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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Sep 13. 2024

신(神)의 선택· 2~C


 오랜 기다림 끝에 긴 목을 앞세운 포클레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가 하면, 비로소 어머니 잃은 슬픔의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포클레인 바가지가 뾰족한 끝으로 쾅쾅 몇 번을 두드리고는 푹 내리꽂으며, 몇 번을 흙을 퍼 올리자 금세 운구 들어갈 자리가 확보되었다.

 줄자를 이리저리 대보던 오빠가 신호를 하고, 한 무리의 남자들이 달려들어 어머니를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또 제를 지내야 한단다.

‘절-곡-한줌 흙을 집어 흩뿌리는….’

 절차를 속전속결로 처리한 뒤 기사에게 얼른 흙을 덮으라는 신호를 주었다.


 흙을 구덩이로 밀어 넣던 기사가 한번 밀어 넣을 때마다 그 위를 성난 듯이 바가지로 쾅쾅 때려댔다.

‘저 인간도 무슨 감정이 있나?’

 현숙이 씩씩대며 기사에게로 달려갔다.

“왜 그래요?”

“그래야 멧돼지가 손을 못 대요!”

엔진소리로 두 사람의 음성이, 고함으로 치고받았다.


 비로소 봉분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큰오빠가 미리 주문해놓은 직사각형의 잔디 판을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하나씩 둘씩 들어 옮기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자 기온이 더 내려가 모두의 손발, 입술이 시퍼렇게 언 데다 허리가 점점 구부러져 더는 일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아래쪽에 깔린 잔디는 이미 땅과 함께 얼어붙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내려가자!”

큰오빠의 말이 채 떨어지기 무섭게 너도나도 앞다투어 산을 내려가기 바빴다. 여전히 꼬부라진 아래턱을 떨그럭거리며.

차에 오른 모두는 죽은 듯 혼절해버렸다.

“아아, 모진 엄마…!”

누군가 중얼거렸다.


 두 올케가 차려낸 구수한 된장국과 토속적인 찬들로 된 밥상에 모두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며칠 동안 생존을 위한 섭식만 했을 뿐 밥다운 밥을 구경조차 못했던…. 방금 어머니를 묻고 온 자식들의 밥숟갈은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장례식에 쓰고 남은 과일들로 후식까지 먹고 나자 하나둘 빈 공간을 찾아 눕기 시작했다.

 현숙도 일주일 넘게 제대로 못 잔 데다 온종일 추위로 얼었던 몸이 풀리며 채 상을 물리기도 전에 조카 방으로 기어들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두 올케와 거실 테이블에서 서류들을 잔뜩 올려놓은 오빠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뜨뜻한 바닥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친정에 갔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 있는 짐들을 내리는 동안, 평소 같았으면 벌써 뛰어와 아이들을 껴안고 짐 손을 들어주기 바빴을 어머니가 뭘 하는지 내다보지도 않았다.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대문을 들어서며 ‘엄마아’ 하고 불렀다. 사랑채 가마솥에서 불을 지피던 어머니가 일어서며 고개를 돌리는데 눈, 코, 입이 없었다. 더 기함할 일은 어머니 가슴팍에 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어린애가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동생이었다.

“어서 오이라!”

 숨조차 쉴 수 없어 끙끙대기만 하는 그녀 귀에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도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기만 한 현숙에게 언니가 발로 한 번 더 건드렸다.

“얘는 대낮부터 무슨 잠꼬대를 이리 하노, 오란다, 가자!”


 눈을 뜨고도 꿈인지 생시인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으이, 여기 다 모여 봐라!”

오빠의 음성이 몇 번 울리고 나서야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와 기다시피 해서 거실로 나갔다.


“에~에~에~ 모두들 고생했습니다. 오늘 추운 날씨에 이만큼이라도 하고 와서 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잔디는 날씨 풀리면 동생과 날 잡아 다시 손보도록 하지요… 동네 놈들 생각하니 아직 분이 안 풀려…. 으, 으어, 어험!”


 오빠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총 조의금 〇천만 원에서 모든 장례비를 제외한 금액 〇천만 원이 남았습니다… 공평하게 N분의 1로 나누었으니 모두 잘 확인하기 바랍니다.”

오빠는 모두에게 선심 쓰듯 봉투 하나씩을 내밀었다. 만족해하는 얼굴과 불만족해하는 얼굴들이 뒤섞였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지 5개월여가 지났다. 꽃샘추위도 지나고, 봄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니 산소에 잔디가 제대로 입혀졌는지, 혼자 남은 동생의 생활이 궁금하여 큰마음 먹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동안 딱히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서운함과 앙금에 현숙은 동생을 제외한 형제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

 장례식 마무리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유종의 미처럼 보였다. 장애의 몸으로 수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산 동생에게 조문객이 몇 명 있을 리 없었다. 그에게까지 공평하게 남은 금액을 분배했으니, 엄청난 적선 행위였거나 박애주의의 표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조의금이야말로 철저하게 투자 대비 들어오는 돈이다. 제각각의 투자금이 다른데 ‘n분의 1’로 퉁 치다니, 독재 아니면 날치기, 고스톱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 판에도 일정한 질서와 규칙이 있기 마련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며 억울하고 옹졸한 마음이 조금씩 상쇄되기 시작한 건 순전히 동생에 대한 걱정과 연민 때문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 ‘동생’의 ‘ㄷ’조차 떠올리기 싫었지만, 끈질기고 집요한 사슬로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녹슨 대문을 쾅쾅 두드리자 안방 문이 스르르 열리며,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얼굴 전체를 뒤덮은 늑대인간이 성큼성큼 걸어 나와 빗장을 열어주었다.

 폐가처럼 쓰러져가는 집안, 맥주, 막걸리, 소주 등, 종류도 모양도 다양한 병들이 제각각으로 뒹굴며 어머니 없이 살아온 그의 시간을 보여주는 듯했다. 방 안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역겨운 시궁창 냄새, 구석구석 어질러진 살림살이, 켜켜이 쌓인 먼지들, 그 속에 들어앉은 쭈그러진 빈 술병들….


 냉장고 문을 열자 플라스틱 용기들이 층마다 칸칸마다 입추의 여지 없이 쌓여 있어 숨이 턱 막혀왔다. 이어 냉동고 문을 열었다. 갑자기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처럼 단단한 돌덩이들이 삽시간에 쏟아져 내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물렸으나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한쪽 발이 정체 모를 검정 뭉치에 가격당하고 말았다.

“아야! 아아….”

“그냥 두지 뭐 한다꼬….”


겨우 진정을 한 뒤 일어서서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봉지를 풀려니 내용물과 함께 얼어붙어 도무지 속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누구누구 다녀갔어?”

“다 왔어. 올 때마다 쟁여놓고 가서 그래.”

“1회분씩 잘게 썰어 메모라도 해놓든가, 이렇게 막 쑤셔놓고 가면, 뒷일은 나 몰라라, 저거들 집에서도 이래놓는가!”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동생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너는 도대체… 이런 고기들을 갖다 주면 고맙게 생각하고 얼른 해먹어야지, 손수 해먹기 귀찮으면 취직이라도 하든가, 이게 사람 사는 집구석이가?”


 수 시간에 걸쳐 냉장고를 비워내고 닦아낸 뒤 준비해 간 반찬과 재료들로 밥을 지어 마루에 상을 차렸다. 동생은 밥을 흡입기로 빨아들이는 듯, 순식간에 밥과 찬들을 담은 그릇들이 바닥을 드러냈다.

 시선 닿는 곳마다 널브러진 술병들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동생의 모습 같아 현숙의 목이 메어왔다.

'그렇게라도 엄마가 더 사시는 게 나았을까?'

     

술병들을 푸대와 고무통 등에 담아 읍내 마트에 내려놓고 오자 동생은 그 새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니는 살라카나, 죽을라카나! 엄마 따라갈 끼가! 으어? 진짜 와 이라는데?”

“….”

“서울 가자! 너의 매형더러 직장 알아봐 달라고 할게. 니가 여기 있는 자체로 형제들에게 테러나 마찬가지다.”

“여서 할 일이 있다.”

“무슨 일?”

“엄마가 날더러 대산양반, 명대, 가리양반 등, 복수하라고 대구로 전학시켰는데…. 살아생전 효도 못했으니 돌아가신 뒤에라도….”

“니 지금 미쳤나?”

“자식으로서 마땅히….”

동생의 얼굴 위로 어른거리는 물기에 현숙 또한, 동생의 과거와 마주했다.   

  


아버지 제사를 지낸 다음 날이었다. 동네에서는 잔치가 있거나 제사 등을 지내면 몇날 며칠씩 친척이나 이웃들이 그 집을 드나들며 음식을 나눠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른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현숙과 동생도 동네 사람들 사이에 끼어 문어꼬리며 곶감 등을 집어먹고 있었다.

정담들이 오가는 사이, 어머니가 옆에 앉은 대산댁과 실랑이를 벌이는 듯했다.

“아지매! 무슨 소리하는기요? 우리 양반이 벌써 갚았다고 하던데요.”

“자아들 아버지 세상 떠나기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찾아와 내년까지 연장해 달라고 사정했고, 수첩에도 분명히 받았다는 표시가 없는데 언제 갚았다고 그러는가??”

“나는 모르요. 우리 양반이 줬다고 하는 소릴 분명히 들어….”

 방 안의 분위기가 어머니 편으로 기울자 대산댁이 쌩하며 나가버리고, 방에 있던 사람들 하나같이 ‘저 집 부부 행사머리가 깨끗지 못하다’며 수군대다 돌아갔다.


 크고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동네는 그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 되면 칠흑이었다. 양력 시월 하순, 서산 하늘에 그믐달이 걸려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둠이 삼키고 말았다.

앞산에서 부엉이와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운 채 동생과 장난을 치고 있는데 어머니가 호롱불을 끄며 겁을 주었다.

“안 자는 아이는 여시와 부엉이가 귀신같이 알고 눈을 빼간단다. 얼른들 자라.”

이불을 끌어당기며 눈을 감으려는 순간, 사립문에서 쩌렁쩌렁한 남자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치마꼬리를 붙잡고 마루로 가니 어떤 남자가 축담에 삽을 세운 채 괴물처럼 서 있는 게 아닌가!

“대산 양반!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인기요?”

“니기미 X팔, 갚았는데 와 안 갚았다 카노! 대부네 집구석 불싸질러삔다.”

“날 밝을 때 천천히 얘기합시다.”

“장부 내놔! 빡빡 찢어삘라니까.”

“내일 날 밝을 때 맞춰보게 돌아가이소.”

 

 끝까지 장부를 내주지 않는 어머니를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부으며 장독 몇 개를 삽으로 깨뜨리고 돌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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