 현우가 다시 득점 포인트를 노렸다. 

-가게는 언제쯤 비워주실 수 있는지요? 매일 공원으로 출근하다보니 할 짓이 아니더군요. 

-허으업! 세상에나! 공원으로, 출근을요? 

 놀라는 아줌마 얼굴에 행복이 만연해 보였다.    

  

오늘이 가기 전 연희에게 알려야 했다. 소문의 속성이 '절대 말하지 말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빛처럼 날아다니기 일쑤였으므로. 


부동산 여자를 통해 자신이 명퇴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연희를 상상하자, 등골이 오싹해왔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미용실 동정을 살폈다. 미스 김과 손님이 두어 명이 있는 것 같았다. 

2층 살림집은 미용실 바로 옆 계단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미용실 통거울에 하부계단이 보였다.   

 연희가 샴푸실과 창고를 오가는 시간을 틈타, 도둑고양이처럼 2층으로 잠입했다.

     

 옷을 갈아입는데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당신 어쩐 일이야?

-어어? 아아… 볼일이 좀…, 어떻게 알았어? 

-미스 김이 당신 올라가는 거 봤다고…, 출장 있어?

-아니.

-그럼?

-회사 잘렸어!

-에이, 내가 당신 개그하지 말랬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당신 통하면 엑기스 걸러진다고. 

-정말 회사 그만 뒀어. 아니 잘렸어!

-파마 손님 커트해놓고 왔어. 내려가야 해.

-얼른 내려가! 



 연희가 본인의 적성에 맞지 않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건 순전히 자신 탓이었다. 

유학뒷바라지 하느라 미용기술을 익혔고, 그것을 빌미로 여차여차하여 미국에서 Beauty College까지 다니게 되었다. 자신의 실수로 가진 재산을 통째 날린 통에 은행이 주인인 집에 사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하루빨리 건물을 은행이 아닌 우리 명의로 돌리자!"

빚에 대한 부담으로 둘째 낳은 지 채 한 달도 안 돼 가게를 열었던 것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세와 그녀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대출원금과 이자 내기에 넉넉했고, 자신의 급여는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어, 이제 겨우 허리 펴나 싶었다. 

 “손님들이 날더러 조물주 위의 건물주, 능력 있는 남편, 사랑스런 두 아들, 다 가졌다고,  그 맛에….”

 그녀 말들이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자신의 말을 시시한 아재개그로 치부하는듯했지만, 분명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인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자신은 늘 연희의 ‘High joke’ 스파링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 앞서서 농담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현이 학원에서 돌아오며 동생 성현을 데려 왔다. 

-어? 아빠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아빠도 이런 날이 있어야지. 

-대박! 아빠, 우리 체스게임하자.

-미안, 아빠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에이, 아빠는 맨날 바쁘대.     


 아이들을 뒤따라 연희가 올라와 저녁 준비를 했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아이들에게까지 말을 섞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로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빠, 우리 이번 여름방학에 외국여행 갈 거야?


 재현은 방학만 되면 해외여행 가자고 졸랐다. 방학이 끝난 후 개학 때마다 해외여행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펜이나 열쇠고리 등을 선물로 받아오곤 했는데, 그것이 못내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나도 해외여행 가면 친구들 선물 많이 살 거야. 


 재현은 자신의 말에 더 무거워진 공기를 느꼈는지 겸연쩍은 얼굴로, 말 위에 말을 덧붙였다. 

-아아 참, 내가 깜빡했네, 우리 가족은 늘 바쁘다는 걸…, 나는 미사리가 제일 좋아. 성현이와 자전거도 타고, 엄마 그치이? 

-응.

-엄마, 우리 언제 또 미사리 갈 거야?

-….

 재현이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듯, 끊임없는 질문을 해댔다. 

-조용히 하고 밥 먹어라.

 연희가 성현의 옷에 달라붙은 밥풀을 떼며 그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아침엔 항상 현우가 먼저 일어났다. 자신이 씻는 동안 연희가 일어나 간단한 아침상을 차려놓은 뒤 다시 자러 들어간다. 

미용실이 늦게 끝나는데다 어린 아이들까지 있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패턴이었다.   

   

 다음날, 연희가 일어나도록, 현우는 침대에 죽은 듯 누워있었다. 

-정말 회사 그만 둔 거야?

-그렇다니까!

-뭐야? 언제, 어떻게, 왜?

-….   

  


 연희가 아이들을 깨워 밥 먹여 학교와 어린이집을 차례로 보내고 돌아왔다. 그때서야 잠옷 바람으로 겨우 방을 나온 현우에게 연희가 2차 포격을 가해왔다. 

-진짜 웃기네. 정말 회사 안 간다고? 

-말했잖아. 그만뒀다고! 

-언제?

-제법 됐어.

-뭐어어? 

-….

-회사에서 명퇴 당하고, 가족들에게 숨기느라 공원 등으로 출근한다더니, 설마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거 실화야?

-실화야! 

-더 자세히 애기해봐! 육하원칙으로!

-그런 것까지 당신이 알 필요 없고, 내려가서 일이나 해!

-보아하니 아랫사람과 갈등이 있었을 리 만무하고… 윗사람에게 적당한 아부는 필수… 어느 조직ㆍ단체 할 것 없이 서로 눈치 살피고 비위맞추는 거,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생체본능이야!

-….

-본인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 바보 아닌 사람 못 봤어! 

-그래, 나 바보야. 그러니 그만해! 

-학교공부머리와 사회생활머리 다르다는 거, 설마 모르지 않지?

-그래, 나 공부만 잘한 사회바보다. 답변으로 충분해? 됐지? 이제 그만 내려가! 

-미국에서 웨이트리스가 내 적성에 맞았다고 생각해? 

-아이~C, 제발 그만 좀 해!

-대답해 봐! 지금 하는 미용일이 내 적성과 맞을까? 

-시끄러! 여기가 무슨 개똥철학 강의실인 줄 알아? 남편이 회사 잘렸으면 마누라라도 벌어야 할 거 아니야. 얼른 내려가!


 연신 나불거리는 연희를 우격다짐으로 현관 밖으로 내보낸 뒤, 보조 잠금장치까지 철컥 걸어버렸다.      

 

 바다는 늘 잔잔하지만은 않다. 폭풍과  파도가 인다.

 ‘원주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콜럼버스….’

 가장 두려운 적군의 우두머리 추연희를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현우의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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