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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Sep 06. 2024

신(神)의 선택ㆍ2~B


장의업자에게 대든 결과는 참혹했다. 그가 나가자마자 들어온 두 사람에 의해 국화꽃 한 줄이 어머니 영정 사진 주변으로 한 바퀴 휘익 둘러쳐지고는, 작업을 하다 말고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 형제들의 수런거림을 뒤로하고 큰오빠가 사무실을 다녀왔다.

“참내, 저, 저게 다한 거라네.”

“이, 이게, 다한 거라구요? / 설마요? / 여, 여기 여백은?”

“소(小)자를 신청했기에, 그 사이즈라고….”


어처구니없는 일에 모두는 분기탱천하여 사무실로 뛰어갔다. 적군이 몰려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지 사무실 앞에 아까 그 담당자가 장승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저게 뭡니까?”

“주문하신 대롭니다!”

“이건 책자의 사진과도 너무 다르고, 저희 옆의 규모 작은 장례식장 제단과 비교해도 터무니없는 것 같은데요?”

“저기도 다 나름 비용이 다릅니다.”

“가서 확인해볼까요?”

“여기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책자에 나와 있는 소(小)자와도 다르잖아요?”

“음식점에 가도 이미지용 사진과 실제 음식과는 차이가 있죠. 오해할까 봐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희는 장례식장만 대여만 할 뿐, 이런 업체들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제단 꽃장식만이라도 다시 특실용으로 바꿔주세요.”

“제사상도 특실용으로 바꾸세요. 그거 얼마 차이납니까? 한 번 가시는 길인데 좋은 거 해드려야죠.”


모두는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만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일단 제단만이라도 특실용으로 해주세요.”

“모두 세트로 주문이 가능합니다!”

“애초 선택사항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아마 잘못 이해하신 거 같습니다. 장식이든 제상이든 세트로 들어간다고 말씀드렸어요.”

“형! 하지 마세요! 저것들 순 장삿속으로…. 깡패야 뭐야?”

“깡패에겐 깡패로 맞서줍니다!”

“뭐어? 이 XX놈들이?”


둘째 오빠가 다시 그에게 돌진하려는 순간, 사무실 안에서 건장한 어깨 두 명이 나타났다.

“이보쇼, 형씨! 어무이 좋게 저승으로 모시려면 특실용으로 바꾸덩가, 아니면 저걸로 조촐하게 하덩가! 널럴하이 보기 좋소!”


“그냥 저대로 하입시더!”

추상같은 동생의 한마디에 모두는 칼집에 손조차 대지 못한 채 하나둘 빈소로 들어오고 말았다.    

 

현숙은 제단 앞에서 조의를 표하는, 특히 그녀와 남편 연으로 오는 조문객들 앞에 너무 부끄러워 예를 갖추기 무섭게 테이블로 안내했다. 꽃으로 채워지지 않은 벌건 체리색의 빈 공간이 자신의 알몸을 내보이는 것만큼이나 낯 뜨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언니는 처음에는 형제들과 함께 동조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였다.

“절에서 하는 상조회에 저렇게 쪼잔하게 따지고 드는 사람 처음 본다. 저기 무슨 꼴이고? 친구들한테 남사스럽고, 절에서는 또 우째 고개를 들고 다니노….”

“언니! 저것들이 나쁜 놈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해먹으려는…. 책자에도 저 옆 빈소에도 최소 사이즈 국화가 분명히 석 줄이었어.”

“그림하고 다르다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옆에 소실(小室) 봤어? 국화꽃이 우리보다 훨씬 풍성했어. 가격 물어보려는데 나를 딱 막아서더라.”

“그러니까, 처음부터 저 사람들 심기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그거 몇 푼이나 한다꼬!”

“언니! 그게 말이야 말씀이야? 누가 누구 심기를 건드린 건데?”

“절에서 하는 상조회는 별로 마진 없이 봉사하는 차원에서 하는 사업이라더라.”

“봉사 좋아하시네.”

“니가 절에 대해 뭘 아노?”

“봉사든 아니든 누가 보더라도 금액이 상식적이어야 하고 또, 굳이 마진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 자기들이 저렇게 열 올릴 필요가 뭐 있어?”

“누나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언제 나타났는지 동생이 그들 자매 옆에서 서늘한 음성으로 일갈했다.


동생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하얀 페인트를 칠한 듯, 검정색 상복과의 대비가 마치 저승사자로 분장한 연극배우 같기도 했다.

그의 말이 곧 법이었던 만큼 침묵 또한 상응하는 무게로, 장례식장 분위기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동생의 이러한 권력(?)은 여기저기 공처럼 굴러다니던 어머니를 모신 것과 그의 장애가 가족의 부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거였다.     


군청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올망졸망한 5남매를 남기고 뜻밖의 사고로 사망했다. 재산으로 선산과 전답이 조금 있었지만 모두 도지를 내주고 아버지 월급으로 생활해왔던 집안은 하루아침에 하층으로 곤두박질쳤다. 맏이인 큰오빠를 선두로 중학생 초등학생들이 줄줄이었다.


어머니는 도시로 이주할 계획을 갖고 자식들을 차례로 대구로 보냈다. 순전히 두 딸을 희생타 삼았는데 언니는 아들들 도우미로, 현숙은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조수로 시골에 두었다.


어머니의 결정에 순순히 뒤따르던 언니가 변하기 시작한 건 주경야독으로 오빠와 두 남동생들을 뒷바라지해가며, 기어이 산업체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였다. 방송통신대학을 지원하며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어머니는 현숙이가 여상 졸업 후 바통을 이어받을 때까지 참으라고 했으나 결국 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세월은 현숙의 집안 분위기와 상관없이 한 치 오차 없이 흘렀다. 큰오빠는 한시도 편할 날 없는 집을 가출하듯 군대에 자원입대했고, 공부에 별 흥미가 없었던 둘째 오빠는 일찌감치 기계공고로 진학했으며, 동생은 대구 시내 명문중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하며 어머니의 바람과 기대와 바람대로 수재의 면모를 과시했다.


두 아들이 어설픈 자취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바야흐로 사춘기를 맞은 데다 원래부터 놀기를 좋아했던 둘째 오빠는 주말마다 밤마다 친구들과 싸돌아다니느라 동생 건사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동생이 등교하지 않은 사실을 전달받은 어머니가 부랴부랴 집주인에게 연락하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구들장으로 새어 들어온 연탄가스에 동생이 중독됐던 것이다.

병원으로 들어간 동생은 몸의 3분의 1이 마비된 장애인이 되어 나왔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병원에서의 3일장을 끝내고 시골의 장지로 향하는 날이었다. 동네 상포계는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장으로 바뀌는 시대로 접어들며 일부 회원들이 탈퇴를 하며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초상이 나면 상갓집에 온 동네 사람이 모여 가는 이를 진정으로 슬퍼하며 울음으로 배웅해주던 장례식 장면이 현숙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원색의 종이로 만들어진 육칠 층 높이의 화려한 상여를 향해 어머니도 상체를 15도가량 기울인 채 손수건을 입에 대고 울었다. 어머니의 울음이 낯설고 두려웠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까지 이어져 상여에 대한 극한 거부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었다.

그러나 서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어가고, 어머니의 생존 가망이 없고부터 상여에 대한 환상이 일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도의 불구덩이 속에서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나오는 화장장보다, 꽃으로 장식된 요람 속에서 몽실한 뭉게구름을 타고 하늘로 떠나보내는 의식이 한없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 숭고한 하늘 행 열차에 자신의 불효와 죄를 몽땅 실어 보내려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웬일인지 동네가 썰렁했다. 동네 사람들이 동구 밖에서 그들 가족을 맞으며 곡을 하리라 예상하고 벌써부터 목이 메어 눈물을 찍어냈던 터라 현숙의 손수건은 이미 흥건히 젖어있었다.

장의차가 현숙이네 집 앞 도로로 들어서자 그때서야 장정 몇 명이 어슬렁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고 고대해 마지않던 상여가 한낱 부스러기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닌가!


그녀 기억 속 겹겹으로 풍성하던 종이꽃이 얇은 홑겹으로, 어린 키를 훌쩍 넘어 위압감마저 느껴지던 6~7층 높이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싸구려 물감이나 검정 매직펜 등으로 애써 층수를 표시해 놓은 듯했다. 운구가 들어갈 상자는 누군가의 입김으로도 휙 날아가 버릴 듯한…. 조악하고 저급했으며 성냥갑 같은 무게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망스런 마음을 채 추스를 새도 없었다. 상여꾼들이 하나같이 그들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듯 날 선 반응들을 보였다.

“요즘 장례가 모두 간소화되고 있는 추센데, 이렇게 추운 날 굳이 노제를 지내야겠어?”

누구에겐지 모를 선전포고에 큰오빠가 대뜸 나섰다.

“노제 지내는 비용까지 상포계금에 포함됐으며 다들 그렇게 해왔잖습니까? 제가 직접 상여를 멘 적도 있고,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꼬박꼬박 내왔으며, 또 사람을 사서 넣어드려….”

도시에 살고 있다고 들은 명대 아들이 눈을 희번덕대며 혼잣말처럼 씨부렁거렸다.

“오늘 산까지 갈라꼬 저카나 아니면 여서 썩게 놔둘라카나?”

“무슨 말이 그래?-뭐 이런 기 다 있노?-확 그냥….”

며칠 전 병원에서 원수처럼 붙어 싸웠던 두 오빠와 동생까지 한 팀이 되어 명대 아들과 맞섰다.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현숙 남편이 상여꾼 대표가 누군지 묻고, 벼슬처럼 나서는 명대 아들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 주었다.

“어허, 이 서방 그러마 안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곗돈을 한 번도 빠짐없이 내왔고, 당연히 저거들 의무인기라. 동네 인심이 와 이리 숭악해졌노!”

“아아 네에, 형님, 일단 좋게 마무리하는 게…. 조금 더 드리면 어떻습니까?”


남편의 중재로 겨우 일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상여꾼들은 현숙 가족이 제를 지내는 동안 가래 섞인 침을 홱 뱉어 올리거나 상여 가까운 곳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는가 하면, 제 지내는 쪽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으며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영하 15~16도를 오르내리는 사상 최악의 기온이라는 사실을 장례식장에서 미처 인지하지 못한 탓에 혹독한 추위까지 그들의 적이 되었다. 현숙의 아이들을 비롯, 어린 조카들은 시골 구경에 신이 난 듯 바깥을 나왔다가 무서운 추위에 곧바로 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운전기사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히터를 켜고 있어야 한다며 기름값으로 웃돈을 요구했다. 누군가 십만 원을 찔러주자 적다고 투덜댔다.


상주 순으로 술을 따르고 절을 하며 의식을 치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욕인지 충고인지 모를 막말을 뱉었다.

“XX! 날도 추운데, 고마 한꺼번에 절하고 말지….”


겨우 제를 끝내고 상여가 땅에서 올려지는가 싶더니, 채 몇 발짝도 떼기 전에 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어머니가 노잣돈이 모자라 저승길을 못 가겠다고 했단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주머니에서 계속 신사임당이 모셔져 나왔다. 모두의 속에서 천불이 일었지만 일단 장지까지는 가야 했기에 감정들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우리끼리 메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참다 못한 동생이 입을 열었다. 현숙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 때려치우고 가족끼리 운구만 들고 올라가 퍼뜩 묻고 싶었다. 장성한 조카들까지 합치면 스무 명이 넘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왜 저렇게 적대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현숙 남편이 다시 명대 아들을 불러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긴밀한 밀담 끝에 돌아온 결과는 ‘초상이 나면 상주가 미리 동네회관을 찾아 일백만 원 정도 내놓는 게 예의’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야금야금 들어간 돈을 감안하여 오십만 원에 겨우 합의를 보았다.


천신만고 끝에 장지까지 도착하여 일이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또 하나의 태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꽁꽁 언 땅에 삽은커녕 괭이, 곡괭이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유족들이 장지까지 포클레인이 오를 수 있을지 말지 머리를 맞대는 동안, 상여꾼들은 모두 돌아가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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