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는 동생의 사망일을 일주일 전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음력 시월 스무날쯤이 되는데, 그날은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기도 했다. 엄마는 긴 시간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지친 자식들의 모진 불효 속에 떠났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시점부터 순전히 자식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해야 했기에, 이 자식 저 자식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듯 하는 엄마를 보다 못해 장애를 가진 막내 남동생이 자신의 꿈과 인생을 접은 채, 엄마를 모시고 시골로 귀향했다.
동생의 결단으로 한동안 집안은 잠잠했었다. 하지만 인간의 마지막 수순 같기도 한 ‘요양원-요양병원-병원’을 번갈아 옮겨 다니는 동안, 엄마는 또다시 병원비 문제 등으로 자식들을 불효자로 만들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나날들… 그 막다른 길목에서 현숙이 끔찍한 불효를 저질렀다.
점점 심화되는 형제들의 전쟁(!) 그 악몽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식물인간 상태의 엄마의 호흡을 멈추게 했던 것이다.
현숙은 엄마가 숨을 거두는 단 몇 초만 참으면 형제간 전쟁이 종식되고 밝은 평화가 찾아오리라 믿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자연 생태계, 곧 스러질 듯 보이는 미미한 생명일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원천일 수 있음을, 사위어가는 촛불이었지만 동생의 삶을 지탱해주는 ‘영양 줄’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엄마와 직접적인 줄로 맞닿아 있었던 생명체,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숙이 슬픔에 앞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에 떨었던 이유는 부정할 수 없는 인연의 고리 때문이었다. 그와 얽히고설킨 수많은 고리들 중 어느 누구의 생명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동생의 주검 앞에서 형제들은 허둥댔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내가 니를 이리 만들었다.”
“어야, 이 일을 우째야 되노!”
“빈소부터 차려야 되는 거 아이가?”
“엄마 아부지 옆에 바로 매장해야 하나?”
“자식도 없는데, 우리가 영전에 술 따른다 말이가?”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가는 게 순린데, 니가 나를 앞서 가노!”
“누나! 제발 그만 좀, 언제까지 종현이 저렇게 연탄재 속에 둘라꼬?”
“차라리 나, 나, 나를 델꼬 가라, 아이고오 아이고오! 나를 무, 무, 묻어라….”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 통곡이며 탄식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언니가 옆으로 휙 쓰러지며 일순간 상황이 종료됐다. 급히 구급차를 불렀지만 읍내와의 접근성이 좋지 않은 시골이라 오는 시간이 더뎌, 발을 동동 구르던 형부가 중간에 인계하기로 하고 헐레벌떡 차에 태우고 떠났다. 대신 논의는 자유로워졌다.
관 구입 경로와 입관 후 절차 등에 대해 3남매가 의논해 나가던 중, 둘째 오빠가 자신의 트럭으로 가족끼리 운구를 메고 엄마 아버지 산소 옆에 묻자고 했다.
“젊은 아이들한테 어떻게 그런 일을 시켜요?”
자신의 아이들에게 험한 주검을 맡길 수 없다며 발끈하는 두 올케를 현숙이 사나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두 사람은 황급히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험악한 분위기에 큰오빠가 중재하며 나섰다.
“집사람과 제수씨 말도 일리 있다. 엄마 장례식 때 경험했잖아. 상여꾼들의 행패에 차라리 가족끼리 상여를 옮길까 하고 들어보니 꿈쩍도 않았던….”
결국 둘째 오빠가 읍내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어, 어’ 소리를 반복하며, 마루에서 축담으로, 축담에서 마당으로, 급기야 장독간을 넘어 남새밭 귀퉁이 고욤나무 아래까지 가서 스파이 접선하듯 소곤거렸다. 현장에서 일하다 말고 달려온 둘째 오빠의 작업복 여기저기엔 페인트가 묻어있고, 작업모를 썼던, 착 달라붙은 머리는 군데군데 새치가 뭉쳐있어 마치 하얀색 DDT 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아아아악! 으어어억!”
통화가 길어지는가 싶던 둘째 오빠의 발작적인 괴성이었다. 둘째 올케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고… 큰오빠 내외와 현숙도 남새밭으로 내달렸다.
“내가, 내가 죽였다. 엄마도 동생도, 모두 내 때문에….”
고욤나무에 머리를 짓찧으며 자해를 하고 있는 둘째 오빠를 네 사람이 달려들어 겨우 땅바닥으로 끌어 앉히자, 이번에는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으며 몸부림쳤다.
“동생! 이러지 마라, 이 모든 사단은 맏이인 내 탓이다. 내가 못나서… 어무이 용서하이소, 종현아 미안하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큰오빠의 통곡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둘째 오빠가 벌떡 일어나 큰오빠를 안으며 말렸다. 둘째 오빠 얼굴은 어디가 찢어졌는지 피범벅이었다.
남새밭의 심어놓기만 하고 거두지 않아 허옇게 말라버린 시래기 같은 배춧잎과 무 잎사귀 틈에서 부둥켜안으며, 형제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화합했다. 마루에서 둘째 올케가 자기 남편 얼굴의 피를 닦고 밴드를 붙이는 동안 둘째 오빠가 친구와의 통화내용을 전했다.
어느 죽음이든 반드시 예를 치른 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의식이 필요하단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서둘러 읍내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기로 했다.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에 대해서는 장례식장에서 의논하기로 했다. 경찰이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조사한다며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police line’이라고 쓰여진 띠를 둘러치고는, 동생의 주검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모두는 빈손으로 읍내에 갔다.
장례식장은 모든 시설과 물품들이 완비된 채 그들을 손님처럼 맞았다. 영정 사진 주변의 국화는 송곳 하나 꽂을 자리 없이 빽빽했고, 여러 대의 냉장고에는 칸마다 술과 음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일러도 진즉 가동했는지 이미 뜨끈뜨끈하게 데워져 있었고, 조문객을 맞이할 수십 개의 테이블 위에는 설거지하기 편리하도록 비닐 덮개까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여느 유명 인사의 장례식장처럼 호화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분위기에 현숙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편함을 느꼈다.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흔적들이 아닌지 수사관처럼 훑고 다녔다. 국화꽃의 신선도가 의심되어 직접 손으로 만져보기도,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눈으로 촉각으로, 후각으로도 신선도를 구분해 낼 만큼 해박하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모든 것들이 눈에 거슬렸을 따름이었다.
동생의 시신은 최초 발견 시점부터 반나절이 경과한 후에야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의사로부터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사망임을, 경찰로부터 자살임이 입증되고 나서였다.
큰오빠-언니-둘째 오빠-현숙-동생으로, 5남매였던 그들 가족에서 한 명이 저세상으로 갔으니 남은 형제는 총 4명이었다. 각자의 배우자까지 합쳐 모두 8명, 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며 형부까지 빠졌으니 남은 사람은 총 6명뿐이었다.
5남매 자식들을 다 합치면 스무여 명이 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조카들이 보이지 않았다. 너도나도 삼촌 또는 외삼촌의 불행한 죽음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인간의 이기심은 모두가 비슷하다는 것을 현숙이 곧 깨달았다. 그녀 역시 시부모에게 다른 볼일로 집을 비운다며, 남편에게 입단속까지 시켰으므로.
형제들의 극도로 흥분됐던 감정들이 조금 가라앉나 싶었는데 병원으로 실려 간 언니가 돌아오며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텅 빈 눈으로 부숭부숭한 국화송이 한가운데의 영정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기어이 사진을 빼내 젖먹이 어린아이 품듯 가슴에 껴안고는 또다시 통곡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언니는 울 힘조차 없으면 기절하듯 드러누워 불경을 읊조렸다. 보다 못한 형부가 조카를 시켜 집에 있는 카세트 라디오와 테이프를 가져오게 했다. 역사 속 물건 같은 카세트테이프를 누르자 신기하게 언니의 불교식 방언(?)이 멈췄다. 테이프에 녹음된 것은 어느 국악 명창이 부른 ‘회심곡’이었다. 기독교인 둘째 올케가 격한 거부감을 표시하다 둘째 오빠에게 제지당했다. 회심곡 완창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여서 한 번 꽂아 놓으면 2시간여 동안 울었다.
회심곡 소리를 배경으로 언니의 통곡은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며, 가끔 잠에 드는지 조용하기도 했다. 대부분 소리에 적응하는 듯했으나 현숙만은 예외였다. 회심곡 가사 구절구절이 예리한 비수처럼 그녀 뇌리를 파고들며 뇌의 교란을 일으켜는 듯했다. 현재 일어난 일들이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느 경계치만 넘으면 곧바로 미치는 단계로 접어들 것 같아 황급히 의식을 당기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참극의 현장에 포로가 되곤 했다.
아버님 전엔 뼈를 빌고 어머님 전엔 살을 빌어 태어난 동생은 엄마의 성심으로 길러내고자 했던 과부하에 한쪽이 무너진 반편이 되었다. 그에게 엄마는 성(城)이었으며 기둥이었으며,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엄마가 떠남으로 그의 존재 이유가 소멸되었고, 그의 떠남으로 형제들 또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가 허물어버린 성안엔 가족이란 이름으로 공유해온 온갖 희로애락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끊임없는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는 성, 그 화수분에 무시무시한 핵폭탄이 떨어진 격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위협하는 핵!
동생이 그 결단을 하기까지 고뇌했을 시간과 참극의 현장은 방사능 오염보다 더 지독한 살상 무기임에 틀림없었다. 형제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을 지배할 것이기에.
“벽돌 여섯 개 위에 놓인 연탄 넉 장… 하얀 재로 변한 마흔여덟 개의 빈 구멍… 영혼이 빠져나간 동생의 몸뚱이… 방 구석구석을 할퀴고 쥐어뜯으며 몸부림친….”
“아아~CE, 산 사람마저 죽을 판….”
몽롱했던 의식이 화들짝 깨어났다. 캐리어와 패딩 점퍼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방 귀퉁이, 웅크려 자고 있던 남편의 볼멘소리였다.
“어휴우! 밖에 나가 저놈의 귀신 소리 좀 꺼!”
“!”
현숙은 남편에게 살의를 느꼈다. 이 비극적인 일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생이 그려온 모노그래프에 먼지만 한 점으로도 위치하지 않을 저런 타인은 오로지 의식의 순도를 해치는 이물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 여겼다. 어제 형부와 둘이 술상을 마주한 채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큰 소리로 웃기까지 했었다.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폭파하고 싶은 분노를 겨우 가누며 현숙은 방을 나왔다. 빈소 바닥에 검정색 상복을 입은 언니가 장례식 건물 신축 당시부터 설치된 부조물처럼 밀착돼 있었다. 얼핏, 음식점 앞에 진열된 메뉴의 모형처럼 장례식장에서 상주 대신 절을 도와주는 모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비현실의 현실, 현실의 비현실….
인간의 슬퍼하는 마음에는 아무리 소량이라도 자신의 행복을 다지려는 이기적인 감정이 존재한다고 믿어왔었다. 이 참담한 비극 앞에, 어떠한 숫자나 공식을 대입해도 그러한 감정이 산출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절망이 일었다.
회심곡 노래가 다 돌자 부스스 몸을 일으킨 언니가 라디오에서 테이프를 꺼내 돌려 넣은 뒤 스위치를 눌렀다. 이어 여전히 타고 있는 향로에 몇 개를 더 꽂았다. 빨갛게 자신의 몸을 태우며 뿌연 연기를 내뿜는 향불이 이 구석 저 구석에 폐품처럼 널브러진 사람들과 동일시되었다. 참담한 현실에 육신과 정신이 오그라드는….
새로 태우는 향에서 나오는 연기가 독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려 현숙은 잠시 밖으로 나갔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눈발이 휘날렸다. 탁하다 못해 텁텁한 실내공기를 피해왔지만 오싹하도록 찬 기온에 이내 몸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장례식장이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 산의 추위가 여과 없이 파고들었다. 대신 공기는 맑고 신선해 메슥거리던 위장과 두통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밖에 조금 더 있고 싶어 안으로 들어가 두꺼운 옷을 걸치고 다시 나왔다.
주차장 가장자리를 돌다 현숙은 문득, 장례식장이 1층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지금까지 다녀본 장례식장은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병원을 낀 지하실에 위치해 있었다. 죽으면 땅속으로 들어가는 생명체와 지하 장례식장을 연관 지으며 나름의 철학을 정립해오던 터였다. 기껏 쌓아올린 사상과 철학을 부정당하는 느낌은 고약했다. 신(神)이 지구를 거꾸로 들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가 하면 자신이 지구 표면에 중력으로 매달려있는 환각까지 일었다. 주변 산들이 그녀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감작스런 현기증이 일었다. 부랴부랴 주차장 가장자리 옹벽으로 몸을 끌어 기댄 채 쪼그려 앉으니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회색빛 하늘이 땅과 맞닿아 있는 듯 낮게 내려와 있었다. 땅인지 하늘인지 모를 곳에서 솟아나는 눈송이들이 사이로, 저 멀리 로켓처럼 우뚝 솟은 무엇이 그녀 시야를 당겼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중세 유럽의 성당 같기도 했다.
“누구 별장인가?”
만화 속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점점 그녀 가까이로 클로즈업되던 순간, 현숙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신축한 군청 청사였다. (계속)