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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Sep 20. 2024

신(神)의 선택· 2~D


 중학생이 된 현숙이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집까지의 길은 작은 산등선을 넘어-신작로-논밭 길-동구 밖으로 이어졌다. 등하굣길 논밭에는 어른들이 허리를 굽히거나 앉아 김을 매는 풍경이 예사였다.


 긴 가뭄이 이어지던 7월 초순, 기우제를 지냈음에도 비가 오지 않아 사람들의 걱정과 한숨이 탄식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집안 사정을 알아가는 나이가 된 현숙도 날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표정에 가슴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신작로 양쪽으로 곧게 뻗은 버드나무들에서 매미들이 떼창을 하고 있는 사이로 영어 단어를 외우며 걷고 있는 현숙의 귀에 매미 울음소리와 구분되는 날카롭고 섬뜩한 비명이 들렸다. 익히 귀에 익은, 같은 피를 나눈 사람의 절규였다. 소리 나는 쪽으로 죽어라 뛰어가니 어머니와 명대가 싸우고 있었다.


 명대는 일자무식,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하다 장가를 갔고,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났다는 것을 현숙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자랐다.


 현숙이네 논과 명대의 유일한 논마지기가 면해 있었다. 가뭄이 지속되어 양수기 물조차 마르자 두 논 사이 졸졸 새어나오는 어린 남자아이 오줌 줄기만 한 물로 간당간당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를 자기네 논으로 완전 돌리는 것도 모자라 현숙이네 논까지 야금야금 파먹고 있었다. ‘논이 점점 명대한테로 넘어간다’며 어머니의 한숨에, 현숙은 논의 소실보다 어머니가 명대에게 당할 일이 더 두려웠다.


 어머니가 사비를 들여 측량 기사를 부르고, 명대가 점령한 우리 논에 말뚝을 박고는 새끼줄로 줄로 금을 치는데, 명대가 낫으로 줄을 자르고 말뚝을 뽑아버리는, 그날이 그날이었다.

“도랑물 돌리는 것도 모자라 남의 논을 이렇게 파묵어 들어가다니, 양심이 있는 사람이요?”

“이 XX과부년이… 그래 나 양심 없다! 법?… 해볼라마 해바….”


 새끼줄을 자르고 말뚝을 빼는 것도 모자라 논 가운데 심어진 벼를 뿌리째 뒤집어 올리는 명대를 어머니가 막아서며, 두 몸이 논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현숙이 논두렁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는 사이, 흙탕물을 뒤집어쓴 명대가 먼저 일어나며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어머니를 자근자근 밟았다. 언덕 위 산에서 소를 몰던 동생이 그 모습을 목격했는지 괴성을 지르며 논으로 뛰어들었다.

 가까스로 논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세 모자는 진흙탕을 둘러쓴 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울고 한숨지었다.     


 그해 여름밤이었다. 안방에는 어머니와 동생이, 작은방에는 현숙이 각각 모기장을 치고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자고 있었다. 어머니의 괴성에 놀란 현숙이 안방으로 달려가자 윗마을에 사는 가리양반이 헐레벌떡 튀어나갔다. 가리양반은 동생의 절친 홍석표 아버지였다. 동생은 천지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날이 밝자마자 어머니는 가리댁을 찾아가 지난밤 일을 고하고, 경찰에 알리겠다며 펄펄 뛰었다. 가리댁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비록 피해자지만 어머니에게도 그 일은 남세스럽고 민망한 일이었던지라 그 선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물러섰다. 그런데 일이 우습게 돌아갔다. 그 집에서 어머니를 남자 유혹한 과부로 먼저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모의 젊은 과부로, 동네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마다 어머니는 울분을 삭이며 아들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단 한 명이라도 부디 판검사가 돼주길 바라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영특했던 동생에게 그 기대가 가장 컸다.     

 

 동생이 어머니에게 해를 입혔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고 있었다. 마루에서 보이는 저 멀리의 앞산이 온갖 회한을 담은 채, 대산양반이 삽을 들고 축담에 떡하니 서 있는 것처럼.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서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그날처럼 부엉이가 억세게도 울어댔다.

“아직 그 인간들이 이 동네 버젓이 살고 있다는 게 용서가 안 돼….”

“사람이 살다 보면 억울하고 서러운 일 등을 당하기도 하고, 그게 인간사지, 그런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 법이 있고 도덕과 윤리가 있는 거고, 법의 존재 이유와 교육의 개념조차 모르는 짐승을 인간인 네가 어찌….”

“지금까지 내가 그나마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것은 엄마를 위해서였어, 이제는 그 의미가 무색하고 그럴 필요조차 없어, 여기서 더 잃을 게 없으니, 엄마를 죽게 한 인간들 내 끝까지 복수하고 말 터….”

현숙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경련이 일었다.   

  


 현숙이 시골에 다녀온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시댁의 집안 행사로 약 일주일간 동생과 통화를 하지 못한 사이, 형제들 단톡방에 난리가 났다.

 동생이 대산양반, 명대네, 가리양반 집 산소를 모조리 파헤친 것도 모자라 그들 집에 있는 장독을 하나 남김없이 깨트려 박살을 내고…. 그 여파로 명대 마누라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다.

 동생은 즉시 체포되어 이미 거창지방법원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수개월 여의 재판 끝에 동생은 집행유예 3년에 실형 1년, 적지 않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1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던 터라 형 확정 후 얼마 안 돼 풀려났다.


 출소한 동생을 현숙이 서울로 데려왔다. 이미 시골에는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명대 마누라는 동생의 파행 이후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곧장 요양병원으로 들었다. 대구에서 택배 일을 하는 명대 아들이 ‘병신XX 나오기만 하면 바로 죽이겠다’며 오빠들에게 수없는 협박을 해왔다고. 가해자와 피해자, 피해자와 가해자끼리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숙 남편이 자신의 대학 연구실과 산학협동과제를 수행하는 회사에 동생을 취직시켜주었다. 교도소에서 일 년여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나와선지 그의 몸은 훨씬 다부지고 건강해보였다.  

   

이후 정확히 몇 개월이 흘렀는지 모른다. 퇴근한 남편이 현숙을 다그치며 씩씩댔다.

“당신 알았어? 처남 회사 그만둔 줄?”

“무슨 소리야?”

“어떻게 소개해준 자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친정 형제 단톡방에 또다시 불이 났다. 명대가 논도랑에 처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명대의 시집간 딸이 일주일째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친정으로 달려와 발견하곤 경찰에 신고했단다. 죽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얘기였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동생을 지목하고 수사를 하려는데 집 대문과 마루 미닫이문 등이 굳게 닫혀 있다며, 보호자들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읍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시골에 가지 않고 현숙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은 말이 아니게 초췌하고 굳어 있었다. 아마도 흥분해있는 동생을 가장 잘 다스릴 사람으로 현숙을 기다리고, 또 가장 최악의 불행한 사태를 우려, 감히 따로따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듯했다.

모두들 함께 시골집으로 갔다.


 대문을 두드리며 동생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무거운 침묵에 몸이 오싹할 정도의 무서운 적막만 가득했다. 둘째 오빠가 담을 넘어 안에서 빗장을 열어 모두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한 발 한 발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의 미닫이문 역시 둘째 오빠가 망치로 두드려 깼다. 한고비 넘으니 또 한고비…. 다시 안방 문을 열기 위해 망치, 끌, 지렛대 등, 연장이란 연장을 다 동원, 문짝을 아예 뜯어냈다.


 벽돌 대여섯 개를 깔고 앉은 양철통에 형제들 수를 의식했는지, 연탄 다섯 장이 자신들의 분신을 불사른 채 하얗게 변해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동생의 몸뚱이는 외로 엎어져 있었다. 현숙이 동생을 바로 눕히자 입에서 새어나온 피가 가슴까지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언니와 올케 둘이 괴성을 지르며 대문 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조사한다며 방 안에 있는 먼지 하나조차 손대지 못하게 한 까닭에 형제들은 두 손 두 발 묶인 채, 온방 구석구석을 할퀴고 쥐어뜯으며 몸부림친, 숨 끊어질 당시의 처참하고도 무자비한 흔적들을 생생히 되새겨야만 했다.


 경찰은 형제들에게도 조사가 불가피하다며 모두를 읍에 있는 경찰서로 연행했다. 사망일로 추정되는 날을 기점으로 동생의 생존 반응이 나타나는 곳곳마다 CCTV를 확인했다.

“자신의 계좌가 있는 읍 소재 농협으로의 몇 번의 출입…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고… 마트를 돌며 술과 연탄, 번개탄을 구입…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명대를 죽이고, 자신이 죽을 준비를 해가는 과정들이 혈육으로 이어진 연줄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지는 고통이 그러했을까, 그것은 차라리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감내해야만 하는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어머니를 괴롭힌 인간들과 불효한 자식, 형제들에게까지 완전한 복수를 하고 떠난 셈이었다. 의사가 추정한 사망일은 약 일주일 전으로 음력 시월 이십일, 어머니 돌아가신 날이었다.

경찰과 의사가 사인을 자살로 마무리하며, 동생의 유서를 그때서야 돌려주었다.


신이 나를 이렇게 세상에 던지셨으니, 이 모양 이대로 신께로 갑니다. 이 모든 것은 신의 선택입니다!"

유서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끝)     

  

*PS: 지금까지 주1회, 금요일만 연재하던 것을 주2회로 늘리겠습니다.

<금ㆍ토요일>

 <신의 선택ㆍ3>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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